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의 권력관계를 찬찬히 응시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 감독…피해자이자 가해자였던 자신의 군대경험을 바탕으로 두번째 사춘기 섬세하게 관찰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는 군대(경험 혹은 문제)에 대해 참 무심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군대를 갔다오고, 그토록 오랫동안 군대에 대해 ‘추억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물론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이나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군대를 주요 무대로 삼은 영화들은 가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군대의 경험을 극단화하거나 군대의 일을 장르적 상황으로 빌려오는 것에 그쳤다. 그래서 윤종빈(26)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는 소중하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상, 뉴커런츠 특별언급, PSB 관객상, 넷팩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주목받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한국 영화 역사에서 군대 안의 권력관계를 처음으로 찬찬히 응시한 영화로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작품으로 4관왕의 ‘영예’를 거머쥔 윤종빈(26) 감독을 만났다.
왜 군대 안의 권력관계를 다룬 한국 영화가 거의 없었을까?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희생자로 여기지만, 사실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아닌가. <용서받지 못한 자>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 거머쥐어 윤 감독의 군생활은 어땠나?
=1999년 11월에 입대해서 2002년 1월에 제대했다. 공수부대에서 사진병으로 일했다. 원래 체질적으로 권력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지만 그냥 조용한 병사로 지냈다. 매일 이어폰을 끼고 음악만 들었다. 제대한 뒤에 나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군대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아니다. 군대를 갔다오면서 군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군대를 갔다오니 우리나라가 군사주의 사회라는 것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여기, 친구가 친구를 만났다. 부대에 신병이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중학교 동창이었다. 태정(서장원?)은 병장이자 분대장이고, 승영(서장원?)은 신참 이등병이다. 더구나 신참은 군대의 규율을 참지 못하는 인물이다. 가끔 선임병에게 ‘개기는’ 사고도 친다. 병장인 친구는 이등병 친구를 보호해야 한다. 일종의 유사 형제관계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이렇게 규율이 절대적인 사회에 사적인 관계를 끼워넣고, 그 모순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통해 군대에 대해, 나아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태정이 제대한 이후, 상병이 된 승영이 민간인이 된 태정을 찾아온다. 영화는 군대 안의 과거와 군대 밖의 오늘이 교차되면서 이어진다.
친구가 선임과 후임으로 만났다는 구조가 군대의 관계 방식을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사적인 친밀감이 군대에서는 그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군대에서는 군인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태정에게는 두 개 혹은 세 개의 얼굴이 있다. 인간의 얼굴과 군인의 얼굴이다. 분대장인 군인으로서 보이는 얼굴, 승영과 함께 있을 때 나오는 친구의 얼굴, 제대한 뒤에 나오는 민간인의 얼굴이다. 친구로서 태정의 얼굴이 태정의 본성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태정은 보호하는 자, 승영은 보호받는 자가 된다. 유사 형제관계가 흥미롭다.
=우정과 애정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 관계에서도 정신적·신체적 매력이 뒤섞여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태정에 대한 승영의 감정도 약간은 복잡할 수 있다.
운동을 잘 못하는 승영이 농구를 잘하는 태정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승영은 “다시 태어나면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회가 권장하는 ‘강한 남성’은 그 질서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마저도 포섭할 만큼 강력한 구조라는 뜻인가?
=그렇다. 승영처럼 남성성에 저항하는 인물조차 그것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선망하게 되는 측면을 그리려고 했다. 또 승영은 남성성에 대한 숨겨진 선망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군 논리에 적응할 여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라는 뉘앙스도 품고 있다.
유사 형제관계와 ‘고문관’의 자살
<용서받지 못한 자>에는 또 다른 유사 형제관계가 나온다. ‘고문관’ 스타일의 지훈(윤종빈)이 승영의 후임으로 들어온다. 모두가 지훈을 ‘어리버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승영만은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지훈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승영으로서는 지훈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 군대 논리에 저항하는 일종의 실천인 셈이다. 그리고 유사 형제관계는 해체된다. 태정은 제대하고, 승영은 변해간다. 승영은 군대의 논리에 서서히 적응해간다. 승영은 군대에 적응할수록 지훈이 부담스러워진다. 승영이 군대에 저항하면서도 적응할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지훈은 규율과 효율성에 체질적으로 부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훈이 자살한다. 승영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군대를 갔다온 남성이라면, 태정과 승영 혹은 지훈의 모습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혹은 여러 모습에 자화상이 뒤섞여 있다.
남자다운 태정, 지식인 스타일의 승영, 어리버리한 지훈의 캐릭터가 어쩌면 전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디테일의 섬세함이 전형성을 설득력으로 바꾼다.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했나?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한국의 어느 부대에나 그런 애들 한 명쯤은 있다. 군생활을 해봤으니 누구를 딱히 모델로 삼을 필요도 없었다.
승영이 갑자기 지훈을 답답해하는 태도의 변화가 영화의 핵심이기도 한 것 같다.
=승영은 지훈에게서 버리고 싶은, 잊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부정이다. 군대에 저항하는 심리를 가진 사람도 어느 때부터인가 적응하게 되지 않나.
승영은 명문대생으로 설정돼 있다. 그러고 보면 명문대생이라는 사실은 규율에 반항하면서도 마음먹으면 적응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저항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은 복종하는 방법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지훈은 가장 남성성이 거세된 인물이지만, 반항하지 않기 때문에 군대에서는 귀여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승영의 보호가 오히려 지훈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면이 있다. 그래서 승영이 지훈을 버렸을 때, 지훈은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침 여자친구에게도 버림받은 상황이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두 개의 자살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감독은 자살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심하게 때리고 지독하게 ‘갈구는’ 장면을 넣지는 않는다. 폭력을 방치하는 군제도의 문제도 도드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관계의 충돌 속에 구조의 문제도 슬쩍슬쩍 녹아든다. 장난을 가장한 성추행, 소원 수리의 무용성, 장교에서 졸병까지 이어지는 폭력의 연쇄 구조…. 굳이 정색하지 않으면서 주제를 놓치지 않고, 할 말은 하는 것이 <용서받지 못한 자>의 미덕이다.
폭력을 유발하는 구조의 문제는 거의 생략돼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있어야 한다. 거시적으로 접근하면 메시지만 도드라지고 영화가 재미없어진다. 무엇보다 핵심은 앙상한 폭력의 구조가 아니라 관계에 스며든 폭력의 질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의 이야기로 풀었다.
내무반이 영화의 주무대다.
=내무반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관계의 폭력은 바뀌지 않는다. 막사 구조에서 2인1실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징병제의 존재가 아니겠는가?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 내 사고에 대한 주석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검은 활자 속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으로 자살을 가두지 않는 한편, 한국 남성에게는 어쩌면 두 번째 사춘기 같은 병영을 통과하는 과정을 그린 ‘좌절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겨우 스물여섯의 윤종빈 감독은 생생한 기억으로 섬세한 스케치를 보여준다. 한국 영화계는 남성성과 권력의 문제에 대한 예민한 관찰자를 한 명 얻었다. 참, <용서받지 못한 자>는 영화를 보면서는 서서히 몰입하게 만들고, 영화를 보고 나면 천천히 생각하게 하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미덕이다. 이 영화는 11월18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등에서 개봉한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희생자로 여기지만, 사실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아닌가. <용서받지 못한 자>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 거머쥐어 윤 감독의 군생활은 어땠나?

(사진/ 류우종 기자)

승영은 "내가 고참이 되면 바꿀 거야" 라고 다짐하지만, 후임병 지훈의 자살 뒤에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고 자조하게 된다. 승영과 태정(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 지훈과 승영(왼쪽에서 세 번째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