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찾아라 맛있는 체위

601
등록 : 2006-03-17 00:00 수정 :

크게 작게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세상에 체위는 몇 개나 될까? 18체위, 108체위, 888체위… 문화마다 사람마다 꼽는 가짓수가 다르다. 재미있는 건 대체로 숫자 8이 들어간다는 거. 히힛(뭔 상상?). 60억 인구에 60억의 진실이 있듯이, 60억의 체위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개척 가능하다. 똑같은 ‘선교사 체위’(남자가 위에 올라가 마주 보고 힘쓰는 거: 자칫 무료해지거나 표정을 들킬 수 있지만 서구 문명이 보편적으로 내세우는 체위로 인류학적 분석 대상임)라도 바닥이 평평하냐 비스듬하냐, 가구를 이용하느냐 안 하느냐, 아래 있는 자의 다리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쌍방 중요한 곳의 모양과 특징에 따라 여러 시도를 해보면서 ‘베스트 핏’ 자세를 찾아내는 재미도 좋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체위를 만드세~.”

영화 <음란서생>을 보며 느낀 건, 역시 멜로보단 음란이 힘이 세다는 거다. 진지하게 체위를 논하는 자리에서 경박하게 사랑타령이라니…. 왕의 사랑과 질투가 나오는 3자 대면 신은 옥에 티였다. ‘깊은 삽입’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남성적 시각’(시대 배경과도 관련 있겠지만)도 유감이었다. 나으리, 깊이보다 중요한 건 리듬이거든? 그럼에도 체위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꺼이 박수를 치고 싶다.


체위 선택은 콘돔 실천과 마찬가지로 ‘신경전’이 오가는 정치적 현장이다. 신혼이면서도 구혼처럼 사는 친구 ㅎ 커플은 피곤한 날이면 서로 올라가라고 ‘권유’ 하는데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완력 면에서 조금 달리는 ㅎ이 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는데 ‘나 혼자 땀 흘리는 동안 저자는 편히 즐기네’ 하는 시샘과 ‘므흣, 내가 저자를 일깨워 사정시켰구나’ 하는 뿌듯함도 든단다. 내 경우는 마음 약한 파트너가 주로 올라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후배위(전문용어로는 ‘뒤치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허리 아플 때 특히 좋고, 앞에 있는 사람은 엉덩이를 올리고 허리를 우묵하게 낮춰 엉금엉금 기어가는 요가의 ‘고양이 자세’를 취하게 되므로 꾸준히 하다 보면 허리도 강해지는 거 같다. 그럼 뒤에서 힘쓰는 사람은 어떨까? 이 글을 쓰다가 파트너에게 전화로 물어봤더니 “말초적 자극이 강하고 힘 조절이 용이하며 약간의 정복적 쾌감이 따르면서 상대의 엉덩이를 보고 만질 수 있다”고 한다. 이어 “상대의 젖가슴도 실제보다 더 크게 손에 쥐어진다”고 덧붙였다. 앗싸.

우리의 ‘베스트 체위’는 옆으로 하는 거다. 내가 옆구리에 뭘 괴고 20∼30도 정도 비스듬히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을 때 그가 뒤에서 다리를 엇갈려 다가오는 거다(배가 눌리고 균형 잡는 데 일정한 숙련이 필요하니 노약자나 임산부는 주의하세요). 이 체위의 장점은? 파트너 왈 “뽀뽀도 할 수 있고 후배위의 즐거움을 살리면서 힘도 분산되는데다, 뭐니뭐니 해도 자기가 좋아하니까….” 그러고 보니 체위보다 중요한 건 존중과 배려인가. 어, 죄송합니다. 사실은 제가 무서워서 그런 걸 거예요.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김소희의 오마이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