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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벽지와 함께 잠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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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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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사진/ 윤운식 기자)

서구식 벽지의 발명은 장식과 보온이 목적이던 태피스트리의 값싼 대용품에서 비롯합니다. 그런 이유로 초창기 벽지는 태피스트리처럼 벽면에 느슨하게 걸렸다고 합니다. 장식이 목적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대체로 단조로운 문양을 끊임없는 반복하는 벽지의 도안은 시선을 오래 사로잡는 데 실패합니다. 벽지는 실내의 정육면체 중 무려 다섯 면의 안감 역할을 함에도 일상에서 이목을 사로잡는 데 서툽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산소 같은 존재인 게죠. 벽지가 진지한 응시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순간은 엉뚱하게도 하던 일을 마치고 침상에 쓰러진 뒤부터입니다. 천장과 일직선이 된 시선은 벽지가 만들어내는 단순명료한 대칭의 파도 속에 무계획적으로 휩쓸려 상념에 푹 빠집니다. 이를테면 벽지는 면벽 수련의 교보재이고, 벽지 응시는 일과 종료와 동일합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끼고 사는 현대인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업무를 종료하고 모든 창을 닫을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텅 빈 스크린 위에 뜨는 배경화면(wallpaper)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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