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이 전염에 대한 증거 없고 항바이러스제로 효율적 전염 차단 가능
자국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근원지 봉쇄하는 전략을 국제 공조로 성공시켜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요즘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조류독감 대재앙론은 어설프게 잉태됐다. 지난 9월29일 세계보건기구(WHO) 소속으로 유엔 인플루엔자 담당조정관인 데이비드 나바로 박사가 “앞으로 수개월 동안 조류독감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사망자 수가 500만 명에서 1억5천 명까지 될 수 있다”고 운을 띄운 게 불씨였다.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언론이 대재앙론을 대서특필했다. 국내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1500만 명이 감염돼 5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정말로 조류독감은 ‘21세기의 흑사병’으로서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50% 치사율, 점점 떨어져
전세계적으로 독감이 유행하려면 특별한 경로를 밟아야 한다. 예컨대 전혀 면역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염 가능성이 큰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사람들 사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확산된다는 것이다. 독감 전문가들은 H5N1형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교체하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만일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게 확실하다면 대재앙은 시간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관한 실재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돌연변이를 거친 바이러스에서 나타날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의 전염병으로 변이될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미 루마니아의 다누베 삼각주 지역에서는 닭이나 오리·칠면조 같은 가금류를 독가스로 폐사시키고 주민들에게 항조류독감 바이러스를 투약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닭고기 수입을 금지한 영국은 조류의 배설물 찌꺼기가 깃털에 묻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베개용 깃털’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터키의 감염된 가금류 샘플의 바이러스가 H5N1형으로 확인되면서 유럽 전역이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 탓이다. 하지만 H5N1형도 등급이 있다. 저마다 위험의 정도가 고병원성과 저병원성 등으로 나뉜다는 말이다.
이렇게 조류독감 대재앙론이 확산되면서 ‘위험 시나리오’만 쌓이고 있다. 대부분의 예측 보고서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훨씬 웃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엔 조류독감에 감염되면 특별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전염된다는 설명이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조류독감이 비행기를 통해 전세계에 전파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류독감이 인간 전염병으로 변이됐을 때 바이러스의 위력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체로 동물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자체 변이를 하거나 다른 바이러스와 결합해 인간 바이러스로 바뀌는 과정에서 살상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류독감을 유발하는 H5N1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직접 조류로부터 감염된 120명의 감염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지구촌을 생지옥으로 만든 스페인 독감(1918)의 사망률이 5% 미만이었던 데 견줘 10배 이상 높은 치사율이다. 하지만 근래에 조류독감의 치사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북부 베트남의 조류독감 감염자 사망률은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조류독감에 대처하는 영국 보건부만 해도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에 확산되는 시기를 5년에서 10년 뒤로 내다보고 있다. 그때의 치사율은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타미플루, ‘강제실시권’ 논의하라
설령 조류독감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그대로 보유한 채 전파된다 해도 과거의 사망률에 근접하기는 힘들다. 바이러스 확산을 지연할 수 있는 방안을 쉽게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초 바이러스 감염 지역을 신속하게 탐지한 다음 발병 지역의 주민들에게 항바이러스를 투여해 바이러스 출현을 둔화시키거나 아예 진압하는 것이다.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학의 생물통계학자 이라 롱기니 교수는 “과거에는 바이러스 전파를 봉쇄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이를 통제할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당시 롱기니 교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조류독감의 확산 경로를 추적했다. 타이 정부가 공개한 인구통계·여행습관·가구크기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감염 가능성을 살핀 것이다. 이에 따르면 감염자 1명이 평균 몇 명을 재감염시키는지를 따지는 ‘재생수’가 1.6R0(R-Naught)였을 때 항바이러스 약품 ‘타미플루’를 적절히 활용해 전세계에 유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대체로 독감의 재생수는 낮은 편이다. 스페인 독감은 2R0였다. 이에 견줘 가장 전염성이 강한 질병인 홍역의 재생수는 15R0나 된다. 만일 조류독감의 재생수가 4R0에 이른다면 국내 인구의 32%(치사율: 도시 1%, 농촌 2% 가정)나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 보건의료 체계에서 재생수가 4R0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2년 전의 충북 음성 사례처럼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유입돼도 신속하게 대응하면 얼마든지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현지에서 감염 경로를 차단하는 대책을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철새들의 겨울철 이동 경로를 따라 유럽과 시베리아를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로 이동하지 않도록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자국의 항바이러스 약품 비축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자국 중심으로 조류독감에 대처하다 보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형국에 놓일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국제적인 공동대응이 필수적이다. 일단 아시아와 유럽의 조류독감 근원지를 봉쇄하는 전략을 국제 공조로 성사시켜볼 만하다.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가진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의 동의 없이 특허를 사용하는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는 것부터 뜻을 모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되면서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불명확하더라도 전파 경로를 차단하고 약물로 봉쇄할 수 있는 방역 체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보건 당국은 조류독감에 대한 공포감으로 사회가 집단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더운 지구가 조류독감 일으킨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야생 조류의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H5 혹은 H7 혈구응집소 항원이 돌연변이를 일으켰을 때 바이러스로 유입된다고 한다. 사실 1950년대 후반부터 40여 년 동안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금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다가 1997년부터 창궐한 데는 뭔가 석연치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후가 바뀌면서 바이러스 변종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예컨대 말라리아의 발병 지역이 갈수록 넓어지는 원인이 지구 온난화에 있는 것처럼. 더운 지구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는 셈이다.
아직까지 인간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대항할 만한 면역성을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라 해서 막을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사람이 감염된 경우는 예외 없이 가금류에 손이 닿을 때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침투한 것이었다. 조류독감 예방은 손씻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사람이 면역력을 갖추기만 한다면 바이러스 유입에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된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 전염병으로 변이되는 데는 적어도 수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인류가 백신을 개발해 조류독감 면역력을 키울 시간은 남아 있다. 최악의 상황 예측에 지레 겁먹고 공포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다.
자국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근원지 봉쇄하는 전략을 국제 공조로 성공시켜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요즘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조류독감 대재앙론은 어설프게 잉태됐다. 지난 9월29일 세계보건기구(WHO) 소속으로 유엔 인플루엔자 담당조정관인 데이비드 나바로 박사가 “앞으로 수개월 동안 조류독감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사망자 수가 500만 명에서 1억5천 명까지 될 수 있다”고 운을 띄운 게 불씨였다. 이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언론이 대재앙론을 대서특필했다. 국내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1500만 명이 감염돼 5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정말로 조류독감은 ‘21세기의 흑사병’으로서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50% 치사율, 점점 떨어져
전세계적으로 독감이 유행하려면 특별한 경로를 밟아야 한다. 예컨대 전혀 면역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염 가능성이 큰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사람들 사이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확산된다는 것이다. 독감 전문가들은 H5N1형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교체하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만일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게 확실하다면 대재앙은 시간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관한 실재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돌연변이를 거친 바이러스에서 나타날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조류독감은 21세기의 흑사병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것일까. 10얼17일 인천공항에서 열감지기 앞을 지나가는 여행객들. (사진/ 연합)

조류독감 발생 차단을 위해 양계놓가 출입구에 생석회 가루를 뿌리고 있는 대전충남양계농협 직원들. (사진/ 연합)

조류독감이 의심되는 가금류를 수거 중인 루마니아 보건당국 직원들. (사진/ 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