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미술학교 ‘비닐하우스aa’ 수강생들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합니다
무용가·인테리어 종사자 등 다양한 이력이 교차되는 에너지의 공간 ▣ 고양=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한 설치미술가는 대학 강의의 어려움으로 소통의 한계를 꼽았다. 기존 미술 교육이 획일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저마다의 취향을 살릴 수 있도록 가르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를 지향하면서 자신의 영역에 갇혀 있는 것은 창작의 싹을 자르는 것임을 모르지 않기에 학생들을 만나는 게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예술의 연장으로서 담론을 만들고 행위를 실행하면서 예술을 만든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술가의 작업실은 침입자를 허락하지 않고 공공의 장은 예술 담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대체 예술가의 소통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것일까. “‘아틀리에’도 ‘아카데미’도 아니다”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 담고 대안의 미술교육을 꿈꾸는 ‘비닐하우스aa(art adapter)’(www.vinylhouse.or.kr)를 향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는 비닐하우스가 즐비했다. 네비게이션도 속수무책인 지역에서 예술가들의 둥지를 찾는 데는 ‘입’보다 나은 게 없었다. 한참을 비닐하우스 사이에서 헤매다 화초를 가꾸는 주민을 만나 젊은 미술가들이 있는 비닐하우스 위치를 묻자, “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는 곳을 얘기하나 보군” 하면서 산 아래쪽에 있다는 대답이 날아왔다. 비닐하우스aa는 외진 곳에 있다는 것만 아니라면 다른 농가의 그것과 다를 게 거의 없었다. 작은 안내판이 있었지만 쉽게 눈에 띌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무허가 창고처럼 산 아래에 자리잡은 비닐하우스aa의 시설이라고는 높이 5m의 60여 평 남짓한 두 동의 비닐하우스밖에 없었다. 오픈하우스 기념으로 ‘비닐하우스aa 포트폴리오 + 롤프 율리우스’전을 마련했지만 외부의 발길은 뜸해 보였다. 현대미술의 경향을 워크숍 형식으로 탐구하는 교육 공간이 전시장 구실을 했다. 설치미술가 전수천씨를 중심으로 비닐하우스aa가 둥지를 튼 게 2003년 7월의 일이다. 그동안 50여 명이 비닐하우스aa의 씨알로 문을 두드렸지만 뿌리를 내린 사람은 30% 남짓이다. ‘시각 언어’라는 몸짓을 통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창출하는 게 고단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숱하게 많은 학생들이 미술대학에 진학하지만 ‘예비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닐하우스aa는 새로운 미술과 대안을 창출하는 미술교육을 실현하려는 거대한 뜻을 품었다. 비닐하우스aa의 강사인 백기영(전시기획자 겸 작가)씨는 ‘창의력 발전소’라는 공간모델을 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적인 기술을 전수하는 ‘아틀리에’나 예술의 보편적 질서를 교육하는 ‘아카데미’와 구별된다. 비닐하우스는 생태적 사유와 자발적인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전인적인 예술교육을 지향한다. 정해진 커리큘럼도 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구성해야 하는 탓에 참여자의 자발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매혹적인 미술교육 목표다. 미술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꿔봤을 법한 교육 시스템이지 않은가. 번듯한 교구도 없는 열악한 시설이지만 1기로 22명이 비닐하우스aa에 모였다. 무엇인가를 표현하면서 예술로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모인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었다. 기존의 미술 교육 시스템에 발을 들여놓지 않거나 미술을 접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무용 퍼포먼스를 하는 김숙진씨는 자신의 공연 장면을 찍은 사진으로 대형 걸개그림으로 표현하고 있고,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인테리어 사무실을 꾸려가던 박관우씨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흡수하고 있다.
이들이 비닐하우스aa에서 갈고닦는 것은 미술의 ‘비법’이 아니다. 기존 미술 교육이 감당할 수 없었던 예술 교육을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미술을 실험하고 생각을 구축하는 것이다. 참여자 가운데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40%나 되지만 함께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토론의 공간에서 생각할 것들을 발견하는 것도, 대안적인 예술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힘겨운 과정임을 실감하면서 중도에 그만두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고 소통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달렸다. 그것에 바탕한 비닐하우스aa는 담론을 형상화하는 ‘예술군락’으로 모자람이 없다.
드로잉과 설치미술의 이종교배
이런 비닐하우스aa의 면모는 참여자들만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형식의 미학을 추구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에게도 비닐하우스aa는 ‘화수분’ 구실을 한다. 환경과 계절에 관계없이 다양한 작물을 생산하는 비닐하우스의 특장이 그대로 배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 3기생들의 워크숍에 강사로 나선 설치작가 김월식씨는 입학 전형 때 포트폴리오를 보는 순간 피곤한 여정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참여자들의 작업에서 원시림 같은 자연스러움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았다. 비닐하우스가 높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생태환경이 되는 데 이바지하고 싶었다.”
사실 비닐하우스aa에서는 강사들의 구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동안 미술재료로 삼지 않았던 것들을 이용해 미술관 밖에서 전시하는 작업을 하는 김월식씨만 해도 몇 가지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워크숍을 진행한다. 당연히 완성된 커리큘럼이 있을 리 없다. 워크숍 참여자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화두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발견한다. 이미 두차례의 개인전을 갖고 여러 단체전에 참여한 작가 김혜자씨는 비닐하우스aa 3기생으로 자신을 재점검하면서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주로 뒤얽힌 직선과 곡선으로 독특한 화풍을 선보인 그의 작품이 캔버스 안과 밖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오프하우스전에 선보인 김씨의 작품은 ‘기이한 생성’을 향하고 있다. ‘풍경’을 주제로 작업한 회화 작품을 벽면에 건 뒤, 마네킹에 전선과 철사, 호스 등을 꽂아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비닐하우스에서 드로잉과 설치의 이종교배 실험이 이뤄진 셈이다. 김씨는 비닐하우스aa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순식간에 잉태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찾아가는 게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전복하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다양한 씨앗을 지닌 사람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내가 도움이 되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사계절 내내 신선한 채소를 내놓는 비닐하우스. 지금 비닐하우스aa에서는 다양한 씨알들이 저마다의 몸짓으로 싹을 틔우며 여물어가고 있다. 때로는 뒤엉키고 풀어지면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예술 양식을 선보이기도 할 것이다. 예컨대 2기생 김연주씨가 비디오 작업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캐리커처와 대화록을 담뱃갑에 새긴 작업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모른다. 예술가들의 창조적 진화 과정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픈하우스전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작품들은 겨우내 비닐하우스라는 ‘예술 생태계’에서 진화를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무용가·인테리어 종사자 등 다양한 이력이 교차되는 에너지의 공간 ▣ 고양=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한 설치미술가는 대학 강의의 어려움으로 소통의 한계를 꼽았다. 기존 미술 교육이 획일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저마다의 취향을 살릴 수 있도록 가르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를 지향하면서 자신의 영역에 갇혀 있는 것은 창작의 싹을 자르는 것임을 모르지 않기에 학생들을 만나는 게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예술의 연장으로서 담론을 만들고 행위를 실행하면서 예술을 만든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예술가의 작업실은 침입자를 허락하지 않고 공공의 장은 예술 담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도대체 예술가의 소통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것일까. “‘아틀리에’도 ‘아카데미’도 아니다”


참여자들이 독일의 음향예술가 롤프 율리우스를 초청해 워크숍을 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 아산 아래에 있는 비닐하우스a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