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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의달려라밴드] 링고사마와 동경사변에 버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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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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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음악의 실시간 업데이트, 동경사변 2집 <어덜트> 발매… 자의식 덩어리인 메이저 여가수 시이나 링고가 원했던 밴드 활동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2005년 4월 스무 살이 된 대학생 진달래양. 온라인에선 일명 ‘미카짱’으로 통한다. 고1 시절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을 읽고 여주인공 미카케에 반한 뒤 만든 닉네임이다. 지난 주말에는 친구 김벚꽃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 <나나>를 관람했다. ‘나나’란 이름을 가진 두 아가씨의 도쿄 생활이 그 줄거리로 야자와 아이의 원작 만화가 얼마나 잘 영화화됐을지 의심스러웠지만 뮤지션 나나 역을 맡은 가수 나카시마 미카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에 친구를 꼬였다. 극장 관람 뒤엔 순례여행처럼 노래방에 들렀다. 진달래는 김종국, 이수영, 나카시마 미카 퍼레이드를 펼쳤고 김벚꽃은 시이나 링고(椎名林檎)와 동경사변(東京事變) 노래를 줄곧 불러댔다. “나 요즘 링고사마에게 완전 버닝 중이거든♡.” 김벚꽃이 불타는 맘을 숨기지 않는다.

여성, 절망, 강박증, 기모노, 가부키…


그렇다. 가상 인물 진달래와 김벚꽃은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일본 대중문화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며 중·고교 시절을 보낼 수 있는 대한민국 실존인물들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방에서 가요와 제이팝을 섞어 부르는 이들은 <드래곤볼> 해적판이 무엇인지 모르는 또 하나의 신세대다.

독특한 세계관으로 국내에서도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시이나 링고. 그는 2004년 ‘동경사변’이란 밴드의 이름으로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났다.(사진/ⓒTOSHIBA-EMI LIMITED)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뒤 4단계에 걸쳐 이뤄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로 일부 방송 장르를 제외한 출판·게임·영화·음반·만화 영역에서 전면 개방이 이뤄졌고, 일본 대중문화는 일상화됐다. 이런 변화 덕분에 어떤 이는 6월에 방한이 예정된 NHK교향악단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고, 또 어떤 이는 퓨전밴드 티스퀘어의 7월 공연 티켓을 이미 예매했다. 김벚꽃은 시이나 링고의 3집 <석회정액밤꽃>을 3만5천원짜리 수입 음반 대신 1만5천원짜리 라이선스 음반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인기를 더해가는 시이나 링고의 음악은 일본통이든 음악통이든 한 번씩 감상해볼만하다. 자우림의 김윤아와 종종 비교되는 그는 김윤아를 좋아하는 이에게도, 그렇지 않은 이에게도 각기 다른 이유로 호소력을 지닌다. 농밀하고 음습한 음악이 드문 국내 가요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시이나 링고는 ‘링고사마’ ‘링고히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자의식, 여성, 절망, 강박증, 자살, 기모노, 가부키…. 그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주요 성분이다.

1978년생 후쿠오카 태생인 시이나 링고는 얼굴이 ‘링고’(사과)처럼 잘 빨개지고 비틀스의 링고 스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링고’라는 예명을 자신에게 선사했다. 음악광인 아버지와 발레 경력을 지닌 어머니 아래에서 중산층 가정의 딸로 순조로이 자랐지만 중학교 시절 전력투구를 다했던 클래식 피아노와 발레를 포기하면서 인생 최대의 좌절을 맛보게 된다. 어깨의 대칭이 필요했던 두 가지 종목은 선천적 지병을 지닌 링고에게 무리였다. 소녀는 낙오자의 이미지 위에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포개며 자의식의 우물을 깊이 파내려갔다. 어린 시절 동네 아저씨가 무심코 던진 성희롱적 발언이 그에게 트라우마로 각인된 지 이미 오래였다.

1998년에 나온 데뷔 싱글 <행복론> 이후의 음악적 행로가 의식의 파편들을 붙잡는 과정으로 전개되는 건 당연한 절차일지도 모른다.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시부야계 음악의 대척점에서 ‘신주쿠계’를 선언했던 그의 개성은 1집 <무죄모라토리엄>(1999)의 독특한 음반 제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99년 가을 간호사 복장을 선보인 싱글 <본능>의 프로모션 비디오가 화제를 일으키며 빅히트를 쳤다. 다음해 나온 2집 <승소스트립>의 오리콘 차트 1위는 예정된 성공. 순결과 관능, 실험성과 대중성이란 양면의 얼굴을 지닌 링고의 음악은 록, 재즈, 팝으로 범벅됐다. 2000년 결혼, 이혼, 출산을 겪은 메이저 여가수의 자의식은 2003년까지 발표된 3장의 정규 음반으로 만개한다. 그는 2002년께부터 점차 밴드적 표현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했고, 결국 2003년 ‘시이나 링고’를 매장하고 밴드 활동을 선언한다. 2004년 7월 후지록페스티벌 무대에서 프로젝트 밴드 ‘동경사변’의 화려한 신고식이 치러졌다.

그는 ‘동경사변소신표명’(東京事變所信表明)에서 소신을 표명했다. “메이저에서 활동하면서 이렇게 밴드를 만드는 것은 데뷔 전부터 바랐던 일입니다. 밴드는 언젠가 제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으며, 솔로가 만들 수 있는 음악은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첫 번째, 두 번째 음반에서는 좋은 멤버들과 세션을 하였고, 세 번째에서는 제 자아를 전개해왔습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혼자서 만드는 음악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밴드가 갖는 의미는 ‘여기만은 더럽히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최상의 형태입니다. (중략) 일본의 팝신에서 없으면 안 될, 마음껏 연주해서 내보내는 음악, 모두의 평균적인 체온에서 만드는 음악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동경사변은 2004년 11월 1집 <교육>, 2006년 2월 2집 <어덜트>를 내놨다. 라이선스 음반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전방위 에너지의 1집, 안정적인 2집

2집 <어덜트>는 1집에 비해 더 안정적이다. 그러나 기타와 키보드 멤버가 교체되기 이전의 거친 에너지가 삭감된 건 사실이다. 재즈 스트리트 밴드 ‘페즈’ 출신 HZM가 키보드를 맡고, 히라마 미키오가 기타를 잡았던 1집의 음악은 자유분방하다. 돌멩이와 물풀에 부딪히며 360도 아무 방향으로나 뻗어대는 수천·수만 개의 물줄기를 품고 상류에서 하류로 거침없이 흘러가는 큰 강물처럼 소리는 제멋대로 유유히 흘러간다. 호불호 논쟁에 시달리는 2집 <어덜트>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작이며, 동경사변을 처음 접하는 이에겐 1집보다 오히려 덜 부담스럽다. 2집 노래 제목만 열거해도 링고사마의 아우라는 묻어나온다. <비밀> <싸움꾼> <아수라장> <설국> <가부키> <황혼의 울먹임>. 4월7일부터 5월30일까지 예정된 일본 내 전국투어 21회의 티켓값은 S석이 6500엔, A석 5800엔, B석 5200엔. 환율을 고려하면 웬만한 서울의 콘서트 값보다 싸다. 음반이 팔려야 국내 콘서트 값도 제자리로 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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