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둥근 것, 파라과이가 브라질 꺾고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멕시코 덜미 잡다
공은 둥글다? 축구에서 의외성을 표현할 때 곧잘 인용되는 문구다. 좀체 무너질 것 같지 않던 팀이 어이없게 약체팀에 패한다. 우리는 그것을 이변 혹은 파란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다. 더더군다나 스포츠엔 요행이란 없다. 행운처럼 보이는 것도 그만큼 실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번의 파란과 이변을 연출하기 위해 흘린 땀방울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삼바축구에 대한 자만이 부른 패배
‘영원한 강자는 없다’란 스포츠세계의 진리를 입증이라도 하듯 전통의 강호들이 무참히 약팀에 덜미를 잡히는 경우가 많다. 2002년 월드컵 남미 및 북중미예선에서도 이같은 이변이 팬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세계최강이라는 브라질이 파라과이에 패하는가 하면 북미의 왕좌 멕시코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패하는 파란이 연출됐다. 브라질의 패배엔 당연히 얘깃거리도 풍성하다. 이기는 팀이 계속 이기면 당연히 여기겠지만 계속 이기다가 딱 한번 지면 그땐 별의별 뒷얘기가 다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브라질은 지난 7월24일 2002월드컵 남미지역예선 5차전에서 파라과이에 1-2로 졌다. 전반 6분 파라과이 파데레스에게 선취골을 내주었지만 후반 29분 ‘브라질의 희망’ 히바우두가 동점골을 뽑아내며 이변은 없는 듯싶었다. 하지만 파라과이는 종료 6분 전 ‘골 넣는 골키퍼’ 칠라베르트가 수비진영에서 길게 올려준 볼을 루이스가 수비수 2명을 제치고 결승골을 터뜨려 홈관중을 열광시켰다.
파라과이의 승리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아무도 브라질의 패배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라과이가 브라질을 꺾은 것은 지난 79년 코파아메리카컵 이후 무려 21년 만이며 월드컵 예선, 본선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지난해 아순시온에서 99코파아메리카대회 우승축배를 들었던 브라질로선 1년 만에 똑같은 장소에서 쓰디쓴 패배의 독주를 마셔야했다. 월드컵 예선에서 브라질이 패한 것은 93년 볼리비아전 이후 2번째. 그러나 당시 볼리비아전은 산소가 희박한 해발 3600m의 고지대인 라파스에서 경기를 가졌기 때문에 변명이 통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어떠한 이유로도 말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그것은 삼바축구에 대한 과신이었다. 호나우두, 아모로소, 호마리오 등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결장했고 잦은 대표팀 경기로 선수들의 피로가 누적한 탓이었다. 나이키와 맺은 스폰서계약 때문에 유랑극단처럼 세계 곳곳을 다니며 대표팀이 불필요한 친선경기를 갖느라 재능을 쓸데없이 소진하고 있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아무리 세계최강이라고 하더라고 관리가 부족하면 순식간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브라질은 충격적인 패배가 따끈따끈한 보약이 된 듯 전열을 재정비하고 나선 6차전에서 ‘영원한 맞수’ 아르헨티나를 3-1로 꺾으며 간신히 분위기를 추스렸지만 파라과이에 당한 패배는 당분간 지울 수 없는 치욕으로 남을 듯싶다.
요크, ‘토바고 돌풍’의 핵
이변은 북미 지역예선에서도 일어났다. ‘카리브해의 떠오르는 축구왕국’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북미축구의 제왕’ 멕시코를 보기 좋게 눌러버린 것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7월24일 홈에서 열린 2002월드컵 북중미 C조 준결예선에서 종료 5분 전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려 거함 멕시코를 1-0으로 침몰시켰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이날 경기 내내 멕시코에 끌려 다녔지만 축구는 골로 말하는 법. 단 한번의 역습찬스를 살린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기분 좋은 승리였다. 1차전서 북중미골드컵 우승팀 캐나다를 2-0으로 물리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멕시코까지 꺾음으로써 승점 6으로 단독 1위에 올라 4개팀 중 2위까지 주어지는 최종예선 티켓을 따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돌풍엔 세계적인 스타의 활약이 숨어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최고명문구단인 맨체스터 유니이티드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드와이트 요크가 그 주인공이다.
요크는 팽팽하던 이날 승부에서 절묘한 패스 한방으로 라타피의 결승골을 이끌어내 랭킹 37위가 13위를 잡는 데 큰 몫을 해냈다. 빅스타가 있고 없음이 게임에서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두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축구가 급속히 평준화돼가고 있는 추세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강팀이라도 자칫 방심하다가는 순식간에 덜미를 잡힐 수 있다는 사실, 끊임없는 세대교체 등을 통해 싱싱한 자양분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계축구의 평준화는 갈수록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축구의 높은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축구만 잘하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기에 특히 저개발국 사이엔 과열 현상까지 빚고 있을 정도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달랑 공 하나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다.
아프리카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뛴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축구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하던 아프리카는 이제 당당히 세계축구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아시아는 더이상 그들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유명한 스타들은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몸값을 받고 뛰고 있다. 카메룬이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8강에 올라 아프리카 돌풍을 예고했고 나이지리아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 세계를 경악시켰다.
북중미와 아프리카를 누가 무시하랴
북중미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멕시코만이 다소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이젠 트리니다드 토바고, 코스타리카, 미국, 자메이카 등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불쑥 솟아오르고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코스타리카, 자메이카는 모두 카리브해연안국으로 타고난 유연성에 남미축구를 방불케 하는 뛰어난 개인기를 바탕으로 급속한 성장을 하고 있다. 미국 또한 새로 출범한 미메이저리그사커(MLS)를 발판삼아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은 대부분 유럽무대에서 뛸 정도로 세계적으로 기량을 검증받고 있다. 다만 아시아권만 체격적인 한계에 부딪혀 그 의욕만큼 발전속도가 더딜 뿐이다.
만국공통어 축구, 그리고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는 세계축구의 평준화 추세와 함께 파란과 이변이 속출되며 21세기 축구전쟁은 더욱 볼 만해졌다.
최성욱/ 스포츠투데이 기자

(사진/브라질의 구겨진 자존심은 회복될 수 있을까. 지난 7월 26일 열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의 로베르토 카를로스가 아르헨티나 수비수와 공을 다투고 있다)
세계최강이라는 브라질이 파라과이에 패하는가 하면 북미의 왕좌 멕시코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패하는 파란이 연출됐다. 브라질의 패배엔 당연히 얘깃거리도 풍성하다. 이기는 팀이 계속 이기면 당연히 여기겠지만 계속 이기다가 딱 한번 지면 그땐 별의별 뒷얘기가 다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브라질은 지난 7월24일 2002월드컵 남미지역예선 5차전에서 파라과이에 1-2로 졌다. 전반 6분 파라과이 파데레스에게 선취골을 내주었지만 후반 29분 ‘브라질의 희망’ 히바우두가 동점골을 뽑아내며 이변은 없는 듯싶었다. 하지만 파라과이는 종료 6분 전 ‘골 넣는 골키퍼’ 칠라베르트가 수비진영에서 길게 올려준 볼을 루이스가 수비수 2명을 제치고 결승골을 터뜨려 홈관중을 열광시켰다.

(사진/파라과이는 26년만에 브라질을 꺾어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난 7월27일 열린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월드컵 예선전 장면)

(사진/최근 브라질의 부진은 유랑극단처럼 세계를 누비며 불필요한 친선경기로 체력을 소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3월 28일 잠실운동장에서 한국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는 브라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