깡패와 여의사가 부딪치는 드라마 <닥터 깽>, 그 맛이 참 달고나… 생의 막장에 몰린 남자의 순정한 사랑이 사뿐사뿐 펼쳐진다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계단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동네 할머니는 서울에서 이사온 지 10년은 넘은 달고(양동근) 모자를 부를 때마다 노래하듯이 말한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닥터 깽>(문화방송, 수·목 9시50분)이 삐죽삐죽한 상황의 모서리들을 짜맞추는 방식이 이 노래 같다. 선과 악, 논리와 감정, 긴장과 웃음 등 극과 극은 노래하듯이, 운율에 맞춰 미끄러지듯이 서로 연결된다.
방금까지도 웃지 않을 것 같던 유나(한가인)가 터진 웃음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닥터 김’은 ‘닭튀김’으로 둔갑하고, 서울내기는 다마내기가 된다. <닥터 깽>의 극단의 조화는 제목에서도 보인다. 의사와 깡패는 계급적으로 한참이나 멀다. 하지만 다치고 치료하는 공간에 머무는 점에서 둘은 가깝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극단의 조화를 이루려면 끝까지 밀어붙이기가 먼저다. ‘닥터 깽’인 강달고는 세상 끝에 내몰렸다. 처박혔다. 경삿길에서 손을 놓친 수레에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다리를 절게 됐다. 그는 무기 같은 손을 가졌기에 깡패가 될 수밖에 없었다. 손을 씻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자신을 놔달라고 부탁한 날 벌어진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하고 검찰에 자진 출두한다. 그런데 출두하고 보니 자기가 죽인 것으로 된 사람은 자신을 구해준 형사였으며, 형사의 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였다. 달고가 좋아하는 여자 유나는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써주는 데가 없다. 자리를 부탁하러 찾아간 선배는 퇴박을 놓는다. 의료사고가 터지면 환자 편에 서고 병원 비리 고발하고 해고당하면 보건복지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해서다. 술 먹고 “이딴 년이 다 있어요”라고 외치며 오빠에게 미안해하던 그녀에게 닥친 청천벽력의 소식, 오빠가 깡패에게 맞아 죽었단다. 깡패 혐오자가 된 의사와 깡패의 사랑은 쉽지 않다. 그런 중한 배경을 제하고도 달고에게 이 사랑을 이루는 건 첩첩산중이다. 그 전에 자신을 알아봐주기라도 하면 좋겠다. 그래도 멜로드라마인데, 둘은 통한다. 극과 극이 통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는 반짝이는 첫 만남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마 중퇴한 고등학교의 마지막 날들 중 하루, 유나는 친구들한테 맞고 누운 달고를 치료해주며 “너 왕따지. 나도 왕따야”라고 말한다. 강달고는 자신의 상처를 덮어준 “발로 놔도 이보다 잘 놓겠다”는 자수를 간직한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즐겁게 사뿐사뿐 걷는다. 죽일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사람에게 5천억 흥정을 하다가 5천원을 던지고, 백번 참았으니 이제 손을 씻겠다는 달고에다 대고 보스는 아싸라비아 노래방의 백번이 뭐냐고 한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으로 배경이 부산에서 서울로 바뀌면서 걸음은 더욱 즐거워졌다. 달고와 유나가 취직한 봉의원은 용서의 공간이다. 달고는 난생처음 박수를 받고, 내부고발자 유나가 취직다운 취직을 하고, 죽은 형사의 아이가 태어난다. 이곳에서는 달고와 유나가 ‘왕따’ 같은 둘의 공통점을 발견할 만하다. 달고는 한순간 의사로 오해받고, 달고의 어머니는 유나의 유사 어머니가 된다. 이 공간에는 비루하고 못돼먹고 죄를 저지른 자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알코올 중독자인 봉 원장(오광록)이 자주 가는 곳은 노숙자들이 모이는 정자다. 일하고 싶지만 아들이 말려서 집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어머니는 그 사람들에게 수제비를 끓여준다. 수제비는 양은냄비에 떠서 달처럼 이들을 비춘다.
<닥터 깽>은 <네 멋대로 해라>(2002)로 만났던 박성수 PD와 양동근의 결합으로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닥터 깽>의 특이한 주제의식은 대본을 쓴 작가의 고유색이다. 김규완 작가는 <피아노>(2002)에서 펼쳤던 ‘인생의 막장에 몰린 남자의 순정한 사랑’을 <닥터 깽>에서 다시 보여준다. 부산 배경, 깡패라는 직업, 모든 죄가 사하여지는 유토피아적 공간, 주인공 억관(조재현)의 속이 쓰린 사랑이 옮겨왔다. 작가는 그때처럼 필살의 대사를 인물들에게 안긴다. “한번 상추밭에 똥을 싸놓니까네 잔대가리가 살벌하게 업그레이드됐나” “이 삽으로 반을 쪼개겠습니다. 아님, 이걸로 밥을 퍼묵겠습니다” “귓구멍을 무시하고 콧구멍으로 듣는 놈도 있지” “버선목이 아니니까 뒤집어 보여줄 수는 없지” 같은, 남이 시킨 말 같지 않은 대사에 귀가 솔깃하다.
절정 양동근, ‘순간 연기’의 대가
대사와 어우러진 인물은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조재현이 <피아노>에서 최고였듯이 양동근은 <닥터 깽>에서의 연기가 절정이다. 4년 전에 비해 바싹 깎인 얼굴과 몸피는 가늘고 사나운 깡패의 것이다. 오금 저리는 사람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을 만큼 사납다가 개구지게 오도방정을 떨 때는 천진난만하다. 그는 연기를 잘하지 않는 것 같다, 고 생각하면 갑자기 100점짜리 표정과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10가지 표정을 1초 안에 만들어낸다(좀 과장하긴 했지만 슬로모션으로 그의 연기를 한번 보면 실감할 듯). 그 표정에는 웬만해선 연기에 포함될 수 없는 볼 밑 근육의 떨림도 있다. 그는 ‘순간 연기’의 대가다. 거기에 드라마를 둘러선 군상들의 연기도 좋다. 봉 원장은 마음이 딴따라거리는 즐거운 스텝을 밟고, 깡패조직의 쓰리 조장식(김정태)은 침을 칼마냥 뱉는 연기를 보인다. 드라마에 나온 가장 복잡한 대사로 이들 연기를 평가하면, “설사 가짜가 진짜를 숨기고 있다고 치자. 가짜가 진짜 대신 가짜로 진짜 노릇을 하는 데는 그 진짜진짜가 얼마나 무서우면 그렇게 하겠는지 생각해봐. 목숨 걸고 하는 일 아니겠냐고.”

의 배경이 부산에서 서울로 바뀌면서 다치고 치료하는 사이였던 달고(양동근·왼쪽)와 유나(한가인)는 유사 동료관계로 발전한다. (사진/ 문화방송 제공)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극단의 조화를 이루려면 끝까지 밀어붙이기가 먼저다. ‘닥터 깽’인 강달고는 세상 끝에 내몰렸다. 처박혔다. 경삿길에서 손을 놓친 수레에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다리를 절게 됐다. 그는 무기 같은 손을 가졌기에 깡패가 될 수밖에 없었다. 손을 씻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자신을 놔달라고 부탁한 날 벌어진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하고 검찰에 자진 출두한다. 그런데 출두하고 보니 자기가 죽인 것으로 된 사람은 자신을 구해준 형사였으며, 형사의 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였다. 달고가 좋아하는 여자 유나는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써주는 데가 없다. 자리를 부탁하러 찾아간 선배는 퇴박을 놓는다. 의료사고가 터지면 환자 편에 서고 병원 비리 고발하고 해고당하면 보건복지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해서다. 술 먹고 “이딴 년이 다 있어요”라고 외치며 오빠에게 미안해하던 그녀에게 닥친 청천벽력의 소식, 오빠가 깡패에게 맞아 죽었단다. 깡패 혐오자가 된 의사와 깡패의 사랑은 쉽지 않다. 그런 중한 배경을 제하고도 달고에게 이 사랑을 이루는 건 첩첩산중이다. 그 전에 자신을 알아봐주기라도 하면 좋겠다. 그래도 멜로드라마인데, 둘은 통한다. 극과 극이 통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는 반짝이는 첫 만남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마 중퇴한 고등학교의 마지막 날들 중 하루, 유나는 친구들한테 맞고 누운 달고를 치료해주며 “너 왕따지. 나도 왕따야”라고 말한다. 강달고는 자신의 상처를 덮어준 “발로 놔도 이보다 잘 놓겠다”는 자수를 간직한다.

유나는 점점 달고의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를 느낀다.(사진/ 문화방송 제공)

석희정 검사는 달고에게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닥터 김 좋아? 나는 좋아.” 달고는 이 말을 “닭튀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라고 받는다. (사진/ 문화방송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