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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을 혼쭐낸 앙골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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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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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동욱의 스포츠 일러스트]

체 게바라도 싸웠던 내전의 나라, 이젠 핸드볼로 기억되네
아프리카의 전통 강호를 TV 해설자는 몰라도 너무 모르더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앙골라 여자핸드볼팀’이란 단어의 조합은 ‘자메이카 봅슬레이팀’ 같은 어색한 느낌을 준다(눈 한 번 내리지 않는 자마이카 봅슬레이팀의 겨울철 올림픽 도전을 다룬 <쿨 러닝>이란 영화가 있었다). 물론 좀 과장해서 그렇다. 아프리카의 앙골라가 핸드볼을, 그것도 여자핸드볼을 잘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핸드볼이 아프리카에서 인기 있는 종목도 아니고, 기존의 식민주의 공식에 따르면 앙골라를 식민지배했던 나라가 핸드볼을 잘해야 식민지배를 받았던 앙골라도 잘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핸드볼에 관한 한, 차라리 앙골라가 식민지배했던 포르투갈보다 낫다. 하지만 핸드볼 팬이라면, 앙골라 여자핸드볼팀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의 단골손님이라는 사실을 안다. 한국의 승패를 전하는 기사 끝에 매달린 ‘다른 경기 소식’을 유심히 보았다면, 앙골라의 존재를 기억하게 된다. 한국 여자핸드볼팀이 참여한 대부분의 대회에는 앙골라 대표팀이 있었다. 게다가 앙골라는 시쳇말로 한국의 ‘밥’이었다. 유럽의 강호들과 예선 통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여자핸드볼 대회에서 1승이 아쉽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단 앙골라와 한 조가 되면, 1승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21세기 들어서만 한국은 앙골라 덕을 톡톡히 봤다. 한국 여자핸드볼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40-30,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7-21,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31-24로 앙골라에 승리했다. 그럭저럭 ‘낙승’이었다. 그렇게 고마운 앙골라가 마침내 배신을 ‘때렸다’.


11번 키알라의 중거리슛은 최고 수준

한국이 앙골라에 ‘역전승’을 거두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승’이 아니라 ‘역전’이다. 한국은 앙골라에 ‘무려’ 고전하다가, 막판에 힘겨운 역전을 했다. 12월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예선경기였다. 앙골라는 예전의 앙골라가 아니었다. 앙골라는 실력으로 한국을 압도했다. 탄력 넘치는 중거리 슛은 유럽 정상팀 못지않았고, 투지 넘치는 사이드 돌파도 한국의 수준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11번 키알라의 중거리 슛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키알라는 이날 전반에만 7골, 전·후반 통틀어 12골을 넣었다. 앙골라는 전반을 16-13으로 앞섰다. 한국은 경기 막판 속공이 터지면서 겨우 역전을 했다. 결국 35-32로 한국승. 앙골라는 47분을 이기고, 3분을 졌다.

여자핸드볼 경기에서 한국의 '밥'이었던 앙골라 대표팀이 일을 '저질렀다'. 지난 12월8일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앙골라의 공격수 키알라가 한국 수비수를 제치고 슛을 날리고 있다. (사진/ AP연합)

사실 앙골라의 선전은 예상된 것이었다. 검은 활자로 표시되는 단순한 점수는 단순하지 않은 진실을 전한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팀 기사 뒤에 붙은 다른 경기 점수표만 유심히 보아도, 앙골라는 예전의 앙골라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경기 이전에 비록 2패를 했지만, 앙골라는 우승후보 노르웨이와 6점차 접전을 벌였고, 헝가리에는 전반에 2점 앞서다가 4점차로 역전패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중계하는 한국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수준은 한심했다. 앙골라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 예상된 접전이었지만 준비가 없었다. 경기 초반 무조건 “아프리카의 약체팀”(쌍을 이루는 상투어는 ‘동구의 강호’다) 운운하더니, 한국이 계속 뒤지자 “더 이상 봐줘서는 안 되죠” 같은 황당한 ‘멘트’를 날렸다. 후반에도 한국이 뒤지자 변명 모드로 돌변해서 “(앙골라가) 탄력이 좋다”고, “힘의 아프리카팀”이라고 횡설수설했다. 앙골라가 어떻게 꾸준히 전력이 상승됐는지, 앙골라의 키플레이어가 어떤 선수인지 전혀 ‘해설’하지 못했다. 오직 “아프리카는 핸드볼을 못한다”에서 “아프리카는 탄력이 좋다”는 뻔한 ‘오리엔탈리즘’만 오락가락했다. 세계적 흐름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이 “대~한민국”으로 밀어붙이는 한국식 해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앙골라는 전통의 강호였다. 1992년부터 2년마다 한 번 열리는 아프리카선수권대회에서 96년 대회를 빼고 모두 우승했다. 이날 앙골라의 능란한 플레이는 일종의 공든 탑처럼 보였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앙골라 여성들의 고독한 도전이 쌓이고 쌓여서 이룬 장관을 보는 느낌이었다. 앙골라는 73년생 조아큄이 이끌고 82년생 키아라가 중심을 이루는, 두 세대가 공존하는 팀이었다. 경기를 보면서 저 정도 하면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몇은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결의가 높아도 동기가 있어야 실력이 느는 법이니까. 하지만 세계핸드볼연맹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프로필을 보면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없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에 뜨거운 경의를.

아프리카여, 이슬람 여성들이여

"너희가 앙골라 핸드볼의 슛을 막아낼쏘냐!" 앙골라의 선수들은 핸드볼에 대한 열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사진/ EPA)

당연히 경기를 보다가 곤혹스러워졌다. 한국을 응원해야 하는데, 앙골라도 응원하고 싶어졌다. 앙골라 선수들의 앙다문 입술에서 굳은 결의가 묻어났다. 그것은 한국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올림픽 2연패의 덴마크를 이기고 싶어할 때의 표정이었다. 나의 오리엔탈리즘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프리카 여성들이, 이슬람 여성들이 뭔가를 한다면 그저 좋다. 더구나 몸으로 뭔가를 잘한다면 너무 좋다. 다시 한 번, 어쩌면 앙골라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의 구색맞추기 팀이었다. 대륙별 안배의 덕으로 참가하는 팀이라 여겼다. 오히려 이름이 한 번도 빠지지 않아 의아할 뿐이었다. 아프리카 대표가 반드시 앙골라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앙골라 핸드볼의 원동력을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앙골라는 대회마다 나온다. 앙골라 핸드볼팀은 앙골라의 이미지를 바꾸었다. 지금까지 앙골라는 내게 내전으로 기억되는 나라였다. 앙골라에는 20년에 걸쳐 좌·우익의 내전이 벌어졌고, 체 게바라도 앙골라 혁명을 위해 싸웠다. 이제 내게 앙골라는 핸드볼의 나라로 기억된다. 앙골라 여자핸드볼팀은 다음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에도 나올 것이다. 아니 나왔으면 좋겠다. 앙골라의 돌풍을 보는 것도, 한국의 우승을 보는 것만큼 즐겁다. 나는 앙골라의 팬이다. 세계는 넓고, 응원할 팀은 많다. 지금, 여기 ‘메이드 인 코리아’만을 응원하는 시절이 하수상하다. 앙골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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