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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호통개그, 역전극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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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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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으로 열등생 캐릭터에서 주요인물 된 박명수의 제8전성기
얄미운 똘똘이도 바보도 아니지만, 조금은 어수룩한 우리네 자화상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방송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한도전’은 유재석의 집념의 산물이라 해도 좋을 코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외인구단’-‘감개무량’-‘무한도전’으로 이어지는, 별로 잘난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황당한 도전을 한다는 콘셉트의 코너들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반응도 안 좋은 걸 공중파 방송 3사를 옮겨다니면서 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그 비판의 대열에 필자도 끼어 있었다.

박명수(오른쪽에서 세번째)는 그렇고 그런 캐릭터의 연예인들만 모인 '무한도전'에서도 '꼴등'을 깔아준다. 하지만 굴하지 않는 그의 호통 개그는 묘한 쾌감을 준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한다), 그는 최고의 MC에 오른 뒤에도 망가지는 거 하나는 자신 있는 ‘외인구단’으로 ‘무한도전’을 했고, 결국 ‘무한도전’이 겨울을 맞아 스튜디오 게임쇼로 코너 형식을 바꿀 때까지 방영을 계속할 정도로 성공하는 ‘감개무량’을 맛보았다. 과거의 두 코너와 달리 ‘무한도전’이 성공한 것은 코너의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박명수만 있으면 ‘꼴등’은 안 된다

‘외인구단’과 ‘감개무량’은 프로 운동선수를 이긴다든가, 차력사들이나 할 법한 일 등을 하는 ‘불가능한 도전’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지옥훈련을 통해 발전, 인간승리를 일궈내느냐가 코너의 포인트였고, 출연자들은 감당하기 힘든 도전과제를 겪느라 누가 잘났다 못났다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다 같이 망가졌다. 반면 ‘무한도전’은 도전의 난이도를 조금 낮췄다. 연탄 빨리 나르기 같은 것들이 도전과제로 선정되고, 그만큼 승리 가능성도 높아졌다. 실제로 몇 번 이기기도 했고, 져도 아슬아슬하다. 또 ‘무한도전’은 팀 대결이 아니라 출연자들이 각각 한 번씩 도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자 같이 망가지던 캐릭터들 사이에서 우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게임 잘하는 멤버는 ‘에이스’고, 그렇지 못한 멤버는 ‘깍두기’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무한도전’이 실내 게임쇼로 바뀌기 직전에는 가장 게임을 못하는 멤버를 후보 취급하기도 했다. 망가지기만 할 때는 그저 못난 사람들로만 보였던 존재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서로 우열을 가리다 보니 각자의 캐릭터가 생겼다. 그래도 ‘국민 MC’라는 호칭까지 듣는 ‘쌩얼’ 유재석은 출연자들이 인정하긴 싫지만 ‘그나마 No.1’이 돼서 그를 중심으로 대립구도가 생기고, 하하는 ‘그나마 미남’이 돼 자만심으로 가득 찬 캐릭터가 된다. 이런 캐릭터들끼리 쉴 새 없이 자신이 잘났다고 싸우고, 게임 형식보다는 캐릭터의 감정선에 따라 마치 시트콤과 같은 에피소드가 속출하는 게 지금의 ‘무한도전’이다.

박명수의 일생일대 라이벌로 떠오륵 있는 지상렬. 시청자는 그들의 뻔뻔함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한국방송 <상상플러스>의 ‘올드 앤 뉴’가 퀴즈쇼라기보다는 퀴즈쇼를 구실로 한 남자 대감들과 한 명의 여성 아나운서가 만들어내는 장르 혼합적인 오락 프로그램이듯, ‘무한도전’ 역시 캐릭터를 기반으로 시트콤과 게임, 그리고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가미된 스토리가 있는 오락 프로그램인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출연자들 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 아나운서 ‘마봉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뽑는 등 설문조사를 하는 것은 이 코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남들 보기엔 똑같이 못난 친구들인데, 그들끼리는 약간의 차이를 두고 싸운다. 최근 이 코너의 첫 초대 게스트로 출연한 이효리가 출연 초반 그들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제스처를 한 것은 이 코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우열을 다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프로그램을 재밌게 만든다. 요즘 ‘제8의 전성기’를 맞은 박명수는 ‘무한도전’에서도 가장 ‘열등생’에 속한다. 그는 나이도 제일 많고, 제일 오랫동안 뜨지도 못했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말도 영어로 하지 못할 정도로 무식을 드러낸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가수에 도전했다가 수차례 망한 전력도 있고, 방송에서 공공연히 자신의 부업을 홍보하기도 한다. 그는 사회로 치면 큰소리만 치는 무능력한 중년 남자 같은 존재다. 멤버들 중 그나마 나은 사람이 되려는 ‘무한도전’의 출연진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박명수만 있으면 ‘꼴등’은 안 된다. 그가 빈틈을 드러낼 때마다 계속 그를 구박한다. 인기 없다고 구박하고, 무식하다고 구박한다. 그는 멤버들끼리의 설문조사에서 늘 하위권을 차지하고, 유재석은 늘 그를 높은 순위라고 속인 뒤 “뻥이야!”를 외치며 놀린다. 사실 이건 굉장히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박명수가 놀림을 당하는 건 설정이긴 하지만 놀림을 당하는 이유는 그가 실제로 오랫동안 뜨지 못한 나이든 개그맨이라는 현실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명수는 이것을 불편하지 않게 만든다. 그는 아무리 못났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걸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계속 지면서도 재미를 위해 일부러 틀렸다고 하거나, “내가 좀 인기가 급하게 왔거든? 그래서 불안해”라고 말한다. 그의 ‘호통 개그’는 거기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그가 코너에 몰렸다는 걸 다 아는데, 그는 오히려 소리를 지른다. 뻔뻔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에겐 호통을 치는 것 말고는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없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캐릭터가 거기에 위축되거나 아예 바보 캐릭터처럼 구는 대신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외치는 것이다. 덕분에 공격하는 쪽에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출연자들이 그의 억지스런 말싸움에 말리기까지 한다. 물론 뻔뻔하고 조잔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명수의 매력은 그런 ‘호통’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를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순박함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설문조사 순위 발표에서 계속 속으면서도 그때마다 정말 기뻐하며 좋아하고, 사람들이 뭔가를 하라고 부추길 때마다 은근슬쩍 하는 박명수의 모습은 호통개그가 결국 (코너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그나마 세상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보여준다.

“내가 좀 인기가 급하게 왔거든?”

그는 얄미운 똘똘이도, 놀리는 게 안쓰러운 바보도 아닌, 어수룩하면서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박명수를 보면 그보다는 낫다는 안도감과 우리도 저렇게 잘난 사람들 앞에서 호통이라도 치고 싶다는 동질감이 교차한다. 시청자는 그걸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박명수를 계속 놀리고 싶지만, 그래도 그가 계속 지지 않고 호통 치길 바라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박명수의 이 ‘호통치는 열등생’ 캐릭터는 그에게 ‘제8의 전성기’를 열어줬다. 이제 그가 없는 ‘무한도전’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가장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는 멋진 역전극. 그건 남들이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한물 갔다고 해도, 계속 자신감 있게 살아가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박명수는 계속 호통쳐야 한다. 제8은 물론 제9, 제10의 전성기가 올 때까지. 그를 괴롭히면서도 응원하는 우리와 함께 “나 이대로 끝나지 않아∼!”를 외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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