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독자 메일 가운데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사연들도 적지 않으니,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밤이 두려워요”다. 주로 남성 독자들의 하소연이다.
“저도 대화니 배려니 실천하고 싶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어떻게든 제대로 해서 그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마음뿐입니다. 가만히 누워 쉽게 즐기는 여자들이 어쩔 땐 얄밉습니다.”
“그녀와 멀티플 오르가슴 얘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 뒤로 더 위축됩니다. 멀티플 오르가슴이 안 되는 이유를 저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남자들은 거의 한 번으로 끝나잖아요. 그녀를 사랑하지만 섹스는 정말 두려워요.”
‘제대로 하는 것’은 뭘까? 많은 남자들은 ‘깊이’ ‘오래’ 하는 것을 꼽는다. 심리적인 위축은 왜 생길까? ‘깊이 오래 하지 못해 그녀가 비웃을까봐’다. 실체적 진실보다는 가상의 공포에 울고 웃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다니. 이런 마음으로 그 많은 날들을 보내다니. 진심으로 “아임 소리”다.
발기력과 지속력만큼 남성을 괴롭히는 게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걸로 섹스의 완성도를 따지는 여자들 그리 많지 않다. 섹스는 대단히 심리적인 행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상당수 여자들이 섹스 도중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상대의 크기나 시간이 아니다.
한때 나는 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다. 콘돔 실천은 꾸준히 했지만 간혹 격렬한 행위 끝에 상처가 날 경우, 밑도 끝도 없는 공포심에 빠져들었다(상대가 아니라 나를 못 믿어서). 사실 책상머리에서 섹스 얘기를 할 땐 누구라도 용감해질 수 있지만, 실전에서 우리 모두는 그저 여리고 소심한 영혼일 뿐이다. 혹은 그런 몸일 뿐.
‘평소에는 새끼손가락, 흥분하면 엄지손가락’인 남자가 있다. 그는 여러 ‘보조장치’를 동원한다. 충분한 전희와 후희, 중간중간 ‘쉬었다’ 하는 노력, 성감을 이어갈 적절한 음식과 음악, 때론 각종 기구들까지. 그는 자기 ‘한계’를 알되 매이지 않고 넘어섰다. ‘평소에는 팔뚝, 흥분하면 발뚝’인 남자가 그저 용만 쓴다고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스스로를 ‘섹스킹’이라고 여기는 남자들(성감수성이나 성인지력이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들 사이에 ‘크기 신화’가 정설처럼 얘기된다는 한 고등학생 독자의 제보도 있었다) 중에는 무조건 ‘크게 세워 오래 하면’ 다 되는 걸로 아는 이들이 많다. 무수한 시청각 자료에서 무작정 들이대 헉헉대며 굴곡 없이 정상에 오르는 왜곡된 행위를 확대·과장·반복하는 탓일까? 그런 자료는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폭력이다. 여자들은 정서적 교감 없이 들고 나는 자극만으로 고지에 오르려는 이들을 크기와 시간과 무관하게 ‘토끼’라고 부른다.
기실 여자들이 섹스 도중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임신 공포다. 남성 제위의 노고에 존경을 보내지만, 정도 이상의 고민은 안 하면 안 되겠니? 영 괴로우면 터놓고 얘기해보시라. 우리의 가부장적 교육 과정과 성장 환경을 믿어보시라. 열에 아홉은 “나는 자기랑 그저 꼭 끌어안고 있기만 해도 좋은걸”이란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설사 속은 좀 쓰려도). 그러니까 눈치는 보되 위축될 만큼 보지는 마시고, 고민할 시간에 예쁘고 질 좋은 콘돔이나 챙기시길.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