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트레이딩 카드게임의 세계
말리지만 말고 한번쯤 마주앉아 게임을 배워보는 건 어떤가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11월12일 토요일 고양시 주엽역 ‘미카엘’. 주엽역 광장에 붙어 있는 빌딩의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얌전하게 간판이 내걸린 가게가 보인다. 바깥쪽에서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열기가 가득하다. 겨울이 가까운데도 선풍기가 한쪽에서 돌아가고 있다. 20여 평 규모의 공간에 탁자와 의자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고 한쪽에 카드 진열장과 계산대가 있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서 게임을 하거나 여기저기 옮겨다닌다. 아이들이 많으니 자연히 시끄럽다. 이곳의 운영자인 김신애씨는 가끔씩 마이크를 들어 “조용히 하라” “자리에 앉으라”고 부탁을 한다.
부모는 걱정하고 아이들은 마냥 좋고
미카엘은 <유희왕> 카드 게임과 판매를 하는 곳이다. <유희왕> 카드는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눈에 익을 것이다. 그리고 카드에 열중해서 점점 더 많은 카드를 모으기 때문에 걱정도 될 법하다. 학교 선생님도 <유희왕> 카드를 학교에 들고 오지 못하도록 한다. 걱정의 대부분은 이렇다. “5장에 500원 하는데 애들한테 비싸다. 좋은 카드는 1만원, 2만원 등도 있다던데…. 그 카드를 갖기 위해서 많은 용돈을 쓴다.” “도박하는 것처럼 카드를 갖는다.” “좋아하게 되면 수업시간, 쉬는시간 개념이 없어진다. <유희왕> 카드가 많은 애가 뛰어난 애인 것처럼 군다.” 아이들이 카드를 사서는 그 자리에서 열어보고 필요 없는 카드를 버리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주말이 지나고 수위실 아저씨는 미카엘에 와서 “계단에 카드나 봉지가 많이 떨어져 있더라”며 아이들을 조심시켜달라고 당부한다.
경기도 일산 '미카엘'에서 학생들이 방과후 <유희왕> 카드게임을 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다. 미카엘에는 카드 고수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카드 트레이드도 활발하다. (사진/ 박승화 기자)
부모는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유희왕> 카드가 마냥 좋다. 주엽초등학교 6학년 송영호군은 “선생님이 못하게 해서 학교에 가져가지 못한다”고 섭섭해하고, 같이 게임을 하는 강선초등학교 6학년 신민혁군은 “짝이랑 수업시간에도 같이 펴놓고 게임한다”고 말한다. 한수초등학교 4학년 장승민군은 일주일에 5일 정도 미카엘에 와서 게임을 하는데 부모님은 가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당당하다. “제 취미인걸요.”
<유희왕>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 시리즈로 영화, 카드 게임 등 초호화 엔터테인먼트 상품이다. 만화는 1996년 일본 <주간소년점프>에 맨처음 연재됐으며, 국내에는 1999년 9월 만화책이 번역·출판됐다. TV 시리즈도 여러 개를 낳았다. 국내에는 2000년 스튜디오 ‘갸롭’에서 제작한 <유희왕 듀얼 몬스터즈>를 2003년 SBS에서 방영했다(총 224편 중 80편 방영). 현재는 케이블 채널 애니원에서 방송하고 있다. <유희왕 듀얼 몬스터즈 GX>는 내년 5월 공중파로 방영될 계획이다. 영화 <유희왕>은 2004년 8월 미국에서 처음 개봉했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4월1일 국내에 개봉했을 때는 관객점유율이 수위를 차지해 영화관 수를 늘리며 연장 상영했다.
카드게임은 1999년 고나미(KONAMI)에서 <유희왕> 판권을 사들이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경쟁사인 닌텐도의 <포켓몬>을 견제하기 위해 <유희왕>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유희왕> 카드는 국내 만화판권을 가진 대원C&A에서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 발매하면서 국내에 상륙한다(미국의 경우 일본 미국 계열사에서 발매). 2003년 12월9일 ‘푸른 눈의 백룡의 전설’을 시작으로 12번째 시리즈 ‘듀얼리스트의 투혼’이 11월4일 발매됐다. 국제게임 전시회인 ‘지스타’(GSTAR, 11월10~13일)에서 선보인 <유희왕> 온라인 카드게임은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왜 봉지를 뜯자마자 카드를 버릴까
만화는 이집트의 퍼즐 유물을 풀게 된 유우기에게 또 다른 자아가 생기고, 또 다른 자아가 유우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게임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2권의 에피소드에 여러 가지 게임 중의 하나로 처음 등장한 카드는 점점 카드 게임을 둘러싼 만화로 변해간다. 국내에 방영된 TV 시리즈는 아예 이 카드게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유희왕> 사업은 ‘가능성 있는’ 카드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유희왕 오피셜 카드게임’ 판매사인 대원C&A에서는 <유희왕> 카드 매출액이 부스터 팩 기준으로 하면 5장짜리 팩 400만 개(2천만 장), 월평균 20억~21억원이라고 밝혔다. 그 외 스타터 덱이나 스트럭처 덱 등도 있어서 이 판매량은 훨씬 많아진다. 현재 ‘트레이딩카드게임’(TCG·Trading Card Game, CCG(Collectible Card Game)가 표준용어이지만 관례적으로 쓰임) 부문에서 최대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1월10~13일 일산 KINTEX에서 열린 지스타에서는 <유희왕> 온라인이 선보였다. (사진/ 대원 C&A 제공)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이 추첨식 판매다. 게임 내에서는 같은 카드를 최대 3장까지 취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이미 많이 소유한 카드가 나올 경우 뜯은 자리에서 카드를 버린다. 대원C&A의 김승환 팀장은 이에 대해 “소비자를 통제할 수는 없다. 전세계에서 동일한 방식이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판매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냐는 지적에는 “랜덤하게 들어가 있으니 뽑기가 아니냐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추첨식이 게임을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컬렉션 개념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위주로 만든 것이지 컬렉션을 위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카드 내에 수집욕을 자극하는 요소도 있다. 바로 레어(rare) 수준을 나눠놓은 것이다. 글자만 반짝이는 ‘레어’, 그림만 반짝이는 ‘슈퍼 레어’, 글자와 그림이 반짝이는 ‘울트라 레어’가 있다. ‘페러렐 레어’라고 카드 전체에 프리즘이 든 것도 있다. 카드 오른쪽 귀퉁이의 노란 딱지와 흰 딱지는 한정판과 계속 발매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은 희귀 우표 수집처럼 게이머가 아니라 컬렉터 이야기다.
게임도 시대를 반영하며 변화한다. 딱지 치기나 병뚜껑 딱지 등이 손수 만들어 부지런한 사람이 많이 확보하는 자급자족식이었다면, 딱지 따먹기나 구슬치기 등은 게임으로 ‘따먹는’ 개발형 자본주의식이다. 유희왕 카드게임은 게임을 해서 카드를 얻거나 하지 않는다. 돈으로 사거나 트레이드로 모은다. 안정화된 자본주의 방식이다.
추첨식을 보완하는 방식이 ‘트레이드’다. 카드게임 앞에 ‘트레이딩’라는 말이 들어가듯이 ‘교환’은 게임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미카엘 내에서는 트레이드의 기준을 정해놓았다. “현물 거래는 절대로 할 수 없다. 부스터 트레이드라고 하여, 자신이 원하는 카드가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컬렉션 중에서는 원하는 게 없을 경우 부스터에 가서 상대방에게 원하는 카드를 사줄 수 있다. 레어 수준을 고려한 공정한 트레이드가 되도록 운영자 등이 간섭할 수도 있다.” 미카엘에서는 트레이드를 할 때 존댓말을 쓰도록 하는 ‘예의’도 지켜야 한다.
고수는 기본 덱으로 승부한다
부스터 덱을 고르고 있는 학생. 겉모양은 똑같지만 아주 신중하게 선택한다. (사진/ 박승화 기자)
<유희왕> 카드는 ‘게임용’이다. 아이들 게임이라는 인식에 가려 있지만 <유희왕> 카드게임은 지금까지 나온 트레이딩카드게임 중 가장 쉽고 대중적이라고 평가된다. 게임평론가 김상인씨는 ‘일발역전성’을 이 게임의 묘미로 꼽았다. “치밀한 전략성도 카드게임의 재미지만 한방에 뒤집히고 확 뒤바뀌는 배구 같은 재미가 있다.” 게임의 흐름이 빠르고 캐릭터의 완성도도 높다.
기본 덱에 들어 있는 몇 개의 ‘필수 카드’가 게임을 재미로 이끌기 때문에 게임에 숙달하면 카드가 많이 필요 없다. 미카엘 운영자 김신애씨도 “진짜 고수는 기본 덱으로만 게임을 한다”고 말한다. 일산동고등학교 3학년인 남재희군은 하루에 30분 정도를 게임의 룰을 공부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카드에 적힌 게임의 룰이 애매해서 게임을 실행할 때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공부할 정도로 “하면 할수록 어렵고 재밌어지는 게임이다.” 김상인씨는 “아이들 게임이라는 인식이 게임에 다가가기를 꺼리게 만드는 것 같다. 친구들이랑 편의점에서 음료수 사먹다가 <유희왕> 카드를 사면 이상한 눈초리로 본다. 점점 게임을 즐기는 사람 수가 줄어드는 게 안타깝다”고 이야기한다. 남재희군은 유희왕 카드 게임의 매력을 사람 만나는 재미라고 말한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말없이 게임만 한다. 하지만 카드게임은 서로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좋다.”
아이가 <유희왕> 카드게임에 빠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아이들과 마주 앉아 게임을 배우는 건 어떤가. 아이들의 이유 있는 변명을 구별하고, 아이들의 욕망을 슬기롭게 제어할 수도 있다. 봉투 뜯자마자 버리는 것도 이해하고 충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주 앉다 보면 카드게임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어느 골목의 구슬치기왕이었다면 아이들의 <유희왕> 카드게임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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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를 뛰어넘는 TCG게임 <매직 더 개더링>이 최초… <유희왕>은 전략과 수집 모두 노리는 ‘혼합형’
▣ 김상인/ 게임평론가
카드 게임과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해진 카드만을 이용하는 게임(포커, 고스톱)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카드 게임이라면, TCG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카드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카드를 이용해 게임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카드를 얻기 위해 카드를 사고 다른 사람과 교환하는 과정을 겪는 게임이 바로 TCG, ‘트레이딩’(Trading) 카드 게임이다.
TCG 역사의 시발점은 1993년 미국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Wizard of the Coast)에서 발매한 <매직: 더 개더링>(Magic: the Gathering·이하 MTG)이다.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두 명의 마법사가 카드에 담긴 마법을 이용해 결투를 벌인다는 설정의 는 기록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새로운 카드가 등장할 때마다 게임의 전략이 끊임없이 확장하는 게임성과 카드의 구성에 따라서 승패가 명확하게 가려지는 전략성, 판타지 소설을 보는 듯한 환상적인 세계관과 이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일러스트는 10년이 넘게 의 인기를 굳건히 지켜주었다. 지금도 대회는 열리고 있다.
의 경이적인 성공은 TCG 문화의 급속한 확대를 가져왔다. 많은 카드를 필요로 하는 TCG가 각종 문화적 소재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임이 알려진 뒤 온갖 문화적 소재들이 TCG로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메크워리어> 등의 게임으로 유명한 ‘배틀 테크’(Battle Tech)나 스타워즈 같은 소재들이 TCG로 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 당시 일본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던 <포켓몬스터>가 TCG로 만들어진다.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이 일본발 몬스터 태풍은 TCG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포켓몬스터>는 소설과도 같은 세계관과 치밀한 전략성이 아닌 캐릭터의 상품성, 즉 카드와 일러스트의 가치로 성공한 최초의 TCG가 됐다. <포켓몬스터>의 성공 이후 NBA 카드나 메이저리그 카드 같은 순수 수집용 카드들이 유행한다.
그 뒤 TCG 시장에 변화를 준 것이 <유희왕> TCG이다. <유희왕>은 MTG가 가진 전략성과 수집용 카드 게임들의 재미를 동시에 어필했다. ‘게임도 즐길 수 있는 TCG’를 목표로 카드 게임 강습회와 게임 대회를 개최해서 게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카드의 가치를 카드의 겉모습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서 수집하는 보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MTG가 너무 오랜 기간 발전하면서 카드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룰이 어려워져 초보 유저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는데, <유희왕>은 그 빈틈을 파고들며 새로운 TCG의 흐름이 되었다.
현재 새로 나오는 TCG들에서는 카드의 가치 구분이 명확한 점이나 카드 게임 룰이 확실히 정립돼 있는 점 등에서 <유희왕>의 흔적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가 ‘전략형 TCG’, <포켓몬스터>가 ‘수집형 TCG’의 대표라면 <유희왕>은 ‘혼합형 TCG’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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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걸고, 함정에 빠뜨리고…
<유희왕> 카드의 구성과 게임방법… 스트럭처·융합 등 용어가 복잡
<유희왕> 카드게임에서 ‘덱’은 카드 여러 장을 부르는 말이다. 덱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스타터 덱은 게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구성된 기본사양의 덱이다. 캐릭터별로 나뉜 여섯 종류의 덱이 50장 있다. 부스터 덱은 일종의 ‘확장팩’이다. 부스터 덱은 시리즈별로 나눠 ‘밀봉’해 출시되며 추첨식이다. 초기에는 한 팩에 10장씩 들어 있었는데 2004년 10월 출시된 ‘어둠의 유산’부터는 가격을 반으로 내리면서 5장이 되었다. 스트럭처 덱은 확장팩이 함께 모여 있는 덱이다. 이 카드들을 이용해 ‘게임용 덱’을 구성한다. 게임에 사용하는 덱은 40장 이상이면 된다. 그 외에 딱 15장이어야 하는 사이드 덱을 활용할 수 있다.
카드의 종류는 크게 몬스터카드와 마법카드, 함정카드 세 가지다. 몬스터카드(황토색)는 공격력과 수비력이 표시돼 있으며, 숫자는 대결(듀얼)에서 승패를 좌우한다. 20개의 종족과 6개의 속성이 있다. 몬스터카드에는 특수 효과를 가진 효과몬스터카드(주황색)와 각각 ‘융합’ ‘의식’ 마법카드와 함께 활용되는 융합몬스터카드(보라색), 의식몬스터카드(파란색)가 있다. 마법(녹색) 카드는 몬스터 카드에 공격력 등을 2배로 하는 등의 마법을 건다. 효과는 장착·카운터·필드·지속·속공·의식 등 6가지가 있다. 함정(보라색·융합카드보다 조금 더 빨갛다) 카드는 상대방의 마법을 ‘함정’에 빠뜨린다. 이 효과 역시 무력화하는 대응 마법에 따라 6가지로 나뉜다.
인사하고 섞어주는 등의 ‘예의’는 생략하고 간단하게 설명하면 카드에 표시된 공격력과 수비력을 비교해서 진 사람의 점수를 까나가다가 한쪽이 점수가 바닥나면 상대방이 이긴다. 맨처음에 주어지는 점수는 8천 점이다. 카드를 덮어놓고 시작해서 우연성을 더하는 것은 여느 카드 게임과 같다. 카드에 적힌 문구는 캐릭터 등의 설명도 있지만 그대로 따라야 하는 지시사항이다. 그 외 자세한 게임방법은 아이들과 마주앉아서 한 턴을 돌려보면 알게 된다. 아이들이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아이들은 듀얼에 굶주려 있다.
* <유희왕> 카드 게임 공식 홈페이지(http://www.yugioh.c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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