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위민 원트> 달시의 인간적 모습, 할리우드의 획일적인 전문직 여성상이 달라진다
최근 개봉한 <왓 위민 원트>는 ‘어쩔 수 없이’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생마초 남성의 회개기와도 같은 영화다. 광고회사에서 잘 나가는 바람둥이 닉 마샬(멜 깁슨)은 욕조 안에서 전기에 감전된 뒤 여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는 여성들의 진심을 귀로 들으면서 ‘찬사’와 ‘흠모’라고 착각했던 부하 여성들의 눈길이 사실은 상사에 대한 형식적 예절과 가면을 쓴 경멸이라는 걸 깨닫는다. 또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깔보았던 상사 달시 맥과이어(헬렌 헌트)에게 진정한 동료애를 느끼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속물적이고 남성우월주의자인 한 남성의 개과천선 과정을 따라가지만 이 영화에 주목할 만한 인물은 닉 마샬이 아니라 오히려 달시 맥과이어다. 탄탄대로인 닉의 앞길을 얼음장의 미끄럼틀로 만들면서 상사로 부임한 달시는 영화가 그려온 전문직 여성의 모습에서 진일보했다는 면에서 닉보다 신선한 인물이다.
독종이거나, 무늬만 여성이거나
“성공할수록 실패자가 되는 것 같았어요.” 달시가 털어놓는(물론 마음속에서지만) 이 대사는 기실 그동안 할리우드영화 속 콧대높은 젊은 전문직 여성들의 캐릭터에서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말이다. 유능하면서 소심한 남성, 유능하면서 주책스런 남성 등 일하는 남성의 캐릭터는 다양하게 변주돼온 반면 유능한 여성에 부여한 성격은 지극히 단순했다. 성공을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기꺼이 팔 듯한 ‘독종’이거나 이미 주류 이데올로기에 편입된, ‘무늬’만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가 그만큼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파이를 나눠야 하는 남성들의 불편한 심기를 투영시킨 측면이 강했다.
일하는 여성의 야심과 갈등을 전면에 내세웠던 <워킹걸>(1988)은 여성이 남성들의 사회에서 받는 부당한 차별과 모욕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유쾌하게 여성의 승리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전문직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은 여전히 상투적이고 싸늘하다. 주식중개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테스 맥길(멜라니 그리피스)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닥치는 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퇴근 뒤 말하기 교실에 다닐 정도로 억척스런 직장여성이지만 야간대학 졸업장과 여성이라는, 그보다 형편없는 간판 때문에 ‘관리자 연수과정’에서 번번이 물을 먹는다. 그가 새로 옮긴 부서의 상사는 동갑의 여성주식전문가. 그는 막연한 동료애를 기대하지만 상사인 캐더린(시고니 위버)은 남성들 못지않게 종 부리듯 그를 대하며 아이디어마저 교활하게 가로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에게 청혼하는 날과 장소까지 스스로 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캐더린은 자기중심적인 여자다. 캐더린은 여성성이 거세된 독한 인물이면서도 집에서 애인을 기다릴 때는 훤히 비치는 속옷차림인, 섹스에 목마른 여성으로 그려지면서 전문직 여성=성적으로 분방한 여성=남자로부터 선택받지 못하는 여성으로 연결시킨다. 그가 다리부상을 입고 병원에 있는 동안 빼앗긴 아이디어를 되찾는 데 성공한 테스는 결국 캐더린의 남자까지 자기 것으로 만들어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배리 레빈슨 감독이 만든 <폭로>(1994)는 40년대 누아르영화에서 남성을 파멸시키는 여성인 ‘팜므파탈’이 현대영화에서 전문직 여성이라는 ‘적대계급’에 어떻게 투사되는가를 보여준다. “요즘 여자들은 우리 일까지 노린다니까요.” 28년간 일했던 IBM에서 해고당한 중년 남성이 출근길의 톰 샌더스(마이클 더글러스)에게 털어놓는 푸념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남성의 전유물에 가까웠던 기술전문직에 진출한 여성들에 대한 적대감을 보여준다. 하이테크회사의 중역인 톰은 넥타이에 아이들의 치약을 묻히고 출근할 정도로 가정적인 남자다. 톰은 <왓 위민 원트>의 닉과 비슷하게 자신이 올라갈 줄 알았던 부사장 자리에 여성상사를 받게 된다. 하필 그 여인은 자신과 동거까지 했던 과거의 애인 메레디스 존슨(데미 무어)다. 메레디스는 부임 첫날 저녁회의를 핑계삼아 톰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성폭력에 가까운 그의 강압적 섹스 요구를 거부한 톰에게 돌아온 것은 성희롱 음해. 사장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메레디스는 톰을 파멸시키기 위한 음모를 추진한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전문직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의 적대세력보다 한발 더 나간 체제 전복세력이다. 데미 무어가 연기하는 현대판 팜므파탈이 파괴시키고자 하는 것은 한 남성이 아니라 성실한 가장, 즉 가족이다. 대중영화에 있어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신앙에 가깝다. 많은 영화에서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전문직 여성은 가정을 가지지 못한 독신이며 이것은 직장인이기 전에 한 여성의 치명적 결격사유가 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여성에서 한 가정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악마적 심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메레디스와 대조가 되는 톰의 아내는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가지고 있지만 일은 언제 하나 싶을 정도로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챙기며 남편의 추문도 사랑으로 감싸는 현모양처의 전형이다. 변호사건, 전업주부건 여성의 완전한 성공은 가정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은근한 말투로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독신의 전문직 여성을 그리고 있지만 <왓 위민 원트>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이혼 경험이 있는 달시는 “남편하고 헤어진 건 내 자신이 돼갈수록 치르는 대가였죠”라고 말하는 여자다. 자신이 자아를 찾기 위해 치른 비싼 대가를 응시할 줄 알고, 당당하지만 쓸쓸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적으로 번민하는 여성으로서의 달시는 아마도 할리우드 1호의 인사일 것이다. 이렇게 여성의 마음을 섬세하고 읽고 입체적으로 그리는 게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여성감독의 작품이라는 데 있다. 감독 낸시 마이어스는 두딸의 엄마로 마초들의 정글인 할리우드에서 바늘귀보다 좁은 성공의 문을 연 여성이다.
<에린 브로코비치>에서도 달라진 여성상을
전문직 여성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고졸 학력의 애 셋 달린 이혼녀가 수질오염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 600여명에게 3억2300만달러의 보상금을 안기는 소송의 과정을 그린 <에린 브로코비치>(2000) 역시 달라지는 영화 속 여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영웅담 같은 소재와 전개로 실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도 노출이 심한 복장을 꺼려하지 않고, 일하기 위해 남자친구에게 선뜻 아이들을 맡기는 에린(줄리아 로버츠)은 더이상 비천한 여성이나 무책임한 엄마로 묘사되지 않는다.
여전히 공고한 가족주의와 남성중심 이데올로기의 성 안에서 할리우드 상업영화들은 조심스런 일탈을 모색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한국영화에서는 아직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접속>이나 <처녀들의 저녁식사>, 최근의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까지 이제 젊은 여성의 캐릭터는 당연한 것처럼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직장 문제로 갈등하는 ‘일하는 여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90년대 초반 페미니즘 논쟁을 일으켰던 이현승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나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처럼 일하는 여성의 문제를 중심에 놓는 시도조차 사라졌다는 것은 오히려 퇴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한국영화에서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착한여자 콤플렉스’를 꼬집는다. 심씨는 “주류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의 직업이 대체로 비전문적인 기능직으로 직장의 고민이 삶 속으로 치열하게 들어오지 못하거나 독립영화 등에서 나타나는 여성은 대체로 삶 자체가 처절하게 힘든 최하층의 여성중심인 것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여성사회가 급변하고 직업에 대한 여성들의 고민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비약하는 데 비해 여전히 영화에서 여성의 직업을 귀여운 장식품 정도로 묘사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앞서 고민해야 할 예술이 오히려 현실보다 한참 뒤쳐지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왓 위민 원트>.


사진/<폭로>.

사진/<에린 브로코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