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된 역사
신형기 지음, 삼인(02-322-1845) 펴냄, 2만원
이야기는 사람들이 역사를 내면화하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야기에는 윤리가 작동한다. 지은이는 남북한의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민족’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밝혀내고 비판한다. 민족 이야기는 결국 국가 만들기를 위한 것이고, 개인은 국민이라는 동원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인식 위에서 지은이는 4·19 혁명, 영화 <효자동 이발사>, 대하소설 <장길산>, 북한 문학 등을 상세히 고찰한다. 역사에 대한 도덕적인 이야기는 모두를 민족으로 통합하고 그 밖의 존재들을 배제한다.
‘그’와의 은 동거
장경섭 지음, 길찾기(02-3667-2654) 펴냄, 8800원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남자를 그린 독특한 장편만화. 현대인의 실존적인 고민을 우화적이고 풍자적으로 표현한다. 만화의 칸칸에는 특히 절절한 외로움이 묻어나온다. 바퀴벌레와의 동거는 소통 부재의 사회를 견뎌나가는 인간의 선택이다.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지어주는 친절한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자취생. 그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기묘한 동거에도 균열이 생긴다. 인간이 곤충과 동거하는 일이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하던 주인공은 애인마저 여왕개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박물관
손현숙·우찬제 글, 김신용 사진, 현암사(02-365-5051) 펴냄, 1만8천원
고 김춘수 시인부터 최정례 시인까지 현대시인 58명을 엄선해 그들의 시세계와 시인론을 보여준다. 문단의 파벌이나 줄서기 따위를 배제하고 오로지 작품세계만 평가해, 우리 현대시의 가장 정확한 지도를 보여준다. 시인 손현숙씨와 사진가 김신용씨가 3년 동안 58명의 시인을 직접 만나 기록한 작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문학평론가 우찬제씨의 시인론이 보태졌다. 시인들의 얼굴을 섬세한 앵글로 담아낸 사진도 볼거리지만, 그들의 시세계에 대한 흥미롭고 깊은 성찰이 눈길을 끈다.
블랙먼, 판사가 되다
린다 그린하우스 지음, 안기순 옮김, 청림출판(02-547-5140) 펴냄, 1만8천원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였던 해리 블랙먼의 일생을 통해 낙태, 소수민족 우대정책, 사형, 성차별 등의 문제에 대한 미 법원의 논쟁을 보여준다. 미국의 사법제도와 사회적 의제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보여준다. 해리 블랙먼은 온건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받아왔으나 연방대법원의 판사가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진보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공화당의 닉슨이 자신의 코드에 맞춰 임명한 블랙먼이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냈을 때의 반전이 흥미롭다.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압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