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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섹스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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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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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어떻게 ‘꼬셔서 하는지’에 대한 얘기는 차고 넘치지만 ’꼬셔서 하고 난 뒤’에 대한 얘기는 드물다. ‘꼬심’의 절차 없이 둘이 뜻 모아 힘 모아 러브러브 안광을 반짝이며 일을 치르고도 빠지직 하트가 깨지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섹스 트러블이 아니라 섹스 뒤의 트러블 때문이라면?

당신은 섹스 직후 어떤가. 남자라면 다음 항목에서 체크해보시길(정직하게!). ①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가 콧노래 부르며 오래오래 씻는다. ②조심스레 휴지를 뽑아 꼼꼼히 닦는다(상대에게는 ‘조심스러워’ 뽑아주지 않는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③“어땠어? 좋았어?” 집요하게 물으며 상대의 표정을 살핀다. ④아무런 양해 없이 곧바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곤다. ⑤왜 그리 담배나 찬물이 당기는지, 그 욕구부터 혼자 느긋하게 해결한다.


이번엔 여자라면(너도 정직하게 해!). ①흐뭇한 마음에 상대를 꼭 끌어안고 쓰다듬고 뽀뽀한다(엄마처럼). ②피식 웃거나 “에계~” 하고 말해버린다. ③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발가벗고 일어나 막 돌아다닌다. ④이불을 칭칭 감고 누워 배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았나 뒤늦게 걱정 삼매경에 빠진다. ⑤‘나 좀 어떻게 해줘’ 표정으로 “자기야, 이제 뭐 할까?”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각각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내 맘대로 선정한 ‘섹스 뒤 최악의 태도 베스트 5’이다(사실 날 보건 주변을 보건 남녀 항목을 나누는 건 무의미하지만, 어쨌든). 위 항목에 하나 이상 해당하는 남녀라면 반성할 일이다. 뭐가 문제냐고? 당신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물 흐려지는 게 걱정이다.

왜 우리는 섹스 전에 엄격한 것에 견줘 섹스 뒤(엄밀히 말해 사정 뒤)에는 지나치게 관대한 것일까. 사정한 순간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치기 때문일까. 그럴 거면 그냥 자기 손으로 하지 왜 굳이 애태우고 때론 작전까지 짜는 등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비효율적인 단계를 거치냔 말이다. 서툰 애들은 그렇다 치고, 안정적인 파트너끼리는 왜 그러는데? ‘섹스 뒤 매너 없음’은 성적 지루함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사정은 어떤 종류의 클라이맥스일 수 있으나, 그걸로 스토리가 끝나는 게 아니다. 남자는 후희에 대한 욕구가 적고 여자는 많기 때문에 ‘불협화’가 일어난다고 하지만, 게으른 애들의 자기 합리화다. 남자든 여자든 후희를 무시하거나 지 좋을 대로 막 내리는 이들은 한마디로 ‘하다 마는’ 거다. 섹스는 발단·전개·갈등·위기 등 절정 이전 단계보다 절정 뒤 결말이 훨씬 긴 희곡이거나, 후일담이 더 재미있는 드라마다. 무장해제된 상태로 얘기를 나눌 수도, 숙면을 취할 수도 있다(내 경우 우리가 진짜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은 섹스 뒤 나란히 누워 자기 부모님 흉을 볼 때나 자신의 자위 취향을 시시콜콜 설명할 때였다).

섹스 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조용조용 옷을 입는 남자의 뒷모습은 사랑스럽다. 하지만 잠시 뒤 휴대전화가 울리고 그가 “어, 엄마…” 하며 밖에 나가 한참을 통화한다면? 섹스 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 역시 사랑스럽다. 하지만 첫 경험도 아니면서 늘 그런 식이면 유통기한을 어기는 행위다. 때와 장소를 가려 휴대전화는 꺼놓을 일이며, 부디 상도의를 지켜 정직하고 성실하게 뒷마무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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