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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깨진 접시의 개성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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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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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디자이너 이상훈의 불량품 브랜드 숍 ‘임퍼펙트’…
대량생산체제가 버린 수공예적 미학을 진열대에 올려놓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아이덴티티에 기초한 프로덕트 디자인을 가르치는 이상훈(홍익대 강사)씨는 지난해 7월 독일의 생활용품 디자인기업 코치올사에 메일을 보냈다. 개인전 ‘임퍼펙트 숍 시뮬레이션’전을 앞두고 코치올사에서 생산하는 제품 가운데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불량품’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곧바로 코치올사 언론공보 담당자의 답변을 들었다. “흠집이 나거나 색깔이 잘못된 제품 가운데 특이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이 쓰임새가 있다니 기쁘다”면서 기꺼이 서울에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재활용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불량품에 날개를 달아준다. 독일 생활용품 디자인기업 코지올사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코치올사는 항공특송비까지 부담해 불량품을 보내줬다. 이씨는 코치올사의 불량품에 ‘임퍼펙트’(Imperfect·불완전한)라는 로고를 새긴 뒤 진열장에 넣었다.


기계와의 디자이너의 슬픈 인연

이처럼 임퍼펙트라는 브랜드로 주목받는 이상훈씨의 작업은 단순해 보인다. 놀랍게도 제품 생산에 개입하지 않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불량품으로 낙인찍혀 소비자들을 만나지 못하는 제품에 임퍼펙트라고 새기는 게 전부다. 물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기계들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제품을 확보하면 작업의 절반 이상이 끝난다. “불완전하다는 것은 하나의 독특한 개성이죠. 그들의 개성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품의 의미를 재해석하거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버려진 1%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제품에 이미지를 이식하려고 애쓴다. 스타일을 창조해 소비자들과의 소통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창조적 행위는 생산라인의 기계에 내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매스미디어는 표준화된 가치를 이식해 완벽하지 않은 것들의 생기를 거세하기 일쑤다.

이물질이 붙은 꽃접시와 구부러진 국자 등은 폐기될 운명이었다. 이 제품들에 임퍼펙트 로고를 붙이자 폼나는 디자인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끊임없이 완성도 높은 표준의 공세가 되풀이되면서 아름다움의 기준마저 획일화되고 있다. 마치 완벽한 제품에 행복의 길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형국이다. 여기에서 디자이너의 창조적 실험은 봉쇄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스타일을 만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디자이너의 숙명을 이상훈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가 제품에 갇힌 디자이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실로 우연에 가까웠다. 대학원을 마치고 산업디자이너로서 각종 전자제품에 자신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위르헨 베이의 작품 ‘힐링 프로젝트’(1999)를 발견한 게 계기였다. “다리 한 개가 짧은 의자와 기다란 통나무에 등받이를 설치한 공공용 벤치를 봤어요. 미술 작가의 작품이려니 했는데 산업디자이너가 만들었더군요.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전공을 구분하는 국내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작업이라 생각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상훈씨는 2001년 3월 네덜란드로 날아갔다. 주위에서는 “밥 먹고 살려면 미국으로 가라”고도 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사회적 메시지가 현실 속에서 사람들에게 소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접을 수 없었다. 이씨는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의 석사 과정에 입학해 드로흐(Droog·건조함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디자인 그룹에 참여하는 교수진을 만났다. 이들은 이씨에게 남아 있던 완전함이나 표준 등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곳에서 이씨는 임퍼펙트를 작업의 핵심 주제로 삼기로 했다. ‘Imperfect’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I’m perfect’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머리숱의 경험, 표준은 무서웠다

애당초 이상훈씨는 불완전함의 희생양이었다. 그것을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깨달았다. 수업 과정의 하나였던 ‘IM Sanghoon’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유년 시절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백혈병으로 몇 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상훈씨는 불량품에 생기를 부여해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그로 인해 빼곡했던 머리숱을 잃어버렸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한 이씨의 모습은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표준에서 벗어난 대가였을 것이다. 이씨는 머리카락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생일선물로 가발을 받아 잠시나마 불완전함을 가릴 수 있었다. 물론 그런 ‘흉내’의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가발이 완전함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이 임퍼펙트 프로젝트에 반영돼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닐 것입니다. 저마다 나름의 사정으로 불완전한 상태가 될 수 있거든요.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완전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세상살이가 좀더 넉넉해지지 않을까요.” 이씨는 불완전한 제품을 제대로 대접하기로 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제품을 고급스러운 보관함에 넣어 보기 좋게 진열했다. 이씨의 품에 들어간 불량품은 순식간에 기계에 의한 수공예품으로 거듭났다. 도자기 공장에서 버림받은 깨진 접시, 이물질이 덕지덕지 붙은 유리컵, 긁힌 자국이 선명한 색깔 백열등 등이 저마다의 멋을 뽐낸 것이다.

물론 이씨의 임퍼펙트라는 로고는 불량품의 재발견에 머물지 않았다. 모든 개체가 독특한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며, 표준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디자이너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려고 했다. 누구든 임퍼펙트 로고가 새겨진 제품을 바라보는 순간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의 브리기타 데 보스 교수는 “이상훈씨의 임퍼펙트는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대량생산에 기초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지를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불량품에도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사회의 차별과 편견도 사라지겠지요.” 디자이너 이상훈씨는 머리숱이 모자랐던 유년기의 고통을 임퍼펙트 작품 활동을 통해 털어냈다. (사진/ 윤운식 기자)

그럼에도 국내에서 임퍼펙트 로고를 새긴 제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불량품을 얻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잘못이 발견된 제품에 ‘반출 금지’라는 꼬리표를 달아놓는다. 기계적 결함이나 사람의 실수 등에 따른 불량품 발생 사실을 숨기고 싶기 때문이다. 만일 이씨가 생활용품 공장의 쓰레기통을 자유롭게 뒤질 수 있다면 임퍼펙트 제품이 더욱 풍요로워질 게 틀림없다. 이씨는 기업들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당신의 눈이 되어서 불량품을 골라주겠다”던 한 회사 직원의 호의를 일반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매력적인 디자인의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이들 제품에서 디자이너의 자기 스토리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디자이너의 의도는 제품 부속품만큼의 대접도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의 자기 스토리를 제품 어딘가에 새기려는 이씨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강렬하다.

불량품도 꾸미면 완성품 못지않다. 이상훈씨는 경기도 여주의 도자기 공장 쓰레기 더미에서 상처 입은 접시를 찾아 번듯하게 포장해 작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디자이너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하는 이씨에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오로지 스타일만을 추구하는 디자인계의 흐름에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디자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아름다움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일단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만만치 않은 불량품 구하기

또 다른 임퍼펙트의 진화를 준비하는 이상훈씨. 디자이너로서 도시의 삶에 쉼표 하나를 찍는 작품을 선보이려고 한다.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 순간의 미소를 짓게 하고 싶은 것이다. 딱히 작업실이라 할 만한 공간도 없는 이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나마 해외에서 자신의 작품을 기억하고 학생들과 더불어 지낼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독일 코치올사로부터 ‘365가지 꿈의 나라’ 프로젝트에 초청을 받았고, 학생들과 함께 ‘슬로’를 주제로 전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화려하고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될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가치가 내면에 있듯 제품의 가치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요.”


노 디자인, 노 스타일

네덜란드 드로흐 디자인 그룹의 실험 정신

지금부터 13년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가구박람회에 특이한 작품이 선보였다. 네덜란드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출품한 중고 서랍 한 묶음과 누더기 의자였다.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이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첨단의 기능을 접목한 가구를 선보이는 전시에 고물상에서도 대접받기 어려운 물품을 내놓은 것이다. 놀랍게도 중고 물품은 그해 가구박람회의 최고 히트상품 목록에 올랐다. 디자인으로 주변 세상과 열린 대화를 추구하는 ‘드로흐 디자인’의 진지한 유머가 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뜻밖의 무대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드로흐 디자인. 이를 계기로 산업디자이너 헤이스 바케르와 디자인 비평가 레니 라마커르스는 이듬해에 드로흐 디자인 그룹을 설립했다. 산업사회의 버팀목 구실을 하는 디자인을 사람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였다. 드로흐 디자인 재단이 지향하는 디자인에 대해 헤이스 바케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시도는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우리는 단지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 싶다. 논쟁을 자극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감과 즐거움을 주고 싶다.”

당시 드로흐 디자인은 디자인의 존재 의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산업사회의 발전 등의 미덕에 사로잡혀 있었다. 디자인을 통한 발언보다는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로흐 디자인 그룹은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을 시도하고 젊은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프로젝트 디자인 그룹을 지향하며 디자인이 나름의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 그야말로 건조한, 스타일이 없는 디자인으로 “우리는 왜 이 제품을 디자인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현재 드로흐 디자인 그룹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디자인 단체로 발돋움했다. 그룹 참여자들이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노 디자인, 노 스타일’(No Design, No Style)이 상상력을 깨우는 디자인 실험으로 평가받은 때문이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재료들이 드로흐 디자이너의 아이러니와 유머 등을 통해 재탄생했다. 중고 서랍을 쌓은 옷장, 껍질이 있는 통나무에 등받이를 설치한 벤치 등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디자인을 제품에 가두는 스타일에 대한 강박을 떨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드로흐 디자인은 디자인의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량생산의 하위 개념이던 디자인의 자리를 당당히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드로흐 디자인의 가능성인 동시에 한계가 될 수도 있다. 서울대학교 한국디지인산업연구센터 이승윤 연구원은 “드로흐 디자인은 실용화를 잣대로 평가하긴 힘들다”며 이렇게 말한다. “드로흐 디자인은 메시지 전달에서 성공했다. 디자인의 개념을 예술로 확장한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모델도 나올 수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게 드로흐 디자인의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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