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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옥수수에서 플라스틱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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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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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공학적으로 만든 천연 플라스틱 대량생산… 화석연료 사용량 줄여야 대중화 가능

플라스틱을 옥수수에서 따고 있다. 미국 중부 아이오와의 옥수수 농장. 유전자조작 옥수수가 광활한 대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재배하는 옥수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취급되지 않는다. 농장은 플라스틱 원료를 공급하는 대단위 기지이다. 차라리 플라스틱 공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만일 농부들을 산업역군으로 만든 천연 플라스틱이 대중화된다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공장은 옥수수 처리 공장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옥수수를 이용한 플라스틱은 뒤처리로 골머리를 앓는 폐플라스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아직까지는 환경적인 이점에 관심이 쏠리는 수준이지만 옥수수에서 플라스틱 원료물질을 그대로 채집하는 게 상상 속의 일이 아닌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석유화학에 기초한 플라스틱 산업은 20세기에 황금기를 누렸다. 이미 30여년 전에 영화 <졸업>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벤자민(더스틴 호프먼)에게 주위 사람들이 “플라스틱을 선택하라”고 조언을 한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현재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소요되는 석유와 가스 등이 세계적으로 해마다 2억7천만t에 이른다. 음료수 용기에서 컴퓨터 외장제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이 없는 현대 문명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플라스틱 자동차까지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화석자원을 원료로 삼은 플라스틱은 재활용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특유의 성질로 썩지도 않아 후대에 재앙으로 다가설 가능성도 있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화석연료는 마르지 않는 샘물도 아니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석유는 80년, 천연가스는 70년이 지나면 고갈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화석연료의 고갈은 경제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해 8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화석 자원을 식물 물질로 바꾸기 위한 국가적인 차원의 대책을 세우도록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 가능한 자원인 식물을 이용한 천연 플라스틱 생산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갈되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방법들

(사진/현재의 플라스틱은 대부분 화석연료에 기반한 석유화학제품이다)
생화학 연구자들은 이미 1930년대부터 식물 플라스틱 개발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석유제품은 가격이 비쌌지만 콩은 양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값싼 자원이었다. 콩을 이용한 제품은 페놀성 수지 제조비용을 줄이기 위해 혼합되는 첨가제나 성형제로 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석유 가격이 차츰 낮아지고 석유 기반 플라스틱 제품의 성능이 월등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다가 최근 플라스틱 사용에서 내분비 교란물질(환경호르몬)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폐플라스틱이 각종 환경문제를 야기하면서 천연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환경공학적으로 플라스틱을 제조하려는 연구자들이 강구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합성수지의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 자연적으로 분해되도록 미생물을 이용해 만든 생분해성 플라스틱, 폴리에틸렌 같은 기존의 합성수지에 녹물 등의 천연 고분자 물질을 섞어 만든 생붕괴성 플라스틱, 자외선에 의해 분해되는 광분해성 플라스틱 등이다. 생물공학 분야에서 게, 크릴, 새우 등 갑각류의 껍데기를 구성하고 있는 ‘키틴’(chitin)을 이용한 천연 고분자 화합물도 주목받는 물질이다. 키틴 분자 중합체는 섬유소 분자와 유사한 결합모양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원재료비가 만만치 않아 대량생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값싼 유전자조작작물을 이용한 방법이다. 경작지에서 나오는 옥수수와 콩 등을 활용하는 것이다. 거대 농업 회사인 카길과 화학회사 다우케미컬이 1997년에 공동으로 3억달러를 투자해 ‘카우다길폴리머 LLC’(카길다우)라는 회사를 세워 식물을 이용한 천연 플라스틱을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었다. 카길다우는 옥수수와 밀 등의 하이드록실 지방산에 산소 등을 넣은 플라스틱 첨가제 ‘폴리락틱산’(PLA:polylatic acid)을 개발하고 있다. PLA는 대부분 옥수수에서 나오지만 밀이나 벼 같은 생물자원에서도 얻을 수 있으며 특수필름, 식품포장, 병, 발포제, 섬유 등의 재료로 쓰인다. 카길다우는 PLA를 첨가한 플라스틱을 생산해 2001년 상반기에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조작 작물을 플라스틱 원료로

(사진/카길다우가 개발한 옥수수 기반 플라스틱 첨가제 폴리락틱산)
또다른 회사는 ‘임페리얼 캐미컬 인더스트리’로 식물 당분을 이용한 천연 플라스틱인 ‘미생물성 폴리에스터’(PHA: polyhydroxyalkanoates)를 개발하고 있다. 식물 당분을 가지고 만든 PHA는 영양을 함유하는 물질에 반응해 독특한 과립상의 함유물로 축적된다. 당분이 곧바로 천연의 폴리에스터가 되는 셈이다. PHA는 PLA처럼 토양 속 박테리아나 곰팡이 퇴비나 해양 퇴적물 등에 노출되면 분자결합이 곧바로 끊어져 분해가 일어난다. 1970년대에 이미 박테리아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한 임페리얼 캐미컬 인더스트리는 생물 분해가 가능한 면도칼과 샴푸병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반 플라스틱의 가격보다 무려 3∼5배나 비싸고 잘 부서지는 단점이 드러나 생산을 중단한 경험이 있다. 최근 이 회사는 식물 당분을 사용하면서 발효 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비용을 크게 줄여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의 거대 기업인 ‘몬산토’도 지난해 유전자조작으로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식물을 만들어냈다. 몬산토는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박테리아의 네 유전자를 다양한 유지종자(oilseed) 식물에 이식했다. 식물들이 발효 과정이 필요없는 플라스틱 생산 공장으로 변신한 셈이다. 그렇게 만드는 플라스틱은 상업적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테리아는 탄소를 먹이로 하며, 탄소는 글루코스 형태의 곡물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식물들은 탄소를 공기에서 획득하므로 플라스틱 제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다만 수율(원자재에서 원하는 물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비율)이 아직은 3%에 그쳐 원자재를 낭비할 수밖에 없다는 게 단점이다.

생물공학의 놀라운 발전에 우리나라도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이미 지난 1996년에 임업육종연구소가 ‘알카리 게네스’라는 토양 속 박테리아에서 플라스틱 성분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연구진은 유전자를 현사시나무에 주입해 잎과 줄기로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하지만 박테리아 배양 과정이 까다롭고 대량생산에 한계가 많아 시제품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 연구실 수준이긴 하지만 개인발명가 김영복씨도 지난해 국산 천연재료만으로 1회용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김씨는 황겨와 전분, 송진 등 천연재료를 혼합해 생산원가가 일반 플라스틱 수준인 천연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생분해도 최단기간에 이뤄진다. 자연상태에서 보름만 지나면 분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천연 플라스틱은 탄성 범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천연 코팅 과정을 거쳐야 고강도를 기대할 수 있다.

농작물 처리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량 많아

아직까지 생물공학적 플라스틱의 경제성은 석유화학 제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아무리 원재료를 유전자조작작물에서 저렴하게 얻는다 해도 후처리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작물을 수확하고, 줄기를 말리고, 줄기에서 PHA 등을 빼내고, 용매를 축출 순환시키는 등의 과정에서 석유화학 제품보다 더 많은 화석자원을 필요로 한다. 몬산토의 최신 기법을 이용해도 PHA 1kg을 얻는데 2.65kg의 화석연료가 들어간다. 이에 비해 폴리에틸렌은 2.2kg의 기름과 천연가스를 사용하면 된다. 화석자원의 고갈에 대비해 개발하는 천연 플라스틱이 오히려 화석자원의 고갈을 앞당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생물공학적 플라스틱 시장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갈수록 확대될 전망이다.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수병 기자soo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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