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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고생 결혼담, 칙칙폭폭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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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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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치부심한 문화방송의 새 일일극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
출생의 비밀·억지 갈등 없는 ‘중도적’ 캐릭터들로 경쾌한 출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새해 새 드라마 전쟁이 시작됐다. 한국방송은 1월9일부터 새 월화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 문화방송은 11일부터 새 수목드라마 <궁> 등을 시작하면서 2006년 드라마 지존을 놓고 격돌한다.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이> 이후에 고전을 면치 못해온 ‘과거의 드라마 왕국’ 문화방송은 2일부터 새 일일드라마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를 방영하면서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는 첫날 시청률 7.8%(TNS미디어코리아 전국 기준)에 그쳤지만, 둘쨋날은 8.5%를 기록하면서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아직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한국방송의 <별난 여자 별난 남자>에 한참 뒤지는 수준이지만,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는 신선한 캐릭터와 밝은 이미지로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혼녀 딸이라고 꼭 그런 건 아니야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는 일일드라마답게 상투적인 요소들의 대비로 구성돼 있다. 드라마의 축은 여고생 은민(이영아)과 대학생 태경(홍경민)의 티격태격 연애담에 알콩달콩 결혼 이야기다. 일일드라마의 공식에 따라, 은민의 집안과 태경의 집안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은민의 집안이 현대성을 상징한다면, 태경의 집안은 전통성을 대표한다. 은민은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언니와 함께 자랐다. 어머니가 생활도자기 공방으로 성공한 은민의 집안은 풍족한 편이다. 반면 태경의 집안은 부모와 삼남매가 함께 사는 전통적인 서민가정이다. 결혼한 둘째 부부, ‘과년한’ 첫째딸, 대학생 막내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한 지붕 아래서 산다. 며느리의 여동생도 덧방살이를 하고 있다. 소설가 지망생인 첫째딸은 아직 부모에게 용돈을 타쓰는 처지고, 둘째아들은 비디오 가게를 하고, 며느리는 집안 도우미(파출부)로 나가는 넉넉지 않은 집안이다.

태경과 은민의 캐릭터도 여러모로 대비된다. 은민은 아이큐 98, 태경은 서울대 법대생으로 ‘설정’돼 있다. 은민은 여고생임을 속이고 태경을 만나다가 ‘고삐리’임이 탄로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은민의 집에 도우미로 간 태경의 형수가 태경을 은민의 과외선생으로 소개하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로 이어진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가 드라마를 끌어가는 축이 된다. 여기에 시나리오 작가인 은민의 언니 은주(최정윤)의 ‘못 말리는 사랑’ 이야기가 또 다른 멜로 라인을 형성한다. 은주는 동료 작가인 황영민(최규환)과 티격태격하면서 사랑을 키워간다. 요컨대, 여고생 은민이 6살 많은 대학생 태경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최근 영화 등에서 적지 않게 등장한 ‘여고생 시집가기’의 변주인 셈이다.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는 일일드라마의 클리셰(관습적 전형)를 따르면서도 클리셰에 얽매이지 않는다. 은민의 집안은 돈이 있지만 사랑이 없지 않다. 태경의 집안은 돈이 없지만 사랑이 넘치지도 않는다. 태경도 모범생이지만 범생이 같지 않고, 은민은 철부지지만 성숙함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는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선명한 선악을 보여주는 일일드라마의 공식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끌기 위해 억지스러운 설정도 하지 않는다. 캐릭터에 슬며시 깃든 과장은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다. 은민의 엄마(박원숙)는 이삿날 보톡스를 맞고 오는 이기적인 엄마지만, 그저 귀여운 정도이지 극단적인 성격은 아니다. 태경의 부모도 전통적인 부모상을 대표하지만 무작정 까탈스럽지도 않고 무조건 너그럽지도 않다. 태경의 형수도 동생까지 데리고 시집살이를 하면서 도우미 일을 나가지만 얼굴에 옅은 그늘을 드리우는 것 이상으로 불행을 과장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의 캐릭터들은 다층적인 면까지 지니지는 못하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중도’를 지키고 있다.

모처럼 보는 따뜻한 부엌신

무엇보다 주연을 맡은 신인 연기자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기대를 모은다. 은민 역을 맡은 이영아는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황금사과>에서 박솔미의 아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으면서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이영아는 생기발랄하면서도 마냥 철부지만은 아닌 은민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다. 벌써부터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영아의 발랄한 연기를 칭찬하는 글이 잇따라 오르고 있다. 가수 출신인 홍경민도 특유의 평범한 청년 이미지에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여기에 박원숙, 백일섭, 정혜선 등 중견 연기자들의 노련한 연기가 가세한다. <12월의 열대야> <변호사> 등을 통해 역량을 인정받은 이태곤 PD의 연출 솜씨는 연기자들의 호연을 뒷받침한다. 은민 어머니가 이삿날 러닝머신을 하면서 “500그람만 늘어도 내가 짐승처럼 느껴져”라고 하거나, 태경의 부모가 한 봉지의 약을 나눠먹으면서 “달달하네” “쪽 빨아버려”라고 주고받는 대화는 캐릭터의 특징을 한 마디, 한 장면으로 잘 요약했다. 태경의 형제들이 한옥의 부엌에 옹기종기 앉아 야참으로 국수를 나눠먹는 장면은 모처럼 보는 따뜻한 부엌신이었다.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는 출생의 비밀에, 극단적인 갈등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앞으로도 따뜻한 웃음을 선사할까. 일단은 시트콤 같은 경쾌함에 드라마다운 현실성으로 상쾌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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