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깊어가는 과학자와 일반대중, 언론의 상호 오해…‘사실에 관한 진실’을 말해야
하루 한두잔의 붉은 포도주는 심장병을 예방해 준다는 믿음이 올 설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고향을 찾는 젊은이들 손에는 청주 같은 전통주보다 포도주병이 많이 들려 있었다. 이런 믿음의 근거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프랑스 등 유럽 일부지역 사람들이 심장병에 덜 걸린다는 ‘프랑스 역설’이다. 이들은 붉은 포도주를 규칙적으로 마신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믿음은 과학적일까. 미국심장협회는 지난주 의사들에게 돌린 회람을 통해 “환자들에게는 덜 인기가 있겠지만 과학연구에 굳건히 뒷받침받는 기존의 지침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전통적 심장 보호책은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추고, 체중을 조절하며, 충분한 운동을 하고 건강식단을 따르는 것이다. 회람은 “포도주가 이런 대책을 대신할 수 있다는 아무런 과학적 증거도 없다”고 못박았다.
‘물파동’과 부정확한 과학보도
과학연구와 대중이해 사이의 거리는, 과학이 생활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좀처럼 가까와지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인간 게놈 연구, 동물 복제기술, 인터넷의 보급, 다이옥신 등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식품과 모유 오염 등 과학의 성과물은 점점 더 많은 논란을 부르고 있다. 과학과 대중이 따로 놀아 빚어지는 사회적 부작용은 포도주를 먹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선다.
지난 91년 터진 ‘낙동강 페놀 오염사태’는 우리나라 환경사에서 두고두고 남을 큰 사건이었다. 한 대기업이 낙동강에 페놀을 흘려보내는 바람에 하류 주민 수백만명이 며칠씩 수돗물을 먹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상수원을 ‘발암물질’로 오염시킨 이 사태가 처리비용 몇푼을 아끼려는 대기업의 부도덕성과 당국의 느슨한 감시 때문에 빚어졌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수돗물을 먹은 임신부의 임신중절 사태가 벌어졌고, 환경단체는 쏟아지는 시민의 분노를 담아 그 그룹이 생산하는 맥주를 대로에서 쏟아버리는 행사를 열었다. 몇주 동안 전국을 휘감은 ‘물 파동’의 결말은 어떤가. 구속됐던 기업 관계자와 공무원들은 모두 풀려났다. ‘악성 폐수의 의도적인 방류’가 아니라 ‘폐기물을 부주의하게 취급하다 흘려보낸 사고’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페놀 화합물이 악취를 일으키지만 발암물질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 밝혀졌다. 당연히 임신중절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느 공단폐수에서 페놀 다량 검출’이란 제목의 보도는 계속됐다. 페놀은 가장 유해한 수질오염물질이란 ‘억울한’ 취급을 한동안 받았다. 이 파동 덕분에 수질보전 예산은 대폭 늘어났고 기업들도 폐수처리에 바짝 신경을 쓰게 됐지만, 부정확한 과학보도가 따가운 눈총을 받는 계기가 됐다. 과학기술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과학과 대중의 의사소통은 전에 없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과학 대중화’란 말 자체가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둘 사이의 괴리는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과 대중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가”란 부제를 달고 있는 <두 얼굴의 과학>(제인 그레고리·스티브 밀러 지음/ 이원근·김희정 옮김/ 지호 펴냄/ 1만8천원)은 국내에 소개된 흔치 않은 과학 대중화 전문서적이다. 저자들은 연구결과의 생산자인 과학자와 중간 매개자인 매스미디어 그리고 소비자인 대중이 과학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풍부한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과학자의 무능, 대중의 공포
아인슈타인은 “당신이 아는 것을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과학 대중화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저자들의 지적처럼 과학자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신뢰할 만한 해결사라는 명성을 듣는 것을 즐기지만, 대중들은 비현실적인 기대와 과장된 공포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대중매체는 극단적인 시각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양쪽 모두를 비난해 왔다. 대중이 과학에 환상을 지니게 된 데는 대중매체의 책임이 크다. 과학자는 종종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자연과의 대결에서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사람들도 묘사된다. 그들은 공평무사하고 신사적인 협력관계 속에서 일한다. 과연 그런가. 과학사회학자들에게 과학은 ‘두 얼굴을 한 야누스’에 가깝다. 과학계 내부자에게 하는 말과 일반 대중에게 하는 말이 다르고,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마키아벨리적 싸움을 벌이면서 가능하면 많은 수의 동료 과학자들을 자기 편에 끌어모으려고 애쓴다. 과학계 내부의 사정이 어쩌다 드러날 때 대중은 충격을 받는다.
미국의 화학자 스탠리 폰스와 마틴 플라이슈만이 지난 89년 3월 상온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을 때가 그런 예였다.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된 이 발표는 전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의 연구실이 비교적 간단한 이 실험을 재현하려고 밤을 밝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년 동안 계속된 실험에도 상온 핵융합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연구결과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검증받아 학술지에 게재한다는 오랜 관행을 건너뛰어 곧바로 기자회견장으로 달려갔다. 이들이 사기꾼인가. 과학사회학자 콜린스와 핀치는 “엄청난 상업적 잠재력을 지닌 중대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라면 아무리 신중한 사람이라도 취했을 만한 행동방식을 택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학회지에 싣기 전에 언론에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언론보도의 통제가 불가능한 학회 발표 이전에 과학기술부의 노련한 언론 담당자들이 ‘한건’을 기획하곤 한다. 여기서 수많은 ‘세계 최초’ 또는 ‘세계에서 몇 번째’ 연구성과가 학계의 검토도 받기 전에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과학은 답하고자 하는 질문에 임시적인 답변만을 한다. 그런 상대적인 과학적 진리를 알아내는 데도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일반인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과학의 모습이다. 게다가 대중의 지식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기보다 매우 구체적이고 특정한 경향을 띤다. 과학자들과 정반대이다. 확률 계산에 능통한 경마 노름꾼에게 통계학 문제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현안이 닥쳤을 때 과학자의 ‘무능’과 대중의 ‘몰이해’, 그리고 대중매체의 ‘부정확’이 겹칠 가능성은 매우 높게 마련이다.
저자들은 미국의 농약 오염 사과와 영국의 광우병 파동에서 교훈을 찾았다. 이 사례에서 정책 당국자들은 하나같이 기술의 위험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나 공포가 단지 ‘정보가 부족해서’라고 잘못 판단한다. 그래서 광우병 파동이 한창일 때 영국 정부는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증거가 없으므로 안전한 것’이라며 과학자들에게 이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농수산부 장관은 자기 딸이 사진기자들 앞에서 쇠고기버거를 먹도록 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안전성에 답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대중의 두려움은 이해 부족이 아니라 신뢰의 부족에서 온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사실 대중이 과학을 신뢰한다면 과학에 대해 그다지 알 필요가 없다. 그저 생활의 일부로 여기며 살기만 하면 된다. 대중들이 화를 낸 것은 인구 몇만명 가운데 한명이 암에 걸리거나 치명적인 병에 걸린다는 확률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초원에서 조용히 풀을 씹고 있을 줄 알았던 소가 양의 내장을 먹고 있었고, 아이들이 먹는 사과가 더 잘 익도록 만들기 위해 농약을 썼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했던 것이다.
따라서 위험을 대중에게 알릴 때 과학자들은 단순한 사실만을 알려줘서는 안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평가를 위한 자료들, 위험의 이유, 효과, 응용, 누가 손해를 보게 되는가 따위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기자에게도 적용된다. 기자는 사실뿐 아니라 ‘사실에 관한 진실’을 알려야만 한다. 과학과 관련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정부와 언론 모두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사례 위주이고,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조홍섭 기자/ 한겨레 과학전문기자ecothink@hani.co.kr

지난 91년 터진 ‘낙동강 페놀 오염사태’는 우리나라 환경사에서 두고두고 남을 큰 사건이었다. 한 대기업이 낙동강에 페놀을 흘려보내는 바람에 하류 주민 수백만명이 며칠씩 수돗물을 먹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상수원을 ‘발암물질’로 오염시킨 이 사태가 처리비용 몇푼을 아끼려는 대기업의 부도덕성과 당국의 느슨한 감시 때문에 빚어졌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수돗물을 먹은 임신부의 임신중절 사태가 벌어졌고, 환경단체는 쏟아지는 시민의 분노를 담아 그 그룹이 생산하는 맥주를 대로에서 쏟아버리는 행사를 열었다. 몇주 동안 전국을 휘감은 ‘물 파동’의 결말은 어떤가. 구속됐던 기업 관계자와 공무원들은 모두 풀려났다. ‘악성 폐수의 의도적인 방류’가 아니라 ‘폐기물을 부주의하게 취급하다 흘려보낸 사고’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페놀 화합물이 악취를 일으키지만 발암물질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 밝혀졌다. 당연히 임신중절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느 공단폐수에서 페놀 다량 검출’이란 제목의 보도는 계속됐다. 페놀은 가장 유해한 수질오염물질이란 ‘억울한’ 취급을 한동안 받았다. 이 파동 덕분에 수질보전 예산은 대폭 늘어났고 기업들도 폐수처리에 바짝 신경을 쓰게 됐지만, 부정확한 과학보도가 따가운 눈총을 받는 계기가 됐다. 과학기술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과학과 대중의 의사소통은 전에 없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과학 대중화’란 말 자체가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둘 사이의 괴리는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과 대중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가”란 부제를 달고 있는 <두 얼굴의 과학>(제인 그레고리·스티브 밀러 지음/ 이원근·김희정 옮김/ 지호 펴냄/ 1만8천원)은 국내에 소개된 흔치 않은 과학 대중화 전문서적이다. 저자들은 연구결과의 생산자인 과학자와 중간 매개자인 매스미디어 그리고 소비자인 대중이 과학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풍부한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과학자의 무능, 대중의 공포

사진/대중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광우병 파동(왼쪽)과 페놀사태. 과학과 대중의 상호이해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