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물러나고 회장님 사라져도 승승장구 치는 한국 스포츠
금메달에 감격하며 응원기계 자처하는 나, 태릉선수촌에 중독될지니~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징병제가 무너지면 스포츠도 무너질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이승엽 선수는 만장하신 일본 관중 앞에서 “4강에 들어서 후배들에게 병역 면제 선물을 주고 싶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솔직한 말씀이었다. ‘병역 면제’는 선수들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승엽 선수처럼 이미 병역 면제를 받은 선배의 마음도 이러할진대 병역 면제를 따내야 하는 본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알다시피, ‘대한민국’에서는 올림픽 메달,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따면 병역이 면제된다. 군입대로 선수생활에 애로를 겪거나 돈벌이가 중단되는 선수들로서는 악착같이 병역 면제를 받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스포츠 대한민국의 융성 원인에 대해 “첫째가 병역 면제, 연금 혜택은 두 번째”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태릉선수촌이라는 채찍과 병역 면제에 연금 혜택이라는 당근이 있지만, 이거 잘해도 너무 잘하는 거 아닌가?
소트트랙, 야구, 펜싱, 체조, 골프… 정말 승승장구다. 황금의 춘삼월이었다. 겨울철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선수들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금메달 6개를 따서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더니, 야구 선수들이 예상을 깨고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꺾어서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만들어버렸다. 축구대표팀의 승승장구는 월드컵 16강의 보랏빛 꿈에 젖게 한다. 어디 축구, 야구뿐이랴. 동계 종목이면 동계 종목, 하계 종목이면 하계 종목, 격투기면 격투기, 구기면 구기, (조금 과장하면) 못하는 종목이 없다. 인구 4800만 명에 여름철, 겨울철 올림픽 가리지 않고 10위 안의 성적이라니, 정말 좋은데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한때는 이유를 ‘독재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엘리트 스포츠의 집중 육성’에서 찾은 시절도 있다. 대통령이 사주해 ‘한 회장님 한 종목 갖기 운동’을 벌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독재는 거했고, 회장은 망했다. 하키협회를 밀어주시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님, 탁구협회를 육성하시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님 ‘등’도 망하셨다. 회장은 거했으나 운동은 유구하다. 92올림픽에서 88올림픽만큼 금메달을 땄고, 2004올림픽에서도 9개의 금메달로 종합순위 9위의 건재를 과시했다. 앞날도 창창해 보인다. 게다가 펜싱 금메달, 체조 은메달까지, 종목의 종 다양성은 오히려 확대됐다. 올림픽뿐인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박세리의 여자골프, 박지성의 프리미어십으로, 스포츠 공화국의 영토는 날로 넓어져왔다.
한국은 작은 나라는 아니지만 큰 나라도 아니다. 인구도, 체구도 세계 10위 안에 들지 못한다. 그런데 올림픽 성적은 세계 톱10을 유지한다. 독재정권이 만든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저절로 굴러가는 자동 시스템이 됐다. 스포츠에서 한번 올라간 ‘클래스’는 웬만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종목별로 노하우가 쌓이고, 노하우는 대대로 전수된다. 한국뿐 아니라 소련을 이어받은 러시아, 동독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독일 스포츠의 아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풍토는 메달을 낳는다. 장군님이 격려하지 않아도, 회장님이 밀어주시지 않아도 스스로의 동력으로 굴러간다(물론 돈의 힘은 세다. 여전히 이(건희) 회장님이 ‘팍팍’ 밀어주시는 레슬링은 가장 확실한 올림픽 메달박스다). 독재는 무너져도 메달에 밥줄을 건 지도자들은 건재하고, 목숨을 건 선수도 재생산된다. 여자 핸드볼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라. 일부 종목에서는 예전에 국가가 부담하던 비용을 이제는 개인이 감당한다. 선수생활을 하려면 한 달에 100만원은 족히 든다는 쇼트트랙은 전형적인 중산층 스포츠다. 왜 기꺼이 부담까지 져가면서, 혹독한 훈련까지 견뎌가면서 메달에 목숨을 걸까. 물론 병역과 연금의 유혹이 있다. 그래도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명예욕마저 만족시켜주는 국민의 환호가 드높기 때문 아닐까. 유구한 감동의 역사를 거치면서 국민의 감동 시스템도 자동으로 작동한다. 올림픽이 열리면 (나부터) 밤새워 감동하고, 박수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스포츠 공화국의 자랑스러운 공민으로 애국의 의무를 다한다. 응원기계로 금메달에 감격하고, 16강에 열광한다. 금메달의 감동은 정권의 ‘조작’으로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이제 자발적 복종, 아니 자발적 열광으로 ‘승화’됐다. 게다가 민주화된 국가도 기꺼이 스포츠 국가주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독재정권에서 시작된 태릉선수촌이라는 채찍, 연금과 병역 면제라는 당근은 여전히 유지된다. 기영노 평론가는 말한다. “미국, 독일에도 선수촌이 있지만, 한국만큼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은 없다. 1년 내내 이어지는 강훈련을 우리는 당연히 참아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태릉선수촌은 내셔널리즘의 비옥한 거름 위에서 금빛 꽃을 피우는 ‘하우스’다. 심심찮게 태릉선수촌 폐지론이 나왔지만, 국민 정서가 거부한다. 솔직히 나도 자유롭지 않다. 선수촌이 없어져서 메달마저 사라진다면, 무엇으로 지루한 일상을 견딘다는 말인가, 감정이 이성을 앞선다. 올림픽 10위의 저력은 활짝 피고 일찍 스러지는 ‘사쿠라 전법’에서도 나온다. 다시 기영노 선생님의 말씀. “학교에서 집중 육성해 태릉선수촌으로 이어지는 학원스포츠 시스템이 올림픽에는 적합하다. 한창 때 절정에 올라서 메달을 따고 사라지는 것이다. 기본기를 중요시하고, 나중에 프로선수로 전향해 서른 살, 마흔 살까지 운동할 것을 염두에 두는 클럽스포츠 시스템과는 다르다”.
승리의 대리만족은 중독성이 강하다
그렇다. 아무리 학원스포츠를, 태릉선수촌을 목놓아 비판한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정권은 바뀌어도 시스템은 여전하고, 시절이 바뀌어도 세상은 유구하다. 게다가 승리의 대리만족은 중독성이 강하다. 어디 중독된 것이 스포츠뿐이랴.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길들였다. 기꺼이 길들여진 우리는 즐겁다. 나, 솔직히 안현수와 진선유 존경하고 구대성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중증 중독자들을 위해 스포츠 코리아는 계속돼야 한다. 쭈욱~. 에라, 비바 코리아! 대한민국 만세다!
금메달에 감격하며 응원기계 자처하는 나, 태릉선수촌에 중독될지니~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징병제가 무너지면 스포츠도 무너질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이승엽 선수는 만장하신 일본 관중 앞에서 “4강에 들어서 후배들에게 병역 면제 선물을 주고 싶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솔직한 말씀이었다. ‘병역 면제’는 선수들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승엽 선수처럼 이미 병역 면제를 받은 선배의 마음도 이러할진대 병역 면제를 따내야 하는 본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대망의 2006년이 밝았다. 쇼트트랙은 스포츠 코리아의 위대한 한 해를 열어젖혔고, 야구는 예상 밖의 승리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드높였다.(사진/ 연합 조보회 기자)
소트트랙, 야구, 펜싱, 체조, 골프… 정말 승승장구다. 황금의 춘삼월이었다. 겨울철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선수들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금메달 6개를 따서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더니, 야구 선수들이 예상을 깨고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꺾어서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만들어버렸다. 축구대표팀의 승승장구는 월드컵 16강의 보랏빛 꿈에 젖게 한다. 어디 축구, 야구뿐이랴. 동계 종목이면 동계 종목, 하계 종목이면 하계 종목, 격투기면 격투기, 구기면 구기, (조금 과장하면) 못하는 종목이 없다. 인구 4800만 명에 여름철, 겨울철 올림픽 가리지 않고 10위 안의 성적이라니, 정말 좋은데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한때는 이유를 ‘독재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엘리트 스포츠의 집중 육성’에서 찾은 시절도 있다. 대통령이 사주해 ‘한 회장님 한 종목 갖기 운동’을 벌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독재는 거했고, 회장은 망했다. 하키협회를 밀어주시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님, 탁구협회를 육성하시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님 ‘등’도 망하셨다. 회장은 거했으나 운동은 유구하다. 92올림픽에서 88올림픽만큼 금메달을 땄고, 2004올림픽에서도 9개의 금메달로 종합순위 9위의 건재를 과시했다. 앞날도 창창해 보인다. 게다가 펜싱 금메달, 체조 은메달까지, 종목의 종 다양성은 오히려 확대됐다. 올림픽뿐인가.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박세리의 여자골프, 박지성의 프리미어십으로, 스포츠 공화국의 영토는 날로 넓어져왔다.

강력한 애국주의는 강한 스포츠의 바탕이다. 이제 한국인은 “대~한민국”만 들으면 피가 끓는 자동반응이 나타난다.(사진/ 한겨레 임종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