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무대는 너무 좁다”… 조건 안맞으면 이탈리아행 계획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거포
“국내는 좁다. 세계 무대가 날 기다린다.”
한국배구가 낳은 세계적인 거포 이경수(한양대)가 세계 남자배구 최강 이탈리아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왜? 국내는 물론 아시아 무대는 그가 뛰기에 너무 좁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실업팀이 제대로 대우를 해준다면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20억원은 줘야…
이경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안을 각 실업팀에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신생팀 입단. 현재 국내에는 삼성화재, 현대자동차, LG화재, 대한항공, 상무, 서울시청, 한전 등 7개팀이 있으나 프로화를 앞두고 있는 현재 실질적인 팀은 삼성화재, 현대자동차, LG화재, 대한항공 등 4팀에 불과하다. 신생팀의 등장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경수는 신생팀이 창단될 경우 무조건 그 팀에 간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신생팀 창단이 불발할 경우 전력이 가장 약한 팀에 입단한다는 것이다. 이경수의 마지막 카드는 이탈리아리그행이다. 신생팀 또는 최약체 실업팀에 입단한다 해도 대우가 시원치 않으면 차라리 이탈리아로 날아가겠다는 말이다. 이경수 정도면 이탈리아리그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경수가 원하는 대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전례로 봐서 2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삼성화재가 신진식을 데려가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무려 18억원이었던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경수의 몸값은 그보다 더 많아야 한다는 것. 배구 전문가들은 “이경수를 잡으려면 그 정도는 줘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경수가 이처럼 거액을 요구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해 국내 최고의 거포이기 때문이다. 이경수는 흔히 ‘제2의 강만수’로 불린다. 강만수는 70년대 아시아배구계를 주름잡았던 국내 최고의 거포였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경수를 강만수 이상의 선수로 평가한다. 강만수는 주로 단조로운 오픈공격에 주력한 데 비해 이경수는 공격, 수비, 블로킹 등 3박자를 갖췄다는 것이다. 200cm의 장신에 유연성이 뛰어난 이경수는 유성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공을 잡았다. 레프트, 라이트, 센터 등 세터를 뺀 전 포지션을 소화해내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인데다 대부분 거포가 취약한 서브리시브 능력까지 겸비해 주니어는 물론이고 19살의 어린 나이에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했다. 대전중앙고교 시절에는 스카우트 열풍에 휩싸여 당시 그의 진로는 배구계 최대의 관심사였다. 이경수는 애초 오랫동안 스카우트에 공을 들여온 모교선배 신춘삼 당시 홍익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홍익대행이 유력했다. 그러나 부친 이재원씨가 이경수의 은퇴 뒤의 장래 등을 고려해 “교사 자격을 딸 수 있는 체육과가 없는 대학엔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한양대로 진로를 선회했다. 이경수를 얻은 한양대는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신장에 비해 팔길이가 긴데다 서전트점프가 70cm에 달해 블로킹에도 능한 그를 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슈퍼리그를 맘대로 휘젓는다
이경수의 진가가 확실히 발휘된 때는 지난해 슈퍼리그. 아시아 예선전에서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해 시드니올림픽 티켓을 획득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이경수는 2000 슈퍼리그에서 그동안 김세진, 신진식(이상 삼성화재)이 양분했던 남자배구의 쌍포를 제치고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다. 큰키와 탄력넘치는 점프를 앞세워 터뜨리는 그의 고공강타를 막아낼 블로커들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전·후위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공격력을 구사해 상대 수비들은 그가 뜨기만 해도 겁을 먹었다.
배구규칙이 랠리포인트제로 바뀌자 이경수의 위력은 더욱 거세졌다. 한 경기개인 최다기록을 거푸 경신한 것. 지난해 1월13일 벌어진 2000슈퍼리그 경기대전에서 한 경기 개인 최다인 49점(47킬 2블로킹)을 기록했던 이경수는 7월 대학연맹 2차대회에서 같은 상대인 경기대를 맞아 53점(47킬 6블로킹)을 올려 새 기록을 작성했다.
99년 말 시드니올림픽 아시아예선전과 2000년 슈퍼리그, 1차대학연맹전, 미국 국가대표 친선경기, 아시아 최강전 등 각종 국내외 대회에 차출돼 지칠 법도 한데 이경수는 피곤한 기색없이 무쇠 같은 어깨를 마구 휘둘렀다.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2001 슈퍼리그에서도 이경수는 연일 강타를 터뜨리며 한양대를 1차대회 대학부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의 몸값을 20억원 이상으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가장 많은 여성팬 확보
그러나 이경수가 자신의 소망대로 몸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현행 드래프트제가 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 드래프트제는 순번에 따라 선수들의 계약금을 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드래프트의 전체 1번순위 계약금은 3억원이었다. 그래서 이경수는 드래프트가 아닌 자유계약제를 원하고 있다. 자유계약제가 되어야 제 몸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경수가 자유계약 시장에 나올 경우 삼성화재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LG화재, 대한항공 등 실업팀의 엄청난 물량공세가 펼쳐져 과거와 같은 ‘이전투구’ 양상을 띨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드래프트로 이경수를 뽑되 몸값은 이경수쪽과 구단의 합의하에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경수가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국내 최고의 배구선수로 어엿하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부모가 모두 시각장애인이다. 특히 아버지 이재원씨는 어려움 속에서도 아들의 뒷바라지를 훌륭하게 해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대전에서 열리는 지방대회에서는 기자들을 초청, “우리 아들 잘 키워줘 고맙다”며 식사대접을 마다하지 않는 호탕함을 지닌 인물이다.
이경수를 키워낸 송만덕 한양대 감독은 “경수는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 평소 선수생활도 모범적이며 인성이 착하다”며 “남보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굳건히 헤쳐나와 대견하다”고 말한다.
장신에다 깨끗한 용모로 대학선수 중 가장 많은 여성팬들을 갖고 있는 이경수는 그러나 “애인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웃기만 한다. 송 감독은 “아직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이 22살에 슈퍼스타인 그에게 여자친구 하나 없을 리는 만무하다.
국내 무대가 좁다며 여차하면 이탈리아로 떠나겠다고 폭탄선언한 이경수. 대학 졸업반이 되는 이경수의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다.
장성훈/ 스포츠투데이 기자sean@sportstoday.co.kr

사진/이경수는 지난해 슈퍼리그에서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발휘했다.(김정효 기자)
이경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안을 각 실업팀에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신생팀 입단. 현재 국내에는 삼성화재, 현대자동차, LG화재, 대한항공, 상무, 서울시청, 한전 등 7개팀이 있으나 프로화를 앞두고 있는 현재 실질적인 팀은 삼성화재, 현대자동차, LG화재, 대한항공 등 4팀에 불과하다. 신생팀의 등장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경수는 신생팀이 창단될 경우 무조건 그 팀에 간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신생팀 창단이 불발할 경우 전력이 가장 약한 팀에 입단한다는 것이다. 이경수의 마지막 카드는 이탈리아리그행이다. 신생팀 또는 최약체 실업팀에 입단한다 해도 대우가 시원치 않으면 차라리 이탈리아로 날아가겠다는 말이다. 이경수 정도면 이탈리아리그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경수가 원하는 대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전례로 봐서 2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삼성화재가 신진식을 데려가기 위해 쏟아부은 돈이 무려 18억원이었던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경수의 몸값은 그보다 더 많아야 한다는 것. 배구 전문가들은 “이경수를 잡으려면 그 정도는 줘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경수가 이처럼 거액을 요구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해 국내 최고의 거포이기 때문이다. 이경수는 흔히 ‘제2의 강만수’로 불린다. 강만수는 70년대 아시아배구계를 주름잡았던 국내 최고의 거포였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이경수를 강만수 이상의 선수로 평가한다. 강만수는 주로 단조로운 오픈공격에 주력한 데 비해 이경수는 공격, 수비, 블로킹 등 3박자를 갖췄다는 것이다. 200cm의 장신에 유연성이 뛰어난 이경수는 유성초등학교 3학년 때 배구공을 잡았다. 레프트, 라이트, 센터 등 세터를 뺀 전 포지션을 소화해내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인데다 대부분 거포가 취약한 서브리시브 능력까지 겸비해 주니어는 물론이고 19살의 어린 나이에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했다. 대전중앙고교 시절에는 스카우트 열풍에 휩싸여 당시 그의 진로는 배구계 최대의 관심사였다. 이경수는 애초 오랫동안 스카우트에 공을 들여온 모교선배 신춘삼 당시 홍익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홍익대행이 유력했다. 그러나 부친 이재원씨가 이경수의 은퇴 뒤의 장래 등을 고려해 “교사 자격을 딸 수 있는 체육과가 없는 대학엔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한양대로 진로를 선회했다. 이경수를 얻은 한양대는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신장에 비해 팔길이가 긴데다 서전트점프가 70cm에 달해 블로킹에도 능한 그를 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슈퍼리그를 맘대로 휘젓는다

사진/슈퍼리그 대학부 정상을 차지한 한양대. 이경수의 지칠줄 모르는 기세가 한양대를 대학최강으로 올려놓았다.(이종근 기자)

사진/70년대 아시아배구계를 주름잡았던 국내 최고의 거포 강만수. 이경수는 '제2의 강만수'로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