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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식판 위에 비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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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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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사진/ 류우종 기자)

압착기에 눌린 표면은 굴곡과 함께 눈부신 광채를 발하지만, 스테인리스 식판의 금속성 반질거림은 그 이면에 놓인 정량 배급의 식문화와 통제된 집단생활을 반어적으로 은폐하는 포장지와 같아 보입니다. 식판 배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엄격한 질서정연을 요구합니다. 차곡차곡 쌓인 식판마냥 기다랗게 늘어선 배식 줄서기, 식판에 팬 홈의 개수와 한정된 메뉴(일식삼찬)의 일관성, 세척의 용이함과 견고한 내구성이 강조된 식판 재질은 피배식자가 처한 실태를 거울처럼 반영합니다. 식판 위에 비친 그들의 초상은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행려, 호주머니 가벼운 노인, 군 막사에 갇혀 사는 장병, 그리고 입원 치료 중인 환자입니다. 선택의 자율권에선 멀리 떨어져 있고, 용이한 통제권에선 가까이 있는 이들이죠. 하지만 식판 거울이 비루한 자의 처지만 반영하는 건 아닙니다. 식판 밑면으로 무료 배식을 거드는 봉사와 희생이 가려져 있습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은빛 사각 식판은 추상조각을 능가하는 형식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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