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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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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오마이섹스]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황신혜 10년 기다리니 연기 된다고, 나의 파트너도 이젠 제법 훌륭한 섹스를 구가한다. 그의 장점은 삽입 섹스 때 강약 조절을 잘하는 것인데 나에게 길들여진 것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도 부단히 연마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러나 암만 기다려도 잘 안 되는 게 있다. 그는 열여덟 살짜리도 아니면서 진한 키스는 영 어색해하고 혀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으며 툭하면 키득댄다. 그래서인지 우린 키스를 종종 생략한다. 대신 손가락이나 귓불을 깨물거나 빨아주는 쪽을 택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다. 서로에게 익숙지 않던 시절, 섹스 도중 내가 성질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애무를 할 때 너무 아파서다. 젖꼭지나 음순처럼 예민한 부위를 무턱대고 자극하는 통에 신경질이 났다. 그럴 때마다 구박했는데 심리적·물리적 위축 없이 시련과 고난을 뚫고 여기까지 와준 게 고맙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도 고통이 있었다. 내가 그의 자지를 지나치게 꽉 잡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꽉 잡혀서 왔다갔다 하면 땀이 뻘뻘 난다고 했다. 어, 그래? 난 좋아서 그런 줄 알았지.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철없을 때에는 여러 이유로 ‘정리와 평가’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 수줍어서, 기분 나빠할까봐, 기죽을까봐, 밝힌다고 여길까봐(혹은 들킬까봐 흠흠)…. 조금만 일찍 용기를 냈다면 우리의 섹스는 훨씬 풍성해졌을 것 같다. 초창기 몇 년간은 자주 아팠는데 그와 몸 비비는 게 좋아서 꾹 참는 날도 꽤 많았다. 이번주 ‘도전인터뷰’에 등장하는 여성주의자 정희진은 그의 책에서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했다. (페미니즘 같은) 기존 상식에 도전하는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주는 ‘대안적 행복’이라고 설명했다. 정희진씨가 허락한다면 ‘창조적’으로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아무리 고민해도 소통하지 않으면 ‘말짱 꽝’이라고. 머리 나쁘고 게으른데다 별 생각 없이 사는 나도 섹스 트러블을 고백하고 ‘대화’로 해법을 찾으니, 많은 기쁨이 생겼다. 정희진은 또 다른 멘트로 위로한다. “인생에서 깨달음 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대화를 하면 부족한 듯싶어도 (일단은 나 좋으려고) 격려 차원의 칭찬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장점도 ‘개발’ 된다. 최근에 발견한 거. 그는 나의 에로티시즘(친밀감과 애정을 담은, 말하자면 밝힘증)을 자기의 매력에 내가 눈이 멀어 그런 거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나의 에로티시즘이 내 안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 점 정말로 옆집 남자는 갖지 못한 장점이리라. 부가가치도 창출됐다. 그는 등을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하고, 나는 엉덩이 주물러주는 걸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어떻게 하면 섹스를 잘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경험과 고민과 소통의 총량에 비례하는 게 섹스다. 따라서 섹스는 대단히 공명정대한 행위이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실현할 배움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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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오마이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