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V 없이 못 찍어, 정말 못 찍어

599
등록 : 2006-03-02 00:00 수정 :

크게 작게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두 손가락을 치켜든 알파벳 브이(V)는 승리와 곧잘 연관되지만 손등이 상대를 향한 V는 모욕을 뜻했고, 70년대 일본에서는 평화와 통했습니다. 불명예 퇴진한 미 대통령 닉슨이 택한 마지막 포즈도 양손에 V였다니 어리둥절 알쏭달쏭입니다. 당대적 V의 보편화된 위상은 거의 모든 인물 스냅사진에서 발견될 정도인데, 이때의 의미는 뭘까요? ‘별 뜻 없음’이 맞겠지요. 디카 보급 이전 촬영자는 피촬영자에게 일종의 준비 신호를 붙였으니, ‘치즈’와 ‘김치’가 제일 상투적인 예령이었고, 이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어색한 미소가 연출됐습니다. 상황 반전된 오늘날의 준비 신호는 피촬영자의 몫입니다. 그게 바로 V죠. 그러니 승리, 평화 같은 정치적 메시지는 고려할 여유가 없습니다. 친구와 짝이 되어 찍는 셀카의 유행이 이른바 ‘샴쌍둥이 포즈’(얼굴을 서로 맞대고 찍는)의 양산을 낳았으나 여전히 대세는 V입니다. 해서 필름 없이는 가능해도 V 없이는 불가능한 게 사진촬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 중입니다. V는 과연 승리가 맞나봅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

반이정의 사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