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관광’온 외국 관객 유치에 바쁜 동숭동… <지하철 1호선> <의형제> <난타> 등 마케팅 다각화
최근 기자 크리스토퍼 토시아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국의 20대들이 한국 현대사를 다룬 어려운 작품, 그것도 2시간40분 남짓한 긴 연극에 몰두해 있는 모습이 우선 놀라웠고, 그 시간 동안에 자기가 알고 있는 한국 현대사를 한번 복습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랬다. 영문자막이 있어 외국인들이 한국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작품이라고 판단한 토시아는, 기획을 맡은 학전 사무실을 방문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극을 보며 한국 현대사를 이해
이처럼 하나둘씩 늘어나는 외국인 관객을 노려, 동숭동은 요즘 물 건너온 손님맞이 준비에 바쁘다. 한국 관광의 해를 맞아 외국 관광객에게 한국 연극을 소개할 방안을 찾느라 고심하는 것이다. 극단 난타와 학전. 이 두 극단은 2월 들어 특히 일본인을 타깃으로 하는 마케팅을 준비중이다.
학전은 장기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의형제>의 무대에 이제까지 넣어오던 영어자막과 병행해 2월 중순부터 일어자막을 제공하기로 했다. 학전은 이미 18만 관객이 관람한 히트작 <지하철 1호선> 때부터 영어자막을 넣어 세계 관객을 배려한 바 있다. 특히 가까운 나라 일본의 젊은 관광객이 입소문을 타고 많이 모여들었다는 후문이다. 한명이 보고 가서 좋으면 그룹을 지어 다시 구경을 오고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지하철 1호선>이 외국인들의 인기를 조용히 끌어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김민기 대표는 이렇게 풀이한다. “<지하철 1호선>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서울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이때 처음 외국인 관객이 공략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요. 또 <의형제>는 한국 현대사를 압축한 작품이고요. 그러니까 짧은 시간에 한국을 알기에는 딱 좋은 상품인 겁니다.” <의형제>의 배경은 한국전쟁 때부터 유신말기까지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인 무남이와 현민이는 그러나 영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현민은 부잣집에 양자로 가서 적산가옥에 살고, 무남이는 가난한 엄마와 난폭한 형과 함께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산다. 둘은 우연히 만나 의형제가 되고, 영희라는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사이좋게 지내지만, “서로 친형제라는 사실을 안 순간 한날 한시에 죽으리라”는 점쟁이의 불길한 예언이 이미 떨어진 터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민이는 경기고등학교 우등생에, 대학생에, 유학생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한편, 무남이는 공장에 들어갔다가 노동운동에 가담해 감옥에 갇히고, 그 이후로는 정신병원에서 주는 약에만 기대서 산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무남은 자기와 결혼한 영희가 현민과 간통했다고 생각하고 TV방송국에서 생방송을 찍고 있는 현민에게 총을 겨눈다(02-763-8233). 역시 장기공연중인 난타는 여행사와 연계해 연극관람을 여행프로그램으로 끌어넣는 작업 등에 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평. 난타의 인기는 일본에서 높다. 출연자 중 섹시한 남자 요리사로 출연하는 유승용씨에게는 “이상형이다”라는 일본여성들의 펜레터가 쏟아졌다는 후문. 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난타쪽은 아예 ‘난타 관람을 위한 투어’를 고안해 일본 JTB, PANA여행사와 제휴하고 2월을 ‘일본인 관광객의 달’로 정했다. ‘난타 관람을 위한 투어’는 2월 둘쨋주부터 매주 한번씩 있을 예정이다. 한국어로 전화예약을 하는 일본인에게는 관람료를 20% 깎아준다. 2월14일 8시에는 정동 난타전용극장에서 서른살 이하의 한·일 남녀가 선물을 교환하고 펜팔친구를 맺는 이벤트도 마련한다. 또 2월5일에는 일본 <니혼TV>에서 ‘일요스페셜-돌격 한국진귀체험 난타’를 취재나와 녹화할 예정이다. 원래 <난타>의 공연 중에는 요리사들이 남녀 관객 두 명을 무대로 이끌어내 극에 참여시키는 대목이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일본의 탤런트 간다 우노와 나카오 아키라가 약식 한국 혼례복을 입고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여행프로그램과 연계한 마케팅
사진/에든버러 페스티벌을 비롯해 해외공연에서도 호평을 받은 <난타>. 극단 난타는 2월을 '일본인의 달'로 정하고 각종 이벤트를 실시한다. <난타>가 외국인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한국적이면서도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무대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2월1일 이 공연을 보고 나온 미국인 관광객 셜리 베네트(59)는 “내용 중에서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한국 관객이 느끼는 만큼 나도 느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녁 여섯시에 시작될 결혼식에 맞춰서 요리사들이 음식을 장만한다는 줄거리만 봐서는 한국적 정서와 전혀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난타> 역시 충분히 한국적이다. <난타>가 한국적인 이유는 청사초롱이나 천하대장군 같은 어설픈 소품 사용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오는 우리 가락, 우리 어깻짓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덩 덩 덩떠더덩, 더덩 더덩 덩떠 더덩” 하는 연주리듬은 북채가 아니라 식칼로 두드리는 것이 다를 뿐 사물놀이 가락 그대로다(02-739-8288).
동숭홀에서 공연중인 <도깨비 스톰> 역시 비언어극으로 외국인들에게 인기다. 공연마다 외국인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 이 공연을 주재하는 ‘미루스테이지’는 원래 정동극장에서 <풍무악>이라는 이름으로 풍물공연을 했었다.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 정동극장 상설무대는 원래 외국인들을 겨냥하고 만든 것이다. 덕수궁-정동극장-김치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관광코스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때 여행사 사람들이나 바이어 접대하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 <풍무악>을 소개했고, 이것이 <도깨비 스톰>에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외국인 유치는 해외공연 기회로도 이어진다. <도깨비 스톰>은 5월14일부터 26일까지 미국 시애틀, 타코마, 캐나다 캘거리 등지에서 열리는 ‘인터내셔널 칠드런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또한 7월25일부터 30일까지 ‘홍콩 인터내셔널 아트카니발’에서 초청공연을 갖는다. 미루스테이지의 여인동 단장은, “익산에서 ‘문화예술마켓’이 열렸을 때 30분짜리 샘플공연을 보여주고 제안받았다. 샘플공연으로 해외초청을 받은 것은 국내최초가 아닌가 한다”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사실 연극이라기보다는 퍼포먼스다. 출연자들의 몸짓도 연기를 하는 전반부보다 타악기를 두드리는 중간부분에서 비로소 살아난다. <도깨비 스톰>은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던 상사와 부하가 환상 속에 빠져들면서 생기는 이야기. 지루한 일상을 깨기 위해서 부하는 성냥갑, 커피잔, 휴지통을 두들긴다. 그러자 도깨비들의 세계가 열리고 부하직원은 자기도 모르는 자기 속의 리듬에 빠져든다. 어느덧 도깨비 세계에서 도깨비가 된 상사를 만나게 되고, 둘은 격렬한 타악기 연주를 통해서 싸우고, 웃고, 화해한다. <난타>와 다른 점을 꼽자면 조명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빛과 소리를 함께 체험하도록 했다는 점. 드럼스틱 안에 조명을 넣어 손을 휘젓는 궤적을 선명히 보여준다거나 하는 시도가 그것이다. 2월25일까지 공연을 마치고 구체적인 연장공연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02-2068-0657).
벅찬 비용과 번역의 문제도
외국인들에게 팔리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선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형제>의 기획을 맡은 이양희씨는 “문제는 작품성”이라고 말한다. 작품성이 있다면 언어의 벽이 큰 의미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영어자막을 넣어서 외국 관광객이 온 게 아니라, 외국 관광객이 오기에 영어자막을 서비스 차원에서 만들었다”라고 덧붙인다. 실제로 <지하철 1호선>은 올해 독일, 중국, 일본에 초청공연을 받아 해외로 나갈 예정인데, 셋 모두 영어권 국가는 아니다. 이들이 영어자막 때문에 극을 더 잘 이해해서 초청을 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영어로 옮기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영문자막을 주의깊게 보다보면 부분적인 실수도 아직까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의형제>의 주인공 무남이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장면에서 선생님이 “미국의 수도가 어디냐?”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에 잘난 척하는 무남이의 급우가 “파리요!”라고 대답하는데, 자막에는 “Flies!”라고 번역되어 나왔다. 워싱턴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을 자신만만하게 파리라고 이야기해서 관객을 웃기는 장면이니까 당연히 “Paris!”라고 번역해야 옳았을 것이다. 단기공연이 많은 우리 연극풍토에서 한대에 1500만원 하는 영어자막 전용 프로젝터나, 편당 이삼백만원 하는 번역료를 지불하기가 간단치 않다는 점도 영문자막 제작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이런저런 무거운 부담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올 연극계는 입소문에 이끌려 찾아온 외국 손님을 맞는 데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마케팅 단계로 넘어간 셈이다. 연극계가 이렇게 움직이는 동안 나라의 지원은? “외국어 공연정보 팸플릿 비치할 곳이라도 충분히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국가에서 뭘 해줬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어느 연극인의 대답이다.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사진/뮤지컬 <의형제>의 한 장면. 학전쪽은 '일어 자막도 넣어달라'는 일본인 관광객의 의견을 수렴해 2월 중순부터 일어자막을 시행할 예정이다.
학전은 장기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의형제>의 무대에 이제까지 넣어오던 영어자막과 병행해 2월 중순부터 일어자막을 제공하기로 했다. 학전은 이미 18만 관객이 관람한 히트작 <지하철 1호선> 때부터 영어자막을 넣어 세계 관객을 배려한 바 있다. 특히 가까운 나라 일본의 젊은 관광객이 입소문을 타고 많이 모여들었다는 후문이다. 한명이 보고 가서 좋으면 그룹을 지어 다시 구경을 오고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지하철 1호선>이 외국인들의 인기를 조용히 끌어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김민기 대표는 이렇게 풀이한다. “<지하철 1호선>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서울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이때 처음 외국인 관객이 공략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요. 또 <의형제>는 한국 현대사를 압축한 작품이고요. 그러니까 짧은 시간에 한국을 알기에는 딱 좋은 상품인 겁니다.” <의형제>의 배경은 한국전쟁 때부터 유신말기까지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인 무남이와 현민이는 그러나 영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현민은 부잣집에 양자로 가서 적산가옥에 살고, 무남이는 가난한 엄마와 난폭한 형과 함께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산다. 둘은 우연히 만나 의형제가 되고, 영희라는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사이좋게 지내지만, “서로 친형제라는 사실을 안 순간 한날 한시에 죽으리라”는 점쟁이의 불길한 예언이 이미 떨어진 터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민이는 경기고등학교 우등생에, 대학생에, 유학생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한편, 무남이는 공장에 들어갔다가 노동운동에 가담해 감옥에 갇히고, 그 이후로는 정신병원에서 주는 약에만 기대서 산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무남은 자기와 결혼한 영희가 현민과 간통했다고 생각하고 TV방송국에서 생방송을 찍고 있는 현민에게 총을 겨눈다(02-763-8233). 역시 장기공연중인 난타는 여행사와 연계해 연극관람을 여행프로그램으로 끌어넣는 작업 등에 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평. 난타의 인기는 일본에서 높다. 출연자 중 섹시한 남자 요리사로 출연하는 유승용씨에게는 “이상형이다”라는 일본여성들의 펜레터가 쏟아졌다는 후문. 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난타쪽은 아예 ‘난타 관람을 위한 투어’를 고안해 일본 JTB, PANA여행사와 제휴하고 2월을 ‘일본인 관광객의 달’로 정했다. ‘난타 관람을 위한 투어’는 2월 둘쨋주부터 매주 한번씩 있을 예정이다. 한국어로 전화예약을 하는 일본인에게는 관람료를 20% 깎아준다. 2월14일 8시에는 정동 난타전용극장에서 서른살 이하의 한·일 남녀가 선물을 교환하고 펜팔친구를 맺는 이벤트도 마련한다. 또 2월5일에는 일본 <니혼TV>에서 ‘일요스페셜-돌격 한국진귀체험 난타’를 취재나와 녹화할 예정이다. 원래 <난타>의 공연 중에는 요리사들이 남녀 관객 두 명을 무대로 이끌어내 극에 참여시키는 대목이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일본의 탤런트 간다 우노와 나카오 아키라가 약식 한국 혼례복을 입고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여행프로그램과 연계한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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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언어극 <도깨비스톰>의 공연 장면. 정동극장에서 풍물공연할 때부터 시작된 외국인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5월에는 북미지역,7월에는 '홍콩 인터내셔널 아트카니발'에서 초청공연을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