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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출판] 네 상처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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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4 00:00 수정 : 2008-09-1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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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과거와 화해하는 여자의 여행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소설가 전경린씨의 신작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이룸 펴냄)이 출간됐다. <황진이> 돌풍에 이어 또 신작을 내놓은 이 중견작가의 왕성한 활동은, 어쨌든 대단한 일이다.

<언젠가 돌아오면>의 인물들은 역시, 상처투성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우울증의 전조가 드리워 있다. 이들은 모두 과거로부터 치명상을 입고 그것과 결별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헤어나올 순 없는 일이다. 과거는 마치 유리 파편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혀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아프게 찌른다. 이것이 전경린의 감성이다.

혜규는 결혼 직전에 약혼자가 다른 여자와 여관방에 들어간 것을 안다. 결혼은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났고, 혜규는 혼수로 장만한 독일제 부엌칼로 동맥을 자른다. 시간이 흘러 서울에서 출판디자이너로 일하던 혜규는 유부남과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태생부터 실패를 품고 있는 사랑이었지만, 혜규는 처음으로 사랑의 가능성을, 사랑으로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한 혜규는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혜규의 가족은 모조리 한 아름씩 상처를 안고 있다. 첫사랑 순이가 성폭행당한 뒤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는 오빠, 위신을 최고의 덕목으로 아는 아버지와 평생을 살다가 노후에 우울증에 걸린 엄마, 잘난 모범생이었으나 평생 “저것이 아들이었으면…”이라는 중얼거림을 저주처럼 떨쳐내지 못한 큰언니, 남편의 외도에 상처받고 방황하는 여동생. 그리고 자신의 결혼식을 끝장내버린 사촌언니 예경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슬프다. 마음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자신의 아픔을 감춘 채 살아간다. 그러니까 이들은 안으로 곪아버렸다.


이들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면서 혜규는 점점 자신을 받아들인다. 모든 성장이 그러하듯 혜규도 자신에 대한 긍정과 타자와의 소통을 배워나간다. 소설이 말하는 진리는 이런 것이다. “인간의 세상은 타자를 사랑하며 파도치듯 힘겹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 유부남 형주와의 사랑을 통해 각성된 혜규는 자신의 고향 마을, 다시 말해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의 한복판으로 돌아가는 용기를 얻게 된다.

소설은 슬프다. 혜규의 눈에 포착된 가족들은 모두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징징댄다. 실은 혜규도 그렇다. 혜규가 화해하는 짧은 순간을 위해 소설은 기나긴 우울한 나르시시즘의 시간을 보여준다. 아픔과 눈물의 지루한 반복. 우리는 그것을 ‘청승’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청승’은 매우 대중적이고 호소력 있는 도구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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