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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무게’만큼 아름다운 그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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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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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나긋나긋한 속삭임의 매력… ‘로케스트르…’의 내한 공연에서는 색다른 발랄함도

사진/로케스트르 드 콩트러바스는 연주뿐만 아니라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지휘자는 없어도 되지만 콘트라베이스만은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음악을 아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겁니다.… 자고로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을 얻으려면 베이스가 갖춰져 있어야만 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독일 작가 파트리스 쥐스킨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자부심 가득히 자기가 연주하는 악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한다. 훌륭한 건축물이 완성되려면 토대가 중요하듯, 오케스트라의 바탕은 중저음을 맡는 콘트라베이스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독백도 함께 곁들인다.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은 음악광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으로 독주가 안 되는 악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코끼리’를 들고 춤을 춰?


그러나 이 대목은 분명한 오류다. 콘트라베이스는 그 자체로 훌륭한 독주악기이기 때문이다. 생상스의 <동물사육제> 가운데 작품 5번 ‘코끼리’ 부분을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콘트라베이스다. 코끼리의 뒤뚱거리는 모습을 콘트라베이스가 묵직한 음색으로 재미나게 묘사하는 이 부분이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친숙한 콘트라베이스 연주 가운데 하나다.

사실 보통사람들에게 콘트라베이스는 첼로나 바이올린에 비하면 상당히 낯선 악기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 이미지 역시 코끼리처럼 크고 둔중한, 그리고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 밀려 있는 악기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길이가 2m가 넘어 첼로보다도 곱절은 되는 크기여서 바이올린처럼 음대생들이 들고 다니는 모습을 길거리에서 접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콘트라베이스는 첼로나 바이올린과는 다른 그 자체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묵직한 듯 낮게 깔리는 독특한 음색은 푸근하면서도 안정감이 넘쳐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매혹적인 힘을 지녔다. 다만 그런 매력을 일반인들이 쉽게 즐길 기회가 없었던 탓에 이 커다란 악기가 생소할 따름일 뿐이다.

그동안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이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모처럼 생겼다. 프랑스의 6인조 콘트라베이스 연주단인 로케스트르 드 콩트라바스가 우리나라를 찾은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음반 <바스, 바스, 바스, 바스, 바스 & 바스>(굿인터내서널)도 함께 발매됐다. 이들 6중주단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독특한 연주로 세계 각지에서 호평을 받아온 전문연주그룹으로 이번 공연이 국내 초연이며 음반 역시 처음 소개됐다. 공연 2월2일 서울 LG아트센터(02-2005-0114, www.lgart.com).

지난 1981년 프랑스에서 크리스티앙 장테의 주도로 결성된 이 콘트라베이스 6중주단은 전원 콘트라베이스 전문연주자로 구성돼 있는 보기 드문 그룹이다. 창단 이래 20년 동안 한번도 멤버를 교체한 적이 없이 다져진 앙상블을 내세운다. 이들은 연주 못잖게 다양한 볼거리를 가미하는 독특한 공연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활 연주와 피치카토(줄을 손으로 뜯는 연주법) 주법말고도 악기 몸통을 두들겨 마치 타악기처럼 효과음을 내기도 하고, 연주자 6명이 군무를 펼치듯 악기를 들고 춤추기까지 한다. 연주와 함께 펼쳐지는 이런 퍼포먼스가 이들만의 또다른 특징인 것이다. 무대 위에서 악기가 날아다니고 팬터마임하듯 춤추는 모습은 다른 연주회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볼거리다.

이번 연주에서 이들은 음반 수록곡인 <바스, 바스…>와 <평범한 숲속의 신비>, <코라의 노래>, <탱고> 등의 대표곡을 연주할 예정인데 특히 <코라의 노래>는 악기를 거꾸로 잡고 연주하는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선보이는 곡들은 현대적인 느낌이 강해 쉽게 들을 만한 노래들은 아니지만 저음부터 고음까지, 그리고 다양한 빛깔의 소리를 빚어내는 시도들이 가득해 듣는 재미가 풍성한 편이다. 또한 여러 가지 연주기법을 총동원하기 때문에 독주악기 특유의 단조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콘트라베이스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는 음악사에서 뒤늦게 등장한 악기로 고전주의 이후의 교향악 편성에서 처음 선보였다. 바흐나 헨델 시절에는 없었던 악기인 셈이다. 그러나 다양하게 개량이 되면서 종류가 많이 분화돼 있고 다른 악기들에 비해 불리는 이름도 훨씬 다양하다. 클래식에서는 콘트라바스, 더블베이스, 베이스 피들 등으로 불리며 재즈에서는 어쿠스틱 베이스, 우드베이스, 업라이트 베이스 등으로 불린다. 오케스트라에서 역할은 가장 저음을 맡는데, 관악기로 대비시키면 트롬본이나 튜바와 같은 역할을 한다. 현재 사람이 직접 들고 연주하는 악기로서는 가장 덩치가 큰 악기로 현악기 가운데서 줄과 활이 가장 크고 두껍다. 또한 현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솔로연주를 할 때는 줄을 갈아 한음 높은 소리를 낸다. 악기값도 현악기답게 관악기보다는 훨씬 고가여서 프로들이 쓰는 전문가용은 대략 2천만∼4천만원선이고 활만 300만∼500만원이나 하는 비싼 악기다.

재즈에서 없어선 안될 악기

콘트라베이스가 다른 악기들보다 덜 친숙한 까닭은 악기 자체의 역사가 오래지 않아 콘트라베이스용 독주곡이 적고 전문 연주자도 적기 때문이다. 지금도 음반을 녹음할 수준의 스타급은 거의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19세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이름을 날린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이후 독일의 스트라이허, 미국의 게리 카 등의 유명 연주자들이 꾸준히 등장하면서 콘트라베이스는 차츰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다. 대신 콘트라베이스는 재즈에서 더욱 중요한 악기로 애용돼왔다. 편안하고 느긋한 음색,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화음을 받쳐주는 은근한 매력이 재즈에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유명한 재즈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는 론 카터와 존 페티투치 레이 브라운, 폴 챔버스, 게리 피코크 등이 유명하다.

클래식계에서 같은 악기 연주인끼리 그룹을 결성하는 붐이 일기 시작한 70년대 이후부터 콘트라베이스 연주그룹들도 여럿 등장했는데 이들 이외의 유명 그룹으로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이 구성한 콘트라베이스 4중주단이 대표적이다. 현대 재즈 베이스계의 유명 연주자인 데이브 홀랜드와 바레 필립스가 베이스 듀오 앨범을 발매한 적도 있다.

클래식곡 가운데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곡으로는 말러의 교향곡 4번의 중간부분 베이스의 긴 솔로연주가 유명하며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도 콘트라베이스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는 곡으로 손꼽힌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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