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적인 진단이 아니라 뇌 신경의 연결상태를 파악하는 DTI 영상 기법… 미세한 신경 연결까지 파악한다면 뇌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 계기될 듯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만일 전산화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으로 뇌종양을 확인했다면 일반적으로 수술을 통해 뇌종양을 절제하게 된다. 뇌 수술에서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는 뇌종양이 자리잡은 부위에 운동이나 언어, 시각 중추가 있거나 이를 연결하는 신경들이 지나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칫 뇌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신경이 손상돼 원치 않는 장애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뇌에 그물처럼 얽힌 신경섬유를 한눈에 볼 수 있다면 수술 부위를 정확하게 결정해 신경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 분자의 확산 이용한 MRI 기법
최근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소장 조장희)는 사람의 뇌를 손금 보듯 볼 수 있는 ‘퓨전 뇌영상시스템’(PET-MRI Hybrid System)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MRI(1.5T·Tesla, 테슬라는 자기장의 강도를 가리키는 단위)의 차세대 버전인 고해상도 MRI(7.0T)를 이용해 뇌 표면의 6겹 잔주름과 미세혈관, 뇌간에 있는 작은 구조들까지 생생히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뇌과학 전용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HRRT-PET)를 결합해 뇌 혈류 이상이나 물질대사 이상, 뇌 인지기능 이상 등까지 조기에 진단하려 한다. 그야말로 꿈의 장비를 통해 뇌 질환의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영상으로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정말로 퓨전 뇌영상시스템은 우리가 몰랐던 뇌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드러낼 것인가. 오랫동안 인간의 뇌는 국소적으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작은 단위로 나뉜 것으로 알려졌다. 뇌 과학자의 연구도 뇌의 각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국소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뇌에서 인지기능이 수행될 때는 다양한 뇌 영역이 동시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기능적 신경회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 결과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PET를 비롯해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고밀도 뇌파를 이용한 사건관련전위 지도화(ERP mapping)처럼 뇌 기능을 파악하는 영상화 기술이 널리 쓰이게 됐다.
실제로 fMRI는 뇌의 신비에 다가서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감각이나 운동·인지 활동 등에 나타나는 신경세포 활성화 여부를 수소원자핵이 자기공명을 통해 발생하는 신호의 변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뇌의 특정 부위가 작동할 때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혈류량이 증가하면 자기공명영상장치에 그 부위가 밝게 표시되기 때문이다. fMRI를 이용하면 감정에 따른 뇌의 변화도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영역은 성적인 흥분에 관련된 부위가 아니라 동기 부여나 보상, 욕구에 관련된 영역이었다. 또 로맨스에 대한 반응은 주로 우뇌에서 나타나고, 얼굴의 매력에 대한 반응은 좌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처럼 PET나 fMRI를 이용한 기능적 뇌 영상 기법은 뇌 내부의 기능적 연결성을 파악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기법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뇌신경 연결 상태를 직접 살펴볼 수 없다. 종래의 구조적 MRI를 이용하더라도 신경 다발들로 주로 구성된 백색질의 신경 연결 이상 여부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퓨전영상시스템에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외상성 뇌손상이나 다발성경화증, 정신분열증 등에서 신경 네트워크에 관한 뇌 영상 진단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이때 위력을 발휘하는 게 ‘확산텐서 자기공명영상’(DTI·Diffusion Tensor MRI)이다.
한마디로 DTI는 분자운동으로 컵 안에 떨어진 잉크 방울이 퍼져나가는 확산현상을 이용한 MRI 기법이다. 즉, 뇌에서 물분자의 확산이 세포 조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영상화한 것이다. 예컨대 MRI에서 자기장의 공간적 변화를 주는 경사자계를 6방향 이상으로 걸어 뇌 영상의 각 픽셀에서 나타나는 3차원적 확산을 측정한다. DTI가 각광받는 이유는 신경을 따라 확산의 방향이 결정되는 성질을 이용해 살아 있는 사람의 뇌신경 다발을 추적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발성 경화증’ 진단의 길 열려
이러한 DTI는 다양한 분야에서 뇌의 비밀을 밝히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난 1996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의과대학원의 신경·정신의학자 켈빈 림 박사는 DTI를 정신분열증 연구에도 적용했다. 그는 환각이나 망상 같은 정신분열병 환자들의 일반적인 증상이 뇌의 신경 네트워크 이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측했다. 그것은 한동안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다 동료 연구자에게서 DTI의 원리를 소개받아 정신분열병 환자의 뇌 영상에 적용했다. 이를 통해 기억과 인식 등에 장애를 일으키는 신경섬유의 해부학적 연결성 문제가 영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경섬유의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 셈이다.
초기의 DTI 영상은 판독자에게 확산의 정도를 단편적으로 제공하는 정도였다. 뇌 신경섬유의 특정 부위가 막히거나 손상됐을 때, 뇌에 있는 물분자의 확산 방향과 양태에 변형이 일어난다 해도 2차원 영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복잡한 뇌신경을 반영하는 물분자의 3차원 확산 운동을 판독자가 눈으로 신경다발을 추적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연세대 의과대학 박해정 교수(분자신경영상연구실)가 DTI 3차원 영상을 이용해 신경다발을 추적하는 도구인 ‘두디티아이’(DoDTI)를 개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도구를 세계 연구자들에게 무료로 공급하고 있는 박해정 교수는 뇌성마비와 선천성 맹인 연구에 신경경로추적 기법을 적용해 정상인과 다른 뇌신경 연결성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MRI를 이용해 뇌신경 연결을 살피는 영상 검사법으로 등장한 DTI는 뇌 손상 부위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마치 뇌 조직 깊숙이 자리잡은 신경섬유를 현미경 위에서 살피는 것 같은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DTI를 통해 정확한 진단의 길이 열린 질환이 ‘다발성경화증’이다. 이 질환은 신경섬유를 보호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신경초’(Myelin)가 파괴되는데도 기존의 뇌 영상 기술로 파악할 수 없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환자의 재활치료 평가에도 DTI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게 됐다. 뇌 신경섬유의 회복 상태를 DTI로 파악해 예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향후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동안 DTI로 작성한 ‘신경섬유 연결 지도’는 뇌과학 연구와 질병의 진단까지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PET나 fMRI, ERP mapping 등으로 뇌 조직의 기능과 상태를 파악했다면 DTI로는 조직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DTI를 통해 뇌의 각 영역 간의 연결을 담당하는 신경 고속도로를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DTI 기술은 뇌에서 지방도나 마을길 같은 미세한 연결구조를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박해정 교수는 “현재의 DTI는 뇌의 거시적 연결성을 파악할 뿐”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DTI의 임상적 응용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해 세밀한 신경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 더욱 다양한 질환의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퓨전영상시스템에 DTI를
얼마 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기술전문지 <테크놀로지리뷰>(4월호)는 DTI를 ‘나노의학’ ‘화학생물학’ ‘인식 라디오’ ‘핵 재조합’ 등과 함께 ‘미래 사회를 이끌 10대 기술’로 선정했다. 현재 임상에서 도입되기 시작하는 DTI가 당장 임상적 효과가 미미할지라도 미래 가능성이 큰 기술로 인정받은 셈이다. 지금으로선 DTI는 신경섬유 다발의 명백한 손상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미세한 신경 연결을 DTI로 파악하게 된다면 신경계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획기적인 도구로 자리잡을 것이다. 앞으로 개발될 퓨전영상시스템에 DTI 기술이 접목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DTI 기술의 진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최근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소장 조장희)는 사람의 뇌를 손금 보듯 볼 수 있는 ‘퓨전 뇌영상시스템’(PET-MRI Hybrid System)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MRI(1.5T·Tesla, 테슬라는 자기장의 강도를 가리키는 단위)의 차세대 버전인 고해상도 MRI(7.0T)를 이용해 뇌 표면의 6겹 잔주름과 미세혈관, 뇌간에 있는 작은 구조들까지 생생히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DTI 영상 기법으로 뇌신경의 연결성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이 기법을 이용해 측정한 MRI 영상을 컴퓨터로 분석해 뇌신경 다발의 분포를 재구성한 이미지. (박해정 교수 제공)

DTI 영상은 신경계 질환을 진단하거나 수술계획을 세우고 재활치료를 하는 데 응용할 수 있다. DTI 영상에 나타난 뇌성마비 환자의 오른쪽 대뇌피질척수신경(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왼쪽 위 그림)이 정상인의 신경(오른쪽 위)보다 연결성이 떨어진다. 뇌량 무형성증 환자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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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I 기술은 뇌 기능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MRI 기기로 뇌를 촬영하면서 DTI 기술을 적용해 뇌 신경세포 영상까지 얻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