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집으로 활동 재개한 애시드 팝 밴드 롤러코스터
피아노·베이스·기타라는 평화로운 공동체에 스민 일상성 1999년 여름, 마감의 함대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9월에 예정된 졸업전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밥알을 삼키는 게 어려울 정도로 심신이 피곤했지만 빈곤한 상상력을 질책말라고 위로해주는 것들은 기껏해봤자 과일 한조각이나 찬물 세수였다. 술 같은 자극적인 오락거리는 삼가해야했던 시절이었다. 책상엔 종이더미와 컵라면 용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엔 제자리를 모르는 빗자루가 굴러다녔다. ‘애시드 팝’ 머리를 쥐어짜내 지었죠"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자양강장제가 바로 3인조 밴드 롤러코스터다. 리드미컬한 베이스 라인(지누·35), 먼지떨이처럼 맘속 찌꺼기를 털어주는 기타 소리(이상순·32), 곡의 등뼈를 만드는 단조풍의 키보드 선율(조원선·34)이 중첩되고 여성 보컬의 아련한 음색이 얹혀지면 흥겹고 애틋한 노래가 완성된다. 360도 회전을 할지언정 언제나 변함없이 출발점에 돌아오는 롤러코스터는 결코 록발라드처럼 궤도를 이탈해 극한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들의 불합격 소식에 누웠던 어머니가 저녁이면 일어나 밥을 짓듯 희로애락은 일상의 진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속마음이다.
1999년 데뷔 당시 가요는 록, 발라드, 댄스 셋 중 하나였다. 기자들은 신생 밴드에게 장르의 정의를 요구했다. “그래서 머리를 짜내 ‘애시드 팝 밴드’란 말을 만들었어요.”(조원선) 영국의 자미로콰이처럼 그루브한 스타일이 좋아 의기투합한 이들은 펑키(funky)한 애시드 재즈(acid jazz) 느낌을 살리는 동시에 멜로디를 강조하는 팝(pop)풍을 가미했다. 이상순이 “항상 리듬감 있는 음악을 해온 것 같다”고 말하듯 전체를 관통하는 건 적당히 흥겨운 리듬이다. 일렉트로니카, 모던록 같은 단어도 주석처럼 달린다.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이 가요는 밴드 입문서로 그만이다. 꼼꼼히 듣다 보면 모던록, 일렉트로니카 같은 장르 선호도는 물론이거니와 악기와 리듬에 대한 개인적 취향까지 자가 진단할 수 있다. 16화음 벨소리와 밴드 음악을 똑같이 생각한다면 어렵겠지만.
2006년 2월 5집 <트라이앵글>(triangle)을 내놓기 까지 한 밴드로 지내온지도 7년이 넘었다. 조원선과 지누가 처음 만난 건 연습실을 들락거리다 안면을 익히게 된 고교 밴드 시절이다. 세월이 길다. 이런 반응에 “요즘은 오래가는 밴드가 많잖아요. 자우림이나 윤도현씨네, 델리스파이스…”라고 그들은 답하지만 밴드 U2의 보노나 YB의 윤도현처럼 그룹 이미지를 대변하는 프런트 맨의 존재도 희미한 걸 감안하면 이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은 남다르게 보인다. 같은 부서와 같은 업무를 수년씩 되풀이하는 게 쉽지 않은 직장인 패턴을 전업 음악가들에 대입하면 더욱 그렇다. “물건이 수북한 가게에 가면 비슷한 걸 고를 것”이라는 취향의 유사함은 “나이를 먹어 눈치 빠르게 서로를 배려한다”는 성숙한 동업자 의식으로 발전했고, 이젠 음악작업에 있어서도 각자 집에서 써 온 악보를 ‘까는’ 대신 그냥 백지 앞에서 악기를 꿰차고 즉흥적으로 잼(Jam) 연주를 하며 곡을 쓴다. 2004년부터 택한 이런 방식은 5집에서도 변함없다. “3, 4집에선 음들을 인위적으로 편집해서 새로운 걸 시도했다면 5집은 편안하게 어쿠스틱 느낌 위주로 갔습니다.”(이상순) 조금 더 차분해지고 느려졌다.
일상성의 고유한 느낌은 가사에서 묻어나온다. “너무 비장한 느낌, 너무 아름답다는 느낌, 그런 것들 사이사이에 스며 있는 감정들을 쓰려고 해요.”(조원선) 이별 앞에서 유행가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다음 생의 만남을 맹세할 때 롤러코스터는 “참 신기한 일이야 이럴 수도 있군/ 너의 목소리도 모두다 잊어버렸는데/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아무 생각 없이 또 전활 걸며 웃고 있나봐”(1집 <습관>)라며 감정을 삭힌다. 대중적 인기를 안겨준 2002년 3집 수록곡 <라스트씬>도 몽환적인 전자음을 배경으로 “다행히도 시간은 흐르고/ 아무렇지 않게 너의 이름을 말하고/ 이제는 다 지난 얘기라고/ 큰소리로 웃어보기도 하기도”라며 툭툭 내던진다. 초창기에 ‘낯설다’는 반응을 얻었던 ‘그루브’한 ‘일렉트로니카’는 어느 새 대중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5집까지 온 그들에게 정체는 없을까? “아휴, 매너리즘요? 당연히 있죠.” 쉽게 답한다. 스트레스도 물론. 실험작을 냈다는 첫 음반의 쾌감은 멀어지고 대중과 관계자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중견’이 됐기에 “음악의 본질에 점점 몰두하기 어려워진다”고 고백한다. 그들이 자꾸 초심을 되새기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젠 조금은 달라졌다. 음악이 절대신이었던 시절이 지나갔다. 대신 사진이나 영화, 여행 같은 취미에 충실하고 주변의 친구들과 즐겨 어울리며 생활과 음악을 병행한다. 기계가 좋다는 지누는 장비들을 분해하고 납땜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셋은 수년째 여행을 함께 떠난다. 해변가에서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 휴식형도, 길거리를 끝없이 걷는 스파르타식도 모두 좋다는 조원선. 그는 종종 작업의 단서를 여행의 체험에서 얻는다. 얼마 전에도 영국 런던의 클럽을 헤집고 다녔다.
중견의 매너리즘, 기계와 여행으로
“요즘은 모두가 트렌드를 좇아 음악을 하죠. 악기 편성이나 가사에 쓰이는 단어, 심지어 뮤직비디오도 다들 그때그때 비슷하게 내놓아요.”(지누)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유재하’ ‘어떤 날’ 시절엔 그들의 이름이 주는 독특한 감성이 있었다. 개성이 제1의 목표가 아닌 시대에 롤러코스터는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들만의 질감을 고수한다. ‘여럿’의 최소이자 ‘개인’의 최대인 셋. 삼각형의 세 꼭지점은 각자의 음악세계에도 충실히 몰두하며 밴드의 크기를 키워간다. 엔지니어 지누의 DJ·프로듀서 활동은 이미 본격화됐고, 작사작곡가 조원선의 개인 음반과 기타마니아 이상순의 유학도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다. “다시 새로운 하루/ 별로 새로울 일도 없지만/ 웃으며 다시 한 번/ 다시 월요일 지나 화요일.“(5집 <다시 월요일>) 일상은 반복되고 5월엔 콘서트가 열릴 것이고 우리는 매일 롤러코스터를 탄다.
groove@hani.co.kr
피아노·베이스·기타라는 평화로운 공동체에 스민 일상성 1999년 여름, 마감의 함대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9월에 예정된 졸업전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밥알을 삼키는 게 어려울 정도로 심신이 피곤했지만 빈곤한 상상력을 질책말라고 위로해주는 것들은 기껏해봤자 과일 한조각이나 찬물 세수였다. 술 같은 자극적인 오락거리는 삼가해야했던 시절이었다. 책상엔 종이더미와 컵라면 용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엔 제자리를 모르는 빗자루가 굴러다녔다. ‘애시드 팝’ 머리를 쥐어짜내 지었죠"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자양강장제가 바로 3인조 밴드 롤러코스터다. 리드미컬한 베이스 라인(지누·35), 먼지떨이처럼 맘속 찌꺼기를 털어주는 기타 소리(이상순·32), 곡의 등뼈를 만드는 단조풍의 키보드 선율(조원선·34)이 중첩되고 여성 보컬의 아련한 음색이 얹혀지면 흥겹고 애틋한 노래가 완성된다. 360도 회전을 할지언정 언제나 변함없이 출발점에 돌아오는 롤러코스터는 결코 록발라드처럼 궤도를 이탈해 극한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들의 불합격 소식에 누웠던 어머니가 저녁이면 일어나 밥을 짓듯 희로애락은 일상의 진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속마음이다.

3인조 혼성밴드 롤러코스터. 왼쪽부터 이상순(기타), 조원선(보컬·키보드), 지누(베이스·프로그래밍).(사진/ 티엔터테이먼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