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와 영화 <왕의 남자> 잇는 뮤지컬 <이>, 오디션 현장…“여성 음역으로" “굵고 거칠게" 비중 커진 공길과 연산은 누구?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대체로 오디션 현장은 긴장감이 감돌게 마련이다. 짧은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참가자들은 떨림을 스스로의 방식대로 소화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끼’를 심사위원들에게 한껏 보여줘야 한다. 때때로 긴장에 폭소를 터뜨리거나 욕심에 오버가 속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것이 오디션장에서만 일어나는 전부는 아니다. 참가자들은 대기실에서도 노래 연습을 하다가도 곁눈질을 하며 웃음을 참지 못하다. 일찍 오디션에 나서는 이들은 가라앉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요염한 포즈로 심사위원을 ‘홀릴’ 준비에 여념이 없다.
탁재훈춤과 텀블링… 우인되기 어렵네~ 지난 3월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하의 서울예술단 연습실에서 뮤지컬 <이>(爾)의 최종 오디션이 열렸다. 역대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한 영화 <왕의 남자>의 연극 <이>를 뮤지컬로 만들 주역을 뽑는 자리였다.
1차 오디션에 지원한 350여 명 가운데 67명이 참가한 오디션이었다. 참가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아직까지 배역을 얻지 못했던 오디션 전문 배우에서 이미 각종 뮤지컬에서 주인공을 꿰차는 스타급 배우에 이르기까지 연산, 공길, 장생, 녹수 등 주요 배역과 우인(優人·광대)을 놓고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였다.
영화 <왕의 남자>의 흥행을 이어가려는 제작진의 의지는 참가자들의 차고 넘치는 끼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디션 진행자는 우인 역 선발 기준으로 “심사위원을 웃겨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웃음을 풀어내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저마다의 몸짓에 유행 코드를 새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몸을 비틀어 ‘황금 S라인’을 연출하고 한복 차림으로 ‘탁재훈춤’ 같은 코믹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오디션장을 체조경기장으로 여겨 텀블링 동작 등을 보여줬다. 굿 장단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를 추기 위해서였으리라.
이날 오디션의 핵심은 역시 주요 배역에 쏠려 있었다. 뮤지컬 <이>에서는 공길 역이 영화보다 비중이 커질 듯하다. 연극 <이>의 원작자로 뮤지컬 연출을 맡은 김태웅씨는 “공길의 드라마가 뮤지컬 중심에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공길이 연산을 죽이는 식으로 극적 반전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무리 공길의 욕망이 파국으로 치닫더라도 오디션장의 공길이 '여성성'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공길 역 지원자들 가운데는 뮤지컬계의 ‘꽃미남’으로 불리는 엄기준과 최성원도 있었다.
이들이 부른 지정곡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여자 주인공 루시가 부르는 <이건 위험한 게임이야>. 남자 배우로서 키를 네 음가량 올려 가성으로 불러야 했다. 뽀얀 피부의 꽃미남들 얼굴이 뻘게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만큼 여성 음역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숨겨진 여자의 피를 쏟아내 소름이 끼칠 듯한 가성으로 노래를 하더라도 심사위원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음악감독 변희석씨가 “G음으로 그 부분 다시 한 번 해보는 게 어때”라고 말을 하자마자 참가자는 “하시라면 합죠”라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뮤지컬 <이>에서는 영화에서보다 연산의 비중이 훨씬 커진다. 연극 <이> 초연(2001) 때 공길 역을 맡았던 배우 오만석이 연산 역을 지원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당시의 꽃미남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으리라. 오만석을 비롯해 김성기, 김법래 등 연산 역을 지원한 이들은 굵고 거친 목소리로 배역을 선보였다. 우인들 선발 기준이 소학지희(笑謔之戱)를 위한 참가자의 ‘필살기’에 있다면 주요 배역은 음악적 재능이 핵심 관건인 듯했다. 음악감독의 ‘참견’이 쉴 새 없이 이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10월 지방, 11월 서울 선보일 예정
이달 초 뮤지컬 <이>의 배역이 확정될 예정이다. 지금으로선 뮤지컬 <이>의 면모를 짐작하기 힘들다. 다만 제작진의 뜻이 반영된다면 전통 연희에 토대를 두면서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 작품이 될 듯하다. 이를 위해 김태웅씨는 “뮤지컬식이라는 틀을 버리고 바닥에서부터 원형질적인 것을 찾아내겠다”고 밝혔다. 조선 광대의 몸놀림과 소리를 새롭게 양식화하겠다는 말이다. 서울예술단(이사장 정재왈)이 혁신을 꾀하며 제작사로 나선 뮤지컬 <이>의 진면모는 오는 10월 지방(부산·울산)과 11월 서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탁재훈춤과 텀블링… 우인되기 어렵네~ 지난 3월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하의 서울예술단 연습실에서 뮤지컬 <이>(爾)의 최종 오디션이 열렸다. 역대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한 영화 <왕의 남자>의 연극 <이>를 뮤지컬로 만들 주역을 뽑는 자리였다.

"내 안에 여자의 피가 흐르는데" 뮤지컬 배우 최영원씨(오른쪽)는 목 부상에도 오디션에 참가했다. 왼쪽은 녹수역에 지원한 배우가 심사를 받는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