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의 사물보기]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픽션과 논픽션을 혼돈해선 안 될 일이나, 목 뒤로 케이블을 꽂아 가상 세계에 빠져드는 픽션의 설정은 논픽션의 세계에서조차 부분적 구현이 관찰됩니다. 부피는 왜소해도 청각을 완전 장악하는 이어폰은 현실 탈출을 갈구하는 현대인에게 저렴한 비상구 역할을 합니다. 이해부득의 물리 수업시간, 따분한 예비군 정신교육 시간, 신체는 고스란히 현 세계에 보존시키고 정신만 딴 세계로 격리 조치하는 친절한 위장술. 이어폰이 대체로 번들 제품인 것도 흔해빠진 그 존재 가치 때문이기보다, 없어서는 안 될 전제조건의 반영으로 보면 어떨까요. 우연히 정자를 닮은 이놈이 귓구멍에 정확히 도킹하며 신세계에 조우하는 이치는 생명 탄생의 과정과 흡사하다(고 우길 수 있죠). 그러나 현실 도피의 신비감은 항상 위험부담을 숙명처럼 안고 가는 법! 딴 세상에 몰입은 뒤에서 돌진하는 차의 존재감마저 망각케 할 정도로 현실감을 저버립니다. 그 결과는? 완전 ‘저’ 세상과 연결되는 거죠. 앞서 말했듯 픽션과 논픽션을 어떡하면 안 된다?

(사진/ 류우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