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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생명, 그 마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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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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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극단에 선 동물들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경이로운 생명>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경이로운 생명>(팀 플래너리 글, 피터 샤우텐 그림, 이한음 옮김, 지호 펴냄)은 비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같다. 해리 포터의 기차역 같은 것 말이다. 그 입구 너머에는 진화라는 마법에 걸린 생명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동물학자 팀 플래너리와 야생동물 전문 화가 피터 샤우텐은 완벽한 호흡으로 전세계의 진기한 동물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이로운 생명>은 단순히 ‘관광’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은 필사적인 생존의 투쟁 끝에 진화의 극단에 서게 된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들은 점점 겸손해지게 된다. 책은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더듬는 ‘짧은 연대기’, 해발 5천m의 산 정상에서부터 저지대까지 다양한 서식지에 사는 동물들을 그린 ‘수직으로 본 세계’, 기발한 이동법으로 환경의 제약을 뛰어넘는 ‘이동 전문가들’, 먹이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진 동물들을 살펴보는 ‘먹이와 섭식’, 놀라운 위장술을 가진 ‘형태를 바꾸는 동물들’, 심해 등 극한 환경과 싸우는 ‘특이한 서식지에 사는 동물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탄을 자아내는 그림들이 페이지를 가득 메운다.


책의 첫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새들의 모습은 인간의 구애 행위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몸집의 세 배가 넘는 꼬리깃털을 달고 있는 흰긴꼬리풍조, 무지개갯빛으로 반짝이는 부채 모양의 꼬리깃털을 가진 물까치라켓벌새 등은 인간이 볼 수 없는 자외선을 번쩍이며 화려한 춤을 춘다.

빨강부치는 다리처럼 생긴 네 개의 지느러미로 바다 밑바닥을 걷는다. 황금납작코원숭이는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눈 속으로 정기적으로 모험을 떠난다. 먹이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는 특히 재미있는데, 나뭇잎처럼 소화하기 어려운 먹이를 먹는 종은 똥배가 나오고, 기어다니는 벌레를 먹는 종들은 얼굴이 부리처럼 변한다. 배설물을 뒤져 먹이를 찾아야 하는 동물들을 대부분 대머리다. 그래서 화식조의 배설물을 뒤져 씨를 찾아 먹는 독수리앵무의 머리는 시원하게 벗겨져 있다.

특이한 서식지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도 기괴하다. 슬로베니아 산맥의 동굴에 사는 올름은 100년 가까이, 동굴의 차가운 물에서 거의 먹지도 않고 살아간다. 심해에 사는 동물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모습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 목이 반쯤 잘린 것처럼 생긴 쥐덫고기는 턱으로 먹이를 문다고 해도, 먹이가 여전히 몸 바깥에 있는 기묘한 상황을 연출한다. 심해 아귀류의 수컷은 암컷을 만나면 암컷의 몸으로 파고들어 피를 빨아 먹으며 몸의 일부분이 돼버린다.

가끔 책은 진기한 ‘순간 이동’을 선물하기도 한다. 좀 무엄한 제안이긴 하지만, 이 책을 물이 튀지 않는 화장실 선반에 놔둔다면 어떨까. 화장실이 우주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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