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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갑돌이와 갑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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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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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그를 보면 가끔 아찔하다. 그는 밥 먹기 전 주변 사람들의 수저를 놓아주고 밥 먹은 뒤 후식으로 나온 과일의 끄트머리를 먼저 집는다. 상당수의 남자들은 수박의 크고 실한 부분을 덥석 집고, 포도를 먹고서는 껍질과 씨를 밥상 아무 데나 뱉어버리는 습성이 있다. 같이 먹는 상대를 배려하고 밥집 아줌마의 노고까지 고려하는 남자와의 식사는, 즐겁다. 그날도 그랬다. 그가 밥상에 흘린 생태찌개 국물을 입 닦은 휴지로 깨끗이 닦은 뒤 내 표정을 살피며 “나갈까?” 하는 순간 현기증이 났다.

우렁 된장찌개를 휘휘 저어 우렁만 골라먹고 백반에 딸려나오는 계란프라이 중 크고 예쁜 것을 냉큼 자기 밥그릇에 집어가는 자가 있었다. 나머지 계란프라이는 터져서 볼품없었을뿐더러 크기도 작았다. 나는 왜 뭐가 찜찜한지도 모른 채 늘 터진 계란프라이 먹는 기분으로 그를 만났다. 이젠 물정을 제법 알아버려 눈에 찍히는 남자조차 드문 마당에 ‘꽤 많은 것을 말해주는 행위’인 밥상 매너 좋은 남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런 남자는 설사 힘이 달리거나 기술이 좀 모자란다 해도, 다 용서된다. 손만 잡고 자도 축복이다.

남녀 관계는 계약서가 없다 해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갑과 을의 관계가 된다. 나는 아찔한 그를 기꺼이 갑돌이라 부르겠다. 갑의 지위는 아무나 누리는 게 아니다. 상대를 갑순이로 대할 줄 아는 남자가 진정한 갑돌이다(왜 노랫말에서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랬는지 깊은 뜻을 알겠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그녀는 그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다(갑돌이 말고 다른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에도 그녀의 신경은 온통 그에게 쏠려 있다.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가 그와 함께 있을 때에는 초조하고 불안한 리모컨이 된다. 그는 남들에게는 친절하지만 그녀에게는 친절하지 않다. 후배들에게 호주머니를 털어 차비를 쥐어줄지언정 마누라가 스타킹을 기워신는지조차 신경 안 쓰는, 그런 잘난 남자를 ‘내 남자’로 두는 것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성정을 필요로 한다. 부처님이 아닌 이상 그런 성정은 거짓말이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어하고 그는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둘의 욕망은 충돌한다. 그는 그녀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듯했다. 덕분에 그녀가 듣고 싶어하는 ‘지도편달’에 능하다. 하지만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는 ‘이해’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욕망하는 한쪽과 그걸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는 다른 쪽의 관계는 완강한 갑을 관계가 된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천부의 선택권을 기약 없이 ‘박탈’당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관계가 있을까? 그건 한쪽의 희생이 아니다. 다른 쪽의 정서적인 착취이다.

상대가 나를 갑순이로 대접하지 않으면 스스로 갑순이가 되는 수밖에. 그렇게만 된다면 눈물을 꾹 참고 앞서의 갑돌이를 그녀에게 보내겠다. 물론 갑돌이가 정작 ‘내 여자’에게는 어떨지 데리고 살아보지 않아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뒷감당은 갑순이가 하겠지. 갑순이건 을순이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다”는 것만 명심한다면 세상은 훨씬 명랑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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