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권 지음, 푸른숲(031-955-1410) 펴냄, 1만1천원
김만덕은 유통업이 성행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 시대 변화에 명민하게 발맞춰 수천 금을 모은 기녀 출신의 거상이다. 제주에 기근이 닥쳤을 때는 주저 없이 전 재산을 내놓기도 했다. 그 공으로 임금을 알현하는데 상을 받기보다는 금강산 구경을 청한다. 그는 제주에 ‘만덕 할망’ 신화로 남았다. 신분, 성별, 출생지의 삼중 굴레를 뚫은 인물전에 제주의 문화사가 곁들여졌다.
자유주의자와 식인종
스티븐 룩스 지음, 홍윤기 외 옮김, 개마고원(02-326-1012) 펴냄, 1만8천원
제목은 철학자 마틴 홀리스의 말 “자유주의자에게는 자유를 식인종에게는 식인주의를”에서 따왔다. 다른 문화와의 ‘공존’을 도모하며 등장한 ‘상대주의’를 표현한 말이다. 저자는 상대주의가 다원주의 사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궁극적 절대성의 인정’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다. 역사에서 어떤 사회도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공격적 지구화 시대에 다른 가치들이 동일한 맥락 안으로 편입되면 갈등은 불보듯 뻔하다.
읽는다는 것의 의미
로제 샤르티에·굴리엘모 카발로 엮음, 이종삼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02-336-5675) 펴냄, 3만5천원
성장하면서 눈으로 읽기, 묵독을 체득하는 것은 ‘수상한’ 문자 세계로 진입을 표시하는 이정표다. 고대에 책을 읽는 것은 낭독자의 음성을 듣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에서 묵독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대학 시대 책이 글을 보존한다는 성격에서 지적 탐구를 위한 대상이 되면서 책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 묵독이 보편화됐다. 책의 혁명(인쇄술의 혁명)에 앞서 독서법의 혁명이 있었던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읽는다는 것’의 역사화를 시도했다.
미래의 맑스주의
이진경 지음, 그린비(02-702-2717) 펴냄, 1만6900원
지금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한다면 1991년 레닌의 동상이 끌어내려진 그날이 끝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미래라고 했는데, 항상 과거다. 과학, 불교철학, 탈근대 철학을 유랑하던 그가 이번에는 마르크스주의를 직시하고 ‘미래’를 재구성한다. 그는 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코뮌주의’가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모델이며, 이 코뮌은 공동체 ‘내부성’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과의 만남을 통한 ‘외부성’과 그에 따른 변이를 작동 원리로 가진다고 말한다.
원더풀 아메리카
프레드릭 루이스 알렌 지음, 박진빈 옮김, 앨피(02-335-0525) 펴냄, 1만9800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 주식시장이 대폭락한 1929년 사이에 ‘젊은 제왕’ 미국의 정체성이 생겨났다. 이 전례 없는 호황기에 금주법과 알 카포네의 갱단이 활약했고 ‘부자의 꿈’이 정교화됐으며 ‘잃어버린 세대’의 소설가들이 활동했고 스윙재즈가 연주됐다. 이 책이 별걸 다 기억하는 능력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1931년에 발행됐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무는 대신 편집자들이 1천 장의 사진자료를 첨부하는 노고를 기울였다.
반도에서 나가라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스튜디오 본프리(02-742-2352) 펴냄, 상 9800원·하 1만2천원
북한 선발대 9명이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도쿄돔을 점거하고 3만 관객을 인질로 삼는다. 부자들을 체포, 고문해 재산을 몰수하는 ‘혁명가’들에게 민심은 환호를 보낸다. 하지만 혁명가들은 일본의 현실에 혼란을 느낀다. <쉬리>에서 흡수한 듯한 스토리라인에 국가보다는 개인에 방점을 찍어온 작가의 이력이 결합한 가상 역사소설. 영화화를 전제하고 집필했는데 일본은 이 스케일을 감당할 수 없다며 한국 감독에게 제안을 했다 한다.
풋
유소영 외 지음, 문학동네(031-955-8888) 펴냄, 3900원
문학동네가 펴낸 청소년을 위한 문학잡지의 ‘맛보기호’. 특집은 ‘친구야, 놀자~’이다. 책 속에 나오는 ‘사랑스럽고 풍기문란한’ 십대들, 십대를 다룬 영화의 단골인 친구, 소설가 김연수의 오래된 친구인 책, 십대들의 내 친구 이야기가 펼쳐진다. “요즘에 문학 좋아하는 애들이 어딨어” 하는 회의론을 다감한 일러스트, 울긋불긋한 색감, 감각적이고 시원한 편집으로 흩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앙코의 청춘일기’는 역시 기대작!
한국언론인물사상사
조맹기 지음, 나남출판(031-955-4600) 펴냄, 1만6천원
한국 언론사에서 중요한 11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국 언론사를 살펴보았다. 개화기 언론인 서재필, 윤치호, 장지연, 신채호로부터 일제 강점기 이광수, 홍명희, 해방 이후 안재홍, 천관우, 최석채, ‘대안언론’으로 장준하, 송건호 등이 실렸다. 사상적 스펙트럼이 넓은데 “각 언론인의 언론관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언론인의 친일·친정부의 행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매도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에 이들이 나란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