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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청년들이 심은 통일의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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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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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통일포럼에서 만나 일상적 통일운동 방식을 고민한 여러 학생단체들
“계급이나 민족 하나를 택해야하는 건 아니다" 공감대 형성하며 연대 고민

▣ 파주=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현재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리는 <아리랑 축전>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배경대’(카드섹션)를 눈으로 확인한 남쪽 사람이 7천여 명에 이른다. 6·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을 맞는 해에 ‘갑작스럽게’ 이뤄진 대규모 남북 교류는 이런저런 뒷말에도 민간인 교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군사용 다리 ‘전진교’를 넘자 곳곳에서 총소리가 들려왔고, 무려 215만 평을 부지로 사용하는 미군 스토리 사격장은 여전히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언저리에서 진보 진영의 젊은 활동가들이 ‘통일’을 화두로 삼아 뜻깊은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그 동안의 차이, 그 안타까움을 털고자


분단의 상징인 민통선 지역의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해마루촌에서 지난 10월14일부터 이틀 동안 한겨레통일문화재단 통일문화연구소(소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가 마련한 ‘제4회 한겨레 통일포럼’이 열렸다. 재단 김보근 사무총장은 “통일포럼은 해마다 통일운동 진영의 화합을 위해 마련하는 행사다. 지난해까지 통일연대와 민화협 등 사회운동 진영을 대상으로 하다가 올해 청년학생 통일운동 관계자를 초청해 함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런 취지에 따라 통일포럼에는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지닌 청년학생 단체의 활동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과 ‘다함께’ 쪽이 발제자로 나서고,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회’(한대련),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한국청년연합회(KYC),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청년학생 통일운동 진영을 망라한 셈이다. 이 가운데 한총련은 1980년대 대학생 통일운동을 이끈 핵심이고, 다함께는 국제사회주의자(IS) 그룹과 맥을 같이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4월 전국 50여 개 대학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대련은 학내 문제에 중심을 두면서 사회운동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이날 통일포럼 참석자 30여 명은 스토리 사격장 부근에 있는 한겨레 농장에 심은 ‘통일 고구마’를 수확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청년학생운동 토론회에 앞서 한충목 통일연대 상임집행위원장과 문성순 6·15 공동위원회 청학본부 집행위원장이 공동 발제자로 나서 ‘해방 60돌 남북 교류사업 정리·평가’의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선 올해 남북 교류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으로 민간과 정부의 간격 해소 등을 꼽았다. 한상목 상임집행위원장은 “민간 통일운동 단체가 주도하는 민족통일 대축전에 정부의 공식 대표단이 참가하면서 행사의 의미를 한층 높였다”고 평가했다.

청년학생들은 통일운동의 강조점을 놓고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지난 10월14일 해마루촌에서 열린 한겨레 통일포럼에서 청년학생들이 처음으로 '통일'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귀옥 한겨레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한성대 교수)은 “통일운동을 둘러싼 진보의 분열 양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분열은 진보의 상징”이라면서 “각각 평화와 통일을 내세운 단체들이 강력한 연대의 틀을 마련하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한편 토론 과정에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쪽 대표단 일행이 지난 8월14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하게 된 경위도 공개됐다. 평양에서 사전 실무회담을 열 때 북쪽에서 현충원 방문 의지를 밝혔다는 것이다. 당시 북쪽의 제안이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남쪽 실무자마저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북쪽 대표단의 국회 방문은 남쪽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렇다면 청년학생들은 어떻게 일상적 통일운동을 벌여나갈 것인가. 2부 토론회 ‘2005년 한반도 통일운동의 과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있는 청년학생 단체에 속한 참가자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데 따르는 안과 밖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봤다. 올해를 통일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세운 13기 한총련의 김지하 조국통일위원장은 “남북 교류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지만 북쪽에서 남으로 오는 데는 한계가 많다”고 지적하며, 이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주한미군·국가보안법·통일단체 이적규정 등을 꼽았다.

한총련이 통일국가 실현을 목표로 삼은 우리 사회를 바꾸려 한다면, 다함께는 국제주의 관점에서 반전평화를 실현하고 통일운동에 나서고 있었다.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은 “반전평화 운동의 가능성을 살리고 사회 변화를 이끌려면 중동과 한반도의 관계를 주목해야 한다”며 “통일로 가는 길에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변혁적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조직은 통일에 다가서는 방식에서 차이점을 드러내면서도 한 참석자가 “북쪽이 핵주권을 갖는 게 이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남이든 북이든 핵개발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남도 북도 핵개발은 안된다" 한 목소리

청년학생들의 첫 번째 만남에서 구체적인 연대의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통일운동이 특정 청년학생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서로 확인했을 뿐이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비단 국제주의 관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통일운동 활동가들도 <아리랑> 공연을 하는 북한 청소년의 인권을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았다. 법무부 장관 지휘권 파문에도 토론회에 참석한 강정구 교수(동국대)는 “자유시민권에 국한된 북한의 인권 논의는 미국에 면죄부를 준다. 지금은 북쪽의 경제·사회적 생존권을 인권 차원에서 바라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지금 한반도에 드리운 북핵이라는 먹구름을 제거할 실마리를 찾았고, 풀뿌리 통일운동이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통일포럼에서 청년학생들이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박희진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은 “이번엔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자리를 마련했지만, 앞으로는 청년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논의 구조를 마련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자”고 긴급 제안하기도 했다. 통일이 민족이나 계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결과다. 이날 민통선 해마루촌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통일의 새싹이 돋았다.


평택의 슬픔을 노래한다

평택 미군 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정태춘·박은옥 거리콘서트

(사진/ 윤운식 기자)

‘도두리벌 가로질러 철조망 지나가고/ 성조기가 펄럭이고 나팔소리 울리면/ 나의 사랑, 나의 고향 청처 아니 아플꼬/ 빼앗기고 찢겨지면 상처 아치 아플꼬~.’ 매주 화요일 저녁에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옆의 작은 무대에서 열리는 ‘거리 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로, 미국 민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멜로디에 노랫말을 붙인 <나의 사랑 나의 고향>이다. 그러나 지난 10월18일 저녁 광화문 거리에서 도두리벌 노래는 들리지 않았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가수 정태춘·박은옥씨의 거리 콘서트 ‘평화, 그 먼 길을 가다’의 열두 번째 공연은 <아리랑> 선율이 가냘프게 흐르면서 진행됐다.

지난 8월9일 첫 번째 공연을 시작으로 장장 3개월을 이어온 거리 콘서트는 다음 공연(10월25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한데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은 여전히 긴장돼 있었다. 공연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한 정태춘씨는 기타줄을 튕기면서 음을 조율하다 “마이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연방 되풀이했다. 인도를 객석으로 삼기에 자동차 소리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날도 16인승 승합차 한 대를 갓길에 세워놓고 조금씩 이동시키며 ‘방음벽’의 자리를 찾았다. 길거리 공연에 나서면서 감내하기로 한 일이지만 ‘가수’로서 더 나은 공연 여건을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다.

거리 콘서트라고 해서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나서는 게 아니다. 무대 뒤편에는 판화가 이철수씨가 디자인한 막이 철제 기둥에 설치돼 있고, 무대 양쪽에는 어엿한 조명기구도 있다. 무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음향기기를 다루는 전문 기사가 작업을 하고 야외용 스피커도 마련됐다. 두 사람과 함께하는 10여 명의 공연 스태프가 있고, 무대 저편에서는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www.antigizi.or.kr) 사람들이 거리 선전전을 하며 서명을 받고 있다. 그 모습이 아니라면 밴드가 없는 공연장을 그대로 거리에 재현한 콘서트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애당초 정태춘씨가 거리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쌍수를 들고 환영한 사람은 드물었다. 함께 무대에 서야 하는 부인 박은옥씨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을 위해 뭔가 하려는 것 같은 거리 콘서트라기에 망설였다. 미군기지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고 정태춘씨가 거창한 뜻을 펼치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일체의 공식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는 정씨는 공연이 끝난 뒤 “거리 콘서트로 얼마나 바꿀 수 있겠는가. 다만 평택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에 눈 감을 수 없었을 뿐이다. 어떤 시스템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서였을까. 자동차 소음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가운데 시작된 공연은 1시간20분 남짓 이어지면서도 ‘거리’의 선동적인 분위기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비장한 울분보다는 냉정한 침묵이 200여 명의 관객들 가슴에 파고들었다. 절제된 목소리에 내면의 결단이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의 팬클럽 ‘그늘진 마음의 벗’과 대책위 사람들이 무대 앞에 앉아 콘서트의 중심을 잡아 공연은 일체의 흐트러짐이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취객이 ‘강정구 교수’를 말할 때, 정태춘씨는 마이크를 넘겨주는 ‘여유’를 잊지 않았다. 분노와 열정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때문이리라.

여전히 멀기만 한 평화의 길. 정태춘씨의 표현대로 “철 모르고 만들었던 <떠나가는 배>에 ‘비장한 각오’를 담아내는” 날들이 너무 오래 지속됐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마지막 싸움인 듯한 지점에 다가선 듯하다”고 말하는 정태춘씨의 뒷모습은 떠나려는 사람을 닮아 있었다. “노래조차 떠나고 싶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은 때문이었다. 10월25일 7시30분 같은 장소에서 열릴 마지막 거리 콘서트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가 자리를 함께할 예정이다. 이날 광화문 네거리에 가면 미군에 삶터를 넘겨줘야 하는 평택 사람들을 향한 정태춘·박은옥씨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거대한 울림을 간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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