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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곳에 가면 ‘생목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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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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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보는 것에 머물지 않는 체험여행과 건강웰빙 여행이 늘어나는 추세
오돌토돌한 소리의 살결과 고향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진도와 영동을 찾아

▣ 글·사진 허시명/ 여행작가

여행도 유행을 탄다. 최근의 경향은 체험여행과 건강웰빙 여행이 두드러지고 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에 머물지 않고, 경험하고 학습하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행사들이 많이 생겼다. 국가기관에서도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 정보화마을, 농림부에서 특성화마을, 농업진흥청에서 농촌전통테마마을, 해양수산부에서 어촌체험마을, 산림청에서 산촌마을, 한국관광공사에서는 녹색관광마을을 선정하고, 문화관광부에서 생태공원 조성과 국민 여가 캠핑장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또 하나의 고향을 만들라


눈 오는 밤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소포리 마을 주민과 관광객들. 소포리는 소리체험마을로 특성화됐다.

예산도 많이 투입돼 농림부 특성화마을에는 70억원이 지원되고, 생태공원 19곳에는 236억원이 투입된다. 어려운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시인의 휴식과 농촌 자원의 연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만한 현상이다.

더욱이 올해 7월부터는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40시간 근무제를 실시해 고용보험 가입 임금노동자의 절반가량이 주5일제에 편입하게 된다. 초등학교에서는 격주로 토요일을 쉰다. 격주로 이틀 동안 쉬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는 체험학습 과제를 내줄 테고, 학부모들은 이를 함께 풀어야 하는 짐을 떠안게 되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는데 끌려갈 게 무엇인가. 어차피 자녀를 위해서 또는 효과적인 여가 선용을 위해서라면 우리 주변에 어떤 체험행사가 있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축제장을 가나 한 귀퉁이에서는 도자기 빚기를 진행하고, 농촌 마을에 가면 인절미 만들기가 빠지지 않고, 사찰에서는 산사체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봄이면 과일나무를 분양받고, 여름이면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고, 가을이면 함께 추수한 작물을 사오고, 겨울이면 빙어나 산천어 잡기 체험도 펼쳐진다. 한 번 거쳐가는 여행지가 아니라, 또 하나의 고향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체험여행을 하면 훨씬 더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럼, 체험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소리여행을 떠나보자.

진도 소포리_ 대한민국 원조 노래방!

폭설이 이어지던 날, 연이어 두 마을을 여행하게 되었다. 전라남도 진도군과 충청북도 영동군이었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여럿이서 몰려간 여행이었다. 그런데 4일 동안의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진도와 영동이야말로 최고의 소리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에 판소리 행사가 있고, 보성이 소리로 유명하다지만, 진도와 영동을 나란히 두면 서로 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금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는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고, 영동은 괜찮은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는 소리 공간이었다.

지난 연말에 진도에 경사스런 일이 생겼다. 울돌목 위에 다리 하나가 더 놓여, 진도대교가 쌍둥이가 되었다. 진도에는 유명한 것이 많다. 개띠 해를 맞았으니 먼저 진돗개를 꼽을 수 있고, 그 다음으로 붉고 독한 진도 홍주가 있고, 구성진 진도 소리가 있다.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다시래기, 씻김굿, 북춤 등 문화재가 된 소리들이 여럿 있다. 밭에서 일하는 아낙네에게 소리를 청해도 크게 결례가 되지 않을 동네가 진도다. 대신 노래를 청하는 사람도 답가 한 곡은 준비해야 한다. 진도군청에서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4∼11월에 토요일이면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민요와 민속공연을 펼친다. 물론 무료 공연이다.

겨울이라고 진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곳은 진도에서 소리 잘하기로 소문난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다.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목포와 진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닻을 내리던 포구다. 지금도 145가구가량이 살고 있는 진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해, 농한기에는 밤마다 동네 사랑방에 모여 노래 부르며 지냈다. ‘대한민국 원조 노래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동네 사랑방에서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이 마을에 전해오는 걸군농악, 닻배노래, 강강술래 따위가 동력이 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연륜을 바탕으로 소포리는 진도 소리를 듣고 배우는 소리 체험마을, 노래방 체험마을로 특성화됐다.

소포리 마을회관에서 벌어진 춤잔치. 마을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해 밤마다 동네 사랑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낸다.

체험 비용은 1박2일에 3만원이다. 마을회관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에 행사가 진행된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날 마을회관에는 흰 치마 흰 저고리에 선홍색 고름을 맨 아낙네들 15명가량이 모였다. 사회는 마을 이장 김병철씨가 보았고, 마을의 사내 서너 명이 장구와 북 장단을 맞췄다. 체험행사는 남도 잡가와 민요 한 대목 배우기, 마을 아낙 셋이 부르는 남도민요 공연이 있고, 걸군농악 북춤과 상모 돌리기가 이어진다.

북춤을 추는 김내식씨는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어깨에 북을 걸치고 결기 있고 박력 있게 춤을 췄다. 그 표정이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상모 돌리는 홍복동씨도 연세가 많아 “괜찮으실랑가?” 조심스러웠지만 관록이 있어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마을 이장은 중간중간 장단에 대한 설명도 하고, 노랫가락도 또박또박 설명하면서 진행했다. 연전에 남편을 잃은 아주머니에게는 ‘푸른 풀이 우거진 골짝 내 사랑이 묻혀 있네 신이여 내 사랑아 자느냐 누웠느냐 불러봐도 대답이 없네…’라는 소리를 청해듣기도 했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며 <네 박자> <소양강 처녀> 등 트로트도 이어졌고, 화살이 되돌아와 나 또한 노래 한 곡조를 뽑아야 했다.

마을 이장 김병철씨는 ‘가공 안 된, 삶 속에 녹아든 소리’라고 소개했는데, 그날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이크와 앰프를 사용하지 않은 생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앰프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연장이든 축제장이든 노래방이든 마이크 소리는 날아다니며 부딪치는 쇳조각 소리나 진배없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진도를 처음 여행했을 때, 장터 마당에서 판소리 한 대목을 듣고, 초상집 마당에서 씻김굿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모두가 생목소리였다. 목이 멘 듯 거칠게 이어지는 소리지만, 오돌토돌한 소리의 살결이 느껴졌다. 생수처럼 시원하게 가슴을 적시던 소리였다. 그런 소리를 진도 소포리 마을회관에서 다시 듣게 되니, 세상에 이런 풍요로운 향연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여행정보>

진도 소포리 소리체험마을 인터넷 홈페이지(www.sopoli.com) 마을이장 연락처. 010-4626-4556, 061-543-9725. 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40-3125, 진도버스터미널 061-544-2141, 진돗개 진도축협 061-544-4811

영동 난계국악당_ 국악의 메카에서 펼쳐지는 한마당

30m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웅장한 옥계폭포. 난계 박연은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

충청북도 영동군에 들어서던 날에도 눈발은 그치지 않았다. 마침 곶감축제를 하고 있었다. 상주에서는 곶감을 매달 때 하지만, 영동에서는 곶감이 완성되는 한겨울에 한다. 곶감축제장을 둘러보고, 지난 연말에 와인산업특구로 지정된 영동군을 대표하는 와인 제조장인 와인코리아를 방문했다. 와인코리아에서는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고, 와인을 숙성시키는 토굴도 있었다.

주말 오후라 난계국악당에서는 난계국악단의 국악 연주 공연이 있었다. 연주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왜 영동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무료 국악공연을 펼치는지 알지 못했다. 좀 무식의 소치였다. 그 궁금증은 옥계폭포를 찾아가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30m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지는 웅장한 폭포를 즐겼던 사람이 난계 박연이라고 했다. 박연은 옥계폭포에서 가까운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1378년에 태어났다. 우륵,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악성이라 하여, 그의 신분이 소리 잘하고 악기 잘 다루는 떠돌이인 줄 알았더니,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큰 선비였다.

영동군에서는 그를 기리는 사당 난계사를 마련하고, 난계국악축제를 1967년부터 개최해 38회 행사까지 치렀다. 단순히 난계를 기리는 데 머물지 않고, 1991년 난계국악단을 창단하고, 2000년에는 난계국악박물관까지 마련했다. 10년이 넘도록 전국을 쏘다니고 영동에도 서너 차례 찾아왔지만, 나는 영동이 국악의 메카가 되어 있는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무대에서 이뤄지는 국악 공연은 뜻하지 않은 연말 보너스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 악단원들과 기념 촬영도 했다. 더 인상적인 곳은 난계의 고향 마을에 있는 난계국악박물관이었다. 국악에 관련된 유물과 악기들을 구비하고 있는 넉넉한 공간도 좋았고, 박연 선생이 만든 12율관, 석경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젊은 박물관장도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박물관과 함께 자리한 국악기체험 전수관이었다. 장인들이 거처하면서 국악기를 만드는 제조장인데, 작은 장구를 직접 조립해보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관광객이 돌아다니기에는 비좁은 작업장이었지만, 장구를 만드는 이석재씨는 오동나무를 깎아 장구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직접 시연해 보여주었다. 울림판 노릇을 하는 개가죽, 노루가죽, 소가죽을 소개할 때는 평생토록 매달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게 가죽 다루는 일이라고 했다.

장구 제작에 관한 설명이 끝나자, 제조장의 골방에서 작은 장구 만들기와 솟대 만들기 체험이 이어졌다. 만들어진 장구를 사면 1만5천원인데, 직접 장구를 만들면 1만원이었다. 재료는 똑같으니 체험교육비를 받아 더 비싸야 할 것 같은데, 장구 값은 더 싸다. 소품이 조악하지 않고, 초등학생 정도가 목에 걸고 칠 만해 어른이며 아이며 모두가 달려들어 작은 장구 하나씩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띈 것은 항아리처럼 부드러운 선을 지닌 장구였다. 이석재씨는 충청도에서 제작된 오래된 장구를 재현해 8개를 만들었는데, 하나가 남았다고 했다. 그가 장구 설명을 하는 동안, 나는 그 장구에 매료됐고, 그 장구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낙원동 악기상가에서 중국제 장구가 7만~8만원에 팔린다는데, 얼마쯤이면 저 장구를 살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30만원까지 헤아렸다.

영동 국악기체험 전수관에서 장구를 만들고 있는 모습. 우리의 전통 장구가 이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석재씨는 장구를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려면 7년이 걸린다고 했다. 저렴한 중국제 장구가 판치면서 차츰 장구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도 줄어들어, 자신이 장구 만드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젊다고 했다. 이 땅에서 장구를 만드는 사람이 없어지면, 우리 소리조차 없어질 것이라는 그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흥정에 들어갔다. 오래된 충청도 장구를 복원한 장구를 이석재씨는 하나 남았기에 팔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좋은 값에 주겠다고 물러섰고, 20만원을 매겼다. 이곳에서 장구 하나에 15만원을 하니, 나로서는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질감 좋은 개가죽을 매어주기까지 했다. 늘씬한 장구 하나 들고 국악기 제작촌을 빠져나오는 내 마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얻은 기분이었다.

<여행정보>

영동군청 문화공보과 043-740-3221, 난계국악박물관 043-742-8843, 난계국악기제작촌 043-742-7288, 민주지산자연휴양림 043-740-3441, 와인코리아 043-744-3211


일단 즐겨보라

효과적인 체험여행을 위한 준비와 여행 후 관리 지침

여행 전 준비: 여행의 주제를 먼저 설정한다. 인터넷을 통해서 체험 프로그램을 사전 검색한다. 체험학습기록장을 준비하고, 간단한 필기도구와 디지털 카메라를 챙긴다. 지도를 준비해, 어디로 찾아가고 어떻게 찾아가는지 함께 점검한다. 찾아가는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를 통해 축제 일정을 점검하고, 축제가 있으면 참여한다. 지나치게 학습효과를 노리려 하지 마라. 체험여행은 한껏 즐기다 보면 학습효과가 따라온다.

여행 후 관리: 찍은 사진과 여행지에서 얻어온 여행안내집을 바탕으로 체험학습기록장을 작성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행지에 대한 소감을 함께 나눈다. 지출 경비를 계산해 향후 효과적인 여행설계에 반영한다. 지역특산물 정보를 따로 챙겨서, 때때로 택배주문을 해 웰빙 식탁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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