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의 사물보기]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생업 전선과 사교 생활의 요란 뻑적지근이 남겨준 건, 백색 직육면체 종이들의 수북한 잔해입니다. 스쳐간 인연은 각양각색이건만 명함의 모양새는 대동소이합니다. 손바닥 위에 눕힐 수 있는 부담 없는 사이즈(그런 이점이 한 손에 움켜쥐어 쓰레기통으로 투척하는 데 오용되곤 하지만)에 촘촘히 넣으려면 못할 것도 없건만 성함과 연락처만 무표정하게 기재된 포맷. 몇 년 새 달라진 점이라곤 한자 표기 이름, 집주소, 집전화에서, 영어 표기, 이메일 그리고 휴대전화로 매체 변화의 동정을 반영한다는 점 정도이지 기본 구성은 동일하지요. 출력 기술의 보급화로 프린터에 무작위 인쇄한 초간편 명함이 유행한 바 있으나, 그 고유의 ‘싼 티’ 때문에 환영받진 못했습니다. 다기능 휴대전화 덕에 포터블 명함집이 따로 없는 이때, 별 노력 없이 얼굴 도장 찍기에만 능한 이를 두고 “명함 돌린다”라는 고약한 수사까지 등장해 한없이 실추된 명함의 체면! 자기 홍보의 발명품이었던 점을 감안하여, 아주 기발한 명함 고안이야말로 궁리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명함, 아직 가능성 많습니다.

(사진/ 곽윤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