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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스크린 가라사대] 조엘-난 이미 문 밖으로 걸어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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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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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난 이미 문 밖으로 걸어나갔어. 더 이상 남은 기억은 없어.
클레멘타인/ 최소한 돌아와서 작별인사는 해줘. 마치 우리에게 추억이 있는 것처럼. <이터널 선샤인> 중에서

▣ 김도훈 <씨네21>

*친애하는 미어즈위크 박사님께. 열흘 전에 라쿠나社로 찾아가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제거해달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낡은 군용 점퍼에 연방 담배를 피워대던 작은 남자를 기억하시겠지요. 물론 세 번째 문장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채셨을 겁니다. 예. 여전히 저는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기억하지 못하던 것들마저 기억이 나는 바람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무료 기억소거 재시술을 부탁드립니다.


*친애하는 작은 남자씨께. 물론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냄새 나는 군용 점퍼는. 음,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당신이 시술을 받은 다음날 ‘그 사람’도 당신을 기억에서 제거해달라며 찾아왔었답니다. 시술은 완벽한 성공이었지요. 그는 당신을 기억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미어즈위크 박사님께. 저는 그 사람을 잊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제가 그에게 저지른 바보 같은 일들을 잊고 싶은 겁니다. 저는 그 사람이 아니라 저를 지우고 싶습니다. 의료소송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일인지 아신다면, 재시술을 준비해주세요. 곧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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