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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출판] 시, 뇌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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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2 00:00 수정 : 2008-12-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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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은유로 과학을 그려내는 <뇌의 문화지도>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과학저술가라는 직업군이 풍성한 외국에서는 여러 층위의 과학저술들이 나타난다.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 <엘리건트 유니버스>의 브라이언 그린, <게놈>의 매트 리들리처럼 분야 전문가들의 역작도 눈부시지만 (우리가 봐서는) ‘문외한’들의 과학저술도 본격적이다.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여자> 등 생물학 관련 과학서를 집필하는 내털리 앤지어는 물리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 자신이 문외한임을 전제로 한 뒤 과학이론에서 소외된 자들을 ‘대표’하여 과학자들을 만나 질문한다. 이렇게 소화한 과학이론은 방대하다. 전문적이면서 대중적이 된다.

<감각의 박물학> <나는 나의 우주를 가꾼다>을 쓴 다이앤 애커먼도 특이한 과학저술가이다. 그는 사물을 바라보고 은유하기를 즐긴다. 바라보기는 충일감, 자연과의 일합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연주의자다. 그 눈은 사물의 본성을 서술하는 과학과 결합하면서 더욱더 정교해졌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실험재료 삼아 과학적 사실을 적용하고, 과학적 사실로 유추해 인류의 본성을 꿰는다. 그가 하는 일에 이름 붙인다면 ‘시인’이 가장 적절하겠지만 그가 다루는 것은 ‘과학적’ 감정과 은유다.


그는 최신작 <뇌의 문화지도>(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펴냄, 2만2천원)에서 ‘뇌’를 화두로 사물들을 포획해나간다. 그가 뇌를 정의하는 말을 들어보라. “반짝이는 존재의 둔덕, 쥐색 세포들의 의회, 꿈의 공장, 공 모양의 뼈 속에 들어 있는 작은 폭군, 모든 것을 지휘하는 뉴런들의 밀담, 어디에나 있는 그 작은 것들, 그 변덕스러운 쾌락의 극장, 운동 가방에 옷을 너무 많이 쑤셔넣었을 때처럼 두개골 속에 자아들이 가득 들어 있는 주름진 옷장.” 6부 ‘말, 뇌는 시로 세상을 항해한다’는 그의 이번 작업(뇌)과 그가 해온 작업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이다. 그는 “언어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경험을 분석하고 정돈한다”는 워프의 정리를 빌리는데, “뇌가 물리적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경험을 또 다른 경험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은유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그의 은유는 삶과 밀접하게 결합한다. 선사시대와 현대사회의 인간의 뇌는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현대 인간의 뇌도 선사시대의 뇌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 재미없는 ‘과학적 사실’은 그에게 이르면 박완서가 갈파한 “우리는 왜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가”의 설명으로 넘어간다. “나는 분노 때문에 호르몬이 분출되는 것도 싫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도 싫”지만 우리의 뇌는 “갑작스런 돌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감정의 강도를 조절하는 스위치 같은 것은 없”으며 그래서 “수술도구를 사용해야 할 일에 감정이라는 망치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5부 ‘감정이라는 망치’) 철학이 종교와 연결되고, 명상이 운동이 되고, 문학이 사회에 대한 명철한 고발이 되듯 그에게서 과학은 문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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