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동욱의 스포츠 일러스트]
네이션스컵 8강전에서 11:12의 피말리는 승부차기 드라마를 연출하기까지
카메룬과 코트디부아르, 바르셀로나와 첼시에서의 질기디 질긴 악연이여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12 대 11. 야구경기가 아니었다. 축구 경기의 스코어였다. 비록 승부차기 점수였지만, 정말 피말리는 접전이었다. 지난 2월5일 벌어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전, 하필이면 코트디부아르와 카메룬이 만났다. 악연이라면 악연이었다. 두 팀은 2006 독일월드컵 예선에서 같은 조였다. 카메룬은 코트디부아르와 맞대결에서 2전 전승을 했지만 본선 티켓은 코트디부아르에 돌아갔다. 카메룬은 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집트전에서 종료 직전인 95분 페널티킥을 얻었다. 넣으면 본선행, 실패하면 예선 탈락.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페널티킥을 찬 선수는 뜻밖에 카메룬의 에이스 에토오가 아니라 워메 선수였다.
11대 11, 1번 키커부터 다시 시작 워메가 말 그대로 천금 같은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 카메룬은 승점 1점차로 예선 탈락했다. 카메룬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워메의 신변에는 위협이 가해졌다. 에토오는 나중에 “왜 내가 차지 않았을까”라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에토오는 “이제 카메룬 국민들에게 네이션스컵을 안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토오는 무거운 어깨를 안고 네이션스컵이 열리는 이집트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약속을 실행에 옮기듯 네이션스컵 예선 3경기에서 무려 5골을 쏟아넣었다. 월드컵 출전팀들이 대거 예선 탈락하는 가운데 동기부여가 확실한 카메룬은 예선 전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승부차기의 악령은 불굴의 사자군단 카메룬을 다시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혈전이었고, 명승부였다. 두 팀은 이기고 싶었고, 이겨야 했다. 카메룬은 월드컵 예선 탈락이 실력이 아니라 불운이었음을 증명해야 했고, 코트디부아르도 본선 티켓 획득이 행운이 아니라 실력임을 입증해야 했다. 양팀은 전·후반을 무득점으로 비겼다. 연장 2분, 코트디부아르가 선제골을 넣자 카메룬이 3분 뒤 동점골로 응수했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승부차기가 카메룬의 선축으로 시작됐다. 카메룬의 1번 키커는 당연히 스트라이커 에토오였다. 소년 같은 에토오의 눈망울이 흔들렸지만, 호흡을 가다듬은 에토오는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코트디부아르의 1번 키커도 당연히 드로그바였다. 드로그바도 명성대로 예선에서 두 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8강행을 이끌었다(카메룬과의 경기 이후인 8일 벌어진 나이지리아와의 4강전에서 한 골을 추가해 결승행도 이끌었다).
두 선수는 여러모로 닮았다. 에토오가 바르셀로나의 스트라이커라면, 드로그바는 첼시의 에이스였다. 에토오가 네이션스컵 전까지, 2005~2006 프리메라리가 19경기에서 18골을 넣은 득점 선두였다면, 드로그바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의 선두를 이끄는 에이스였다. 드로그바가 돌풍처럼 달려가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30분 넘게 피말리는 승부차기가 이어졌다. 양팀 선수들은 골대의 상하좌우를 번갈아 유린하며 긴장을 이어갔다. 특히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은 골을 넣으면 카메룬 선수들을 향해 포효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한순간의 실축으로 월드컵 티켓을 놓쳐버렸던 카메룬 선수들의 분위기는 엄숙할 지경이었다. 마침내 코트디부아르의 7번째 선수의 슛을 카메룬의 골키퍼가 막아냈다. 악령을 떨쳤나 싶었다. 하지만 심판은 무효를 선언했다. 카메룬 골키퍼가 슛을 차기 전에 움직였다는 것이다. 승부차기는 이어져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한 바퀴 돌아갔다. 이제 골키퍼가 차고 골키퍼가 막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운명의 한 순배가 돌아가자 11 대 11. 1번 키커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페널티킥에 악연을 가진 카메룬에, 워메의 페널티킥 실축을 비판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에토오에게 두 번째 승부차기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에토오의 눈빛은 더욱 불안하게 흔들렸고, 에토오가 차올린 공은 골대를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1번 키커가 마지막 키커가 됐다. 코트디부아르의 1번 키커, 드로그바는 두 번째 승부차기를 가볍게 성공했다.
에토오의 실축이 가장 기뻤던 사람은?
에토오와 드로그바, 두 선수의 ‘잘못된 만남’은 소속팀에서도 이어졌다. 에토오의 바르셀로나와 드로그바의 첼시는 지난해 자국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도 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해도, 올해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 1·2위를 다투는 강팀이다. 하필이면 두 팀이 지난해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만났다. 카메룬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가 결승 같은 8강전이었다면, 첼시 대 바르셀로나 전은 결승 같은 16강이었다. 결국 죽음의 16강전에서 첼시가 바르셀로나를 골득실차로 물리치고 8강에 올랐다. 하필이면 올해도 두 팀이 16강에서 다시 만났다. 드로그바와 에토오가 또다시 맞대결을 벌이는 것도 당연지사. 에토오의 복수혈전은 성공할까. 16강 1차전은 2월23일 첼시의 홈 스템포드 브리지에서 열린다. 행운의 여신은 여전히 드로그바의 편일까. 3월8일 바르셀로나의 누캄프에서 벌어지는 16강 2차전에서 둘의 희비는 다시 갈리게 된다. 운명의 장난은 계속된다.
추신. 에토오가 승부차기를 실축했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에토오의 소속팀인 바르셀로나의 레이카르트 감독이라는 뼈 있는 농담이 있다. 유럽의 클럽들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때문에 운영의 어려움을 겪었다. 주전선수 상당수가 대표팀에 차출됐기 때문이다. 에토오가 없는 동안 바르셀로나는 아틀렌티코 마드리드에 패하면서 14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반면 코트디부아르가 결승까지 올라갔을 때, 가장 ‘복장 터진’ 사람은 첼시의 무리뉴 감독이었을 게다. 가난한 나라의 선수들에게는 가난한 축구협회보다는 부유한 소속팀이 우선일 수밖에. 일찍 탈락하면 빨리 돌아온다. 씁쓸한 현실이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은 빨리 돌아가고 싶어하는 선수들의 잔치였는지도 모른다.
카메룬과 코트디부아르, 바르셀로나와 첼시에서의 질기디 질긴 악연이여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12 대 11. 야구경기가 아니었다. 축구 경기의 스코어였다. 비록 승부차기 점수였지만, 정말 피말리는 접전이었다. 지난 2월5일 벌어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8강전, 하필이면 코트디부아르와 카메룬이 만났다. 악연이라면 악연이었다. 두 팀은 2006 독일월드컵 예선에서 같은 조였다. 카메룬은 코트디부아르와 맞대결에서 2전 전승을 했지만 본선 티켓은 코트디부아르에 돌아갔다. 카메룬은 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집트전에서 종료 직전인 95분 페널티킥을 얻었다. 넣으면 본선행, 실패하면 예선 탈락.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페널티킥을 찬 선수는 뜻밖에 카메룬의 에이스 에토오가 아니라 워메 선수였다.
11대 11, 1번 키커부터 다시 시작 워메가 말 그대로 천금 같은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 카메룬은 승점 1점차로 예선 탈락했다. 카메룬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워메의 신변에는 위협이 가해졌다. 에토오는 나중에 “왜 내가 차지 않았을까”라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에토오는 “이제 카메룬 국민들에게 네이션스컵을 안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토오는 무거운 어깨를 안고 네이션스컵이 열리는 이집트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약속을 실행에 옮기듯 네이션스컵 예선 3경기에서 무려 5골을 쏟아넣었다. 월드컵 출전팀들이 대거 예선 탈락하는 가운데 동기부여가 확실한 카메룬은 예선 전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승부차기의 악령은 불굴의 사자군단 카메룬을 다시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혈전이었고, 명승부였다. 두 팀은 이기고 싶었고, 이겨야 했다. 카메룬은 월드컵 예선 탈락이 실력이 아니라 불운이었음을 증명해야 했고, 코트디부아르도 본선 티켓 획득이 행운이 아니라 실력임을 입증해야 했다. 양팀은 전·후반을 무득점으로 비겼다. 연장 2분, 코트디부아르가 선제골을 넣자 카메룬이 3분 뒤 동점골로 응수했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승부차기가 카메룬의 선축으로 시작됐다. 카메룬의 1번 키커는 당연히 스트라이커 에토오였다. 소년 같은 에토오의 눈망울이 흔들렸지만, 호흡을 가다듬은 에토오는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코트디부아르의 1번 키커도 당연히 드로그바였다. 드로그바도 명성대로 예선에서 두 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8강행을 이끌었다(카메룬과의 경기 이후인 8일 벌어진 나이지리아와의 4강전에서 한 골을 추가해 결승행도 이끌었다).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드로그바(왼쪽). 네이션스컵에서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는 에토오. (사진/ EP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