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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도 공식 따라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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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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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은 경기 중계하고 리자준·오노는 여전히 달렸던 토리노의 풍경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의 조기 은퇴가 아쉽고 노장의 감동이 고프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국 쇼트트랙의 전통에 따르면, 안현수 선수는 토리노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해야 한다.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스타였던 김동성은 22살에 솔트레이크 올림픽을 뛰고 은퇴했고, 전이경 선수도 22살에 나가노 올림픽 2관왕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들은 두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고, 안현수도 이번이 두 번째 올림픽이었다. 이제 김동성과 전이경은 해설자로 올림픽을 중계하고 있다. 그들이 지켜보는 경기장에는 그들의 라이벌들이 아직도 서 있다. 그때, 그 얼굴들이다. 먼저 올드 보이들. 김동성 이전부터 뛰었던 리자준이 31살의 ‘노구’로 분투하고 있고, 데라오 사토루도 30살의 나이로 도전을 계속했다. 24살의 오노는 아직 ‘새파란’ 선수다. 물론 이들에게는 동기가 있다. 리자준은 아직 배가 고프다. 5개의 올림픽 메달을 땄지만, 금메달은 아직 못 땄다. 데라오는 영원한 ‘B파이널’ 선수다. 해설자 김동성은 데라오에 대해 “별 성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야박한 말이었다. 서른 살의 도전자는 스무 살의 금메달 못지않게 훌륭하다.

김동성이 중계하는 경기장은 그의 옛 라이벌들로 가득하다. (사진/ 연합)


김동성도 전이경도 22살 은퇴

참, 언젯적 언니들인가. 30살의 양양A, 29살의 라다노바. 1994년 릴레함메르, 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에 변함없이 개근을 했던 언니들이다. 그 언니들이 아직도 스케이트 끈을 질끈 묶고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숙명의 라이벌, 양양A와 전이경은 76년생 동갑이다. 전이경이 94년, 98년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고 은퇴하자, 양양A는 2002년 올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세월은 무섭다. 양양A가 1500m 준결승에서 탈락해 B파이널에 나오자 전이경은 “양양A 선수가 B파이널에서 뛰다니요”라고 탄식했다. 그래도 웃으며 손드는 양양A가 보기 좋았다. 파란색 한국과 빨간색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라다노바는 언제나 외로웠다. 29살의 라다노바는 토리노에서도 500m 은메달을 따내 변치 않는 클래스를 과시했다. 22살에 올림픽 4관왕의 업적을 이루고 은퇴한 전이경은 훌륭한 선수지만, 29살에도 여전히 정상급 현역인 라다노바는 위대한 선수다.

1500m 결승에서 안현수, 이호석, 오노가 차례로 들어와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사진/ 연합)

스키의 고령화는 심각하다. 34살 동갑내기 오모트와 마이어의 10년 역사는 올림픽을 드라마로 만든다. 노르웨이의 스키 천재 오모트는 토리노 올림픽 슈퍼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통산 4번째 금메달, 8번째 메달이었다. 20살의 오모트는 92년 알베르빌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2002년 솔트레이크에서 2관왕에 올랐다. 토리노 올림픽을 앞두고 왼쪽 무릎 부상을 당했지만 도전을 계속했다. 그는 토리노에서 금메달을 따고 “(알파인) 남자 부문에서는 내가 최연소이자 최고령 금메달리스트일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슈퍼대회전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아모트가 결승점에 들어오기 전까지, 금메달의 주인은 마이어였다. 오스트리아의 스키 황제 마이어는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다. 대회전에서도 동메달에 그쳐 아쉬움은 더했다. 하지만 팬들은 월드컵 53회 우승에 빛나는 마이어를 영원한 스키 황제로 기억한다. 그에게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마이어는 98년 올림픽에서 활강 경기 도중 균형을 잃어 30m를 뒹굴었다. 슬로프에서 날아올랐고, 안전망을 뚫고 나갔다. 가슴에는 타박상을 입었고, 왼쪽 어깨가 빠졌다. 하지만 마이어는 부상을 딛고 98년 올림픽 2관왕에 올랐다. 그는 2002년 올림픽에는 참가도 못했다. 2001년 모터사이클 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뼈가 산산조각 나는 부상을 입은 탓이다. 다시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이어는 다시 일어나 올림픽에 도전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터미네이터와 헤르만 마이어를 합성한 ‘헤르미네이터’이다. 21살인 안현수, 20살인 이호석 ‘듀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격려하며 여러 차례 올림픽에서 드라마를 만든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41살 노르웨이 아줌마의 아름다운 동메달

스키 노르딕 종목에는 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선수가 흔하다. 마흔을 넘은 아줌마 메달리스트도 있다. 41살로 두 딸의 어머니인 노르웨이 페데르센 선수는 크로스컨트리 여자 10km 클래식에서 동메달을 땄다. 여성으로는 최고령 올림픽 메달리스트. 에스토니아의 스미군은 29살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내처 2관왕에 올랐다. 정말, 서른 잔치는 시작이다. 노익장은 빙판에도 건재하다. 독일의 페흐슈타인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단체추발에서 우승해 올림픽 5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34살. 그는 4번의 올림픽에서 8개(금5)의 메달을 땄다. 미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 셀리오스는 무려 44살이다. 한국에도 불굴의 도전은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규혁 선수는 4번째 올림픽에 도전했다. 올해 28살인 이규혁의 미니홈피에는 올림픽 전에 쓴 “올림픽! 마지막 기회다”는 글귀가 아직도 선명하다. 이규혁은 토리노 올림픽 1천m에서 0.05초 차이로 동메달을 놓쳤다. 4위에 그쳐 4번의 도전에서 노메달에 그쳤지만, 그의 마지막 질주는 금메달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그의 홈피에는 “제발 은퇴하지 말라”는 팬들의 요청이 줄을 이었다.

알파인스키 역대 최연소,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오모트. 슈퍼대회전에서 라이벌 마이어를 제치고 금을 따내며 기뻐하는 모습. (사진/ EPA)

물론 종목마다 특성이 다르다. 쇼트트랙은 다른 종목에 견줘 이른 나이에 절정에 이른다. 게다가 쇼트트랙의 최강국은 세대교체도 빠르다. 지난해 쇼트트랙 대표팀 구타사건으로 코칭스태프가 경질된 사건에서 보듯이 스파르타식 훈련을 견디기 힘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22살의 은퇴는 이르다. 금메달을 치고 빠지는 조기 은퇴는 아쉽다. 2010년에도 누군가 혜성처럼 등장해 올림픽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아니 될 것 같다. 그래도 노장의 감동이 ‘고프다’. 스무 살의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도 멋있지만, 서른 살의 안현수가 동메달을 따는 모습은 더욱 멋있지 않을까. 아니 서른까지는 아니라도, 부디 다음 올림픽에서만은 진선유, 변천사, 최은경, 안현수, 이호석, 젊은 그대들의 도전을 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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