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동욱의 스포츠 일러스트]
축구 선수들이 엉키고 쌓이면서 만드는 ‘게이 에로틱’한 골 세러머니들
진짜 게이 퇴출하던 관행 많이 죽었지만, 태극마크의 커밍아웃 볼날 올까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리챠드슨 느끼고 있군요. ㅋㅋ”
“리철순…. 오셔가 아니라 지성이가 넣었엉….” “리철순…. 너무 느끼는 거 아냐…. 박지성이 니 여친이냐?” 한 장의 사진에 달린 댓글이다. 박지성이 첫 골을 터뜨리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료들이 달려와 축하를 했다. 이날의 압권은 단연 리처드슨이었다. 일단 사진을 보면, 오셔가 두 팔로 박지성을 ‘포근하게’ 포옹하고 있다. 리처드슨이 다정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듯 팔을 한껏 뻗어 둘을 안으려 한다. 하지만 팔이 짧아서 오셔만 껴안은 모양새다. 무엇보다 오셔의 표정이 압권이다. ‘느끼고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장난 섞인 댓글이 달렸던 것이다(리철순은 ‘리처드슨’을 축구팬들이 한국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호나우두는 ‘호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는 ‘혼자우두’라고 불린다. 호나우두의 머리 모양이 호두를 닮았기 때문이고, ‘혼자우두’는 호나우두의 지나친 개인 플레이에 대한 비아냥이다). 박주영이 백지훈의 귓볼에 다가선 순간
축구는 마초적인 경기지만, 축구의 골 세리머니만큼 ‘호모 에로틱’한 장면도 드물다. 골 세리머니를 ‘게이다’(게이+레이다)로 리플레이해보자. 일단 흥분한 남자들이 서로를 향해서 달려간다. 혹은 달려가는 남자를 다른 남자가 쫓아간다. 그림만 잘 잡으면 ‘나 잡아봐라’ 놀이가 된다. 그리고 뒤의 남자가 앞의 남자를 덮친다. 마침내 남자들끼리 열정적으로 껴안고, 잡아먹을 듯 얼굴을 맞댄다. 때때로 남자들이 엉키면서 쌓이기도 한다. 주의점, 순간의 환희가 스치고 지나가는 동영상보다 정지된 사진에 오히려 절정의 표정이 생생히 잡힐 때가 많다. 골 세리머니 하는 사진을 쭉 모아놓고 휙 훑어보면, ‘호모 에로틱’한 느낌은 후끈 살아난다. 좀 다른 얘기지만, 골 세리머니 때는 선수들 사이의 ‘관계’도 은근히 드러나는데, 박지성에게 가장 열광하는 선수는 뤼트 반 니스텔루이다. 니스텔루이는 박지성이 어시스트에 성공하면, 골 넣은 선수보다 어시스트한 박지성을 더욱 ‘이뻐할’ 정도다(그러고 보니 이번에 박지성이 골을 넣을 때 니스텔루이가 그라운드에 없었던 것이 아쉽다). 니스텔루이가 박지성의 에인트호벤 선배이기 때문에 생긴 연대감이다.
2005년 6월에도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훈련 중 쉬고 있던 박주영이 백지훈의 귓불에다 뽀뽀를 하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뽀뽀하는 박주영보다 뽀뽀당하는 백지훈의 표정이 더욱 압권이었다. 백지훈의 눈은 살짝 감겨 있었고, 입술은 슬며시 열려 있었다. 네티즌들은 “백지훈이 느끼고 있다”고 난리였다. 두 선수가 같은 팀에서 같은 방을 쓰는 단짝 친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어울리는 커플이다”는 댓글도 잇따랐다. 물론 누구나 아닌 것을 알면서 즐기는 소동이었다. 역시 다른 이야기지만,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축구 대표선수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 소설’이 유행하기도 했다. ‘야오녀’들은 홍명보와 황선홍을 ‘커플’로 맺어놓고, 김남일까지 넣어서 ‘삼각관계’를 만들어놓고 ‘즐겼다’.
팬들은 동성애 코드를 즐기기도 하지만, 선수에게 커밍아웃은 죽음이었다. 1970년대 독일 축구선수 하인츠 본은 커밍아웃을 한 뒤 클럽과 팬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의 재능은 사장됐고, 그는 1991년 알코올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잉글랜드 클럽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뛰었던 저스틴 파샤누도 커밍아웃을 한 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잉글랜드에는 받아주는 클럽이 없어서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는 98년 자살했다. 그 뒤로 오랫동안 유명 축구선수가 커밍아웃을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물론 누가 게이라는 소문은 무성하다. 그래도 데이비드 베컴의 존재는 그라운드의 호모포비아가 조금씩 극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컴은 게이처럼 치장하고, 게이바에 드나드는 것을 숨기지 않는 ‘게이 아이콘’이다. 결혼한 그가 게이가 아닐 가능성은 높지만, 게이 친화적인 선수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게이 이미지’는 베컴의 상품성을 높이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베컴은 굳이 양성애자라는 소문을 정면으로 부인하지 않는다.
레슬링의 바테루, 스웁스의 커밍아웃
레슬링만큼 퀴어(Queer)한 스포츠도 드물다. 남자들이 서로의 등을 제압하기 위해 온몸을 부대끼는 레슬링을 보면서 동성애 코드를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바테루’ 기술은 더욱 심하다. 알다시피, 최근에는 이런 레슬링의 호모 에로틱한 코드를 이용한 휴대전화 광고도 등장했다. 실제 레슬링을 응용한 ‘게이 레슬링’이라는 성적 게임도 있다. 제압하려는 남자와 제압당하지 않으려는 남자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격투기(특히 프라이드)의 그라운드 기술에서도 퀴어 코드는 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We are everywhere).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고전적인 슬로건이다. 물론 동성애자는 그라운드에도 있다. 위대한 테니스 선수 나브라틸로바는 레즈비언이고, 올림픽을 2연패한 다이빙 선수 루가니스는 게이였다. 최근에는 미국 여자농구 최고 스타인 셰릴 스웁스도 커밍아웃을 했다. 스웁스는 “레즈비언 선수들에게 자매 같은 정을 느낀다”고 연대감을 표시했다. 언제쯤이면, 태극마크의 커밍아웃을 볼 수 있을까.
진짜 게이 퇴출하던 관행 많이 죽었지만, 태극마크의 커밍아웃 볼날 올까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리챠드슨 느끼고 있군요. ㅋㅋ”
“리철순…. 오셔가 아니라 지성이가 넣었엉….” “리철순…. 너무 느끼는 거 아냐…. 박지성이 니 여친이냐?” 한 장의 사진에 달린 댓글이다. 박지성이 첫 골을 터뜨리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료들이 달려와 축하를 했다. 이날의 압권은 단연 리처드슨이었다. 일단 사진을 보면, 오셔가 두 팔로 박지성을 ‘포근하게’ 포옹하고 있다. 리처드슨이 다정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듯 팔을 한껏 뻗어 둘을 안으려 한다. 하지만 팔이 짧아서 오셔만 껴안은 모양새다. 무엇보다 오셔의 표정이 압권이다. ‘느끼고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장난 섞인 댓글이 달렸던 것이다(리철순은 ‘리처드슨’을 축구팬들이 한국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호나우두는 ‘호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는 ‘혼자우두’라고 불린다. 호나우두의 머리 모양이 호두를 닮았기 때문이고, ‘혼자우두’는 호나우두의 지나친 개인 플레이에 대한 비아냥이다). 박주영이 백지훈의 귓볼에 다가선 순간

FC서울의 두 남자 박주영과 백지훈. 이들의 또 다른 사진은 지난 초여름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 연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니스 스타 중 한명인 나브라틸로바는 레즈비언이다. 그는 동성애 인권운동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사진/ EP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