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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 책, 맛좀 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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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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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빈국으로 참여해 대대적인 관심을 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풍경
출판사들은 이번 행사 계기로 한국 저작 수출의 꿈을 일구고 있어

▣ 프랑크푸르트=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독일과 한국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둘로 갈라졌다. 한 나라에 두 강대국이 무장해제를 한다며 들어선 결과였다. 한 나라는 침략국이었고 한 나라는 식민지 국가였다. 시작은 아주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선을 그을 때 누구도 그 선이 50, 60년을 갈 줄 몰랐다. 제57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은 한국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과 독일은 서로에게서 닮은 점을 찾아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2002년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이 내년 독일에서 열린다는 근친 관계도 괜히 정겹다. 시인 고은은 10월18일 개막식 연설문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아내가 하늘이 참 좋다며 한국의 하늘도 독일에 가져온 게 아닌가 하더라.” 프랑크푸르트에 오니 독일의 하늘도 한국과 비슷하다. ‘대화와 스밈’이라는 이번 도서전의 주제에 맞게 한국과 독일은, 그리고 한국과 세계는 대화하고 스며들어가고 있다.

호의적 기사 쏟아내는 독일 언론


한국관의 김경순 웅진출판사 해외사업 담당 차장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데 교재가 없느냐”는 질문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받았다. 도서전 개막식과 함께 새삼스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분 것은 아니다. 도서전이 열리기 전 올해 유독 한국 작가들의 독일행이 잦았다. 지난 3월 라이프치히 도서전을 시작으로 독일 전역에서 ‘한국 문학 순회 낭독회’(LiteraTOUR)가 개최된 것이다. 이 낭독회에는 한국 작가 62명이 참여했다. 이 낭독회는 도서전 기간을 전후해 프랑크푸르트 전역에서 열리는 낭독회, 토론회, 세미나 등의 행사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신경림, 조정래 등의 거장부터 김영하, 조경란 등의 젊은 작가들까지 40명이 참여한다. 정지작업 격의 행사들은 개막식을 전후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홍보팀의 이유미씨는 “두 달에 하나씩의 스크랩 파일을 갈아끼우던 것을 하루에 하나씩 파일을 채울 정도로 언론의 관심이 크다”고 말한다. 이전의 주빈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의적인 기사들이 매체를 채우고 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퀼만 슈프레케젠 기자는 6월에 있었던 한국 투어 뒤에 한국의 열렬한 팬이 됐다. 그는 한 언론에 한국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난 것을 보고 스스로 나서 그 기사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전의 주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독일 언론의 기사들이 호의적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임을 알리는 기념 공연. (사진/ EPA)

한국 출판사의 호응도 크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해 주빈국으로 선정된 뒤 예년보다도 5배가량 넓어진 자리를 다 채울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결과적으로 채우고도 남았다. 2004년 13개사가 참여했는데 올해는 74개사로 5배 넘게 늘었다. 도서만 전시하는 위탁 업체와 개별적으로 참가(한국관이 아니라 주제관에 부스 설치)한 만화, 그래픽 업체를 제외한 숫자다. 6천여 종, 1만여 부의 책이 출품됐다.

주빈국 행사는 한국 저작을 수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참가 업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우리나라에서 저작권 수입 물량은 수출 물량에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심각한 ‘무역 불평등’이다. 한류가 일면서 2001년부터는 한국의 저작권들이 중국,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로 수출됐지만 유럽, 미국 쪽의 수출은 드물다. 세계 최대의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역시 수출보다는 외국의 뛰어난 작품을 경쟁하고 선점하는 자리였다. 몇 년 사이 수입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국의 과열경쟁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에이전시에 작가가 소속되는 시스템을

에이전시 중 유일하게 부스까지 차린 신원에이전시의 김순응 대표는 “이전에는 작품을 선정해 꼭 팔아야겠다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원에이전시는 올해 인터넷 소설과 드라마 원작 소설 중심으로 수출입 상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 팔 수 있는 문학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말도 함께 했다.

문학동네의 강태형 사장은 “극소수의 몇 작품을 제외한다면 세계의 문학 중 한국 문학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마케팅해서 못 팔 게 없다고 역설한다.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질 좋은 번역과 편집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부스를 한지와 창살 등 한국풍으로 꾸며서 지나가는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웅진출판사는 6개월 전부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행사를 준비했다. 수출 상담을 하는 미팅도 사전에 하루 4~5건 정도 잡았다. 미국에 ‘베어포트’라는 회사를 올 3월 설립하기도 했다. 이것을 미국과 유럽 시장으로 나가는 교두보로 삼고 있다.

지금은 책을 펴낸 출판사가 소개와 수출 업무를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출판사 쪽에서도 외국처럼 에이전시에 유명 작가가 소속되어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홀로 설 정도의 상업적인 가능성이 두드러져야 가능하다. 이미 몇몇 유명 소설가들은 직접 외국에 수출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의 경우는 한국의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IKA)와 뉴욕의 바버라 지스터사가 에이전시로 나서 적극적으로 판권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주빈국 행사는 한국 저작을 수출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도서전 주빈국관에서 관람객들이 '한국의 책 100선'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 연합)

한국은 1998년에 처음 부스를 차렸다. 작가와의 표준계약서에 ‘2차 저작권’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약 4배의 저작권 계약이 맺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찍힌’ 도서를 두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에 돌아간 뒤 기나긴 줄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주빈국 행사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웅진출판사의 김경순 차장은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에 호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도서전은 끝났지만 실질적인 거래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박해받는 작가들이여 오라”

[인터뷰 / 도서전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홀거 엘링]

정치성과 진지함 다시 찾아 기뻐… 북한 참여는 갑작스레 거절당해

홀거 엘링 부위원장에게 인터뷰는 이미 꽉 찬 스케줄에 어쩌다 빈 30분을 채우는 일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프레스센터 내의 문패도 없는 방을 수많은 손이 똑똑 두드렸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도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진동을 멈출 줄 모르는 걸 보니 아주 급한 용무다. 인터뷰 중에 받아서 몇 분간 기다려줄 것을 당부한다. 피곤해 보이는 그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끔씩 떠오른다.

조직위원회 일을 맡기 이전에 편집자였다고 하더라. 그 외에 다른 공무원들도 출판인이 많은 것 같더라. 프랑크푸르트에 원래 그렇게 출판인이 많은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가?

=나도 출판인 출신이고 지금도 출판인이다. 기자 생활도 했다. 현재는 두껍지는 않지만 비싼 논픽션을 내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적인 주제라 일반인들은 지루할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는 도서전과 상관없이 옛날부터 출판사가 많았다. (자료를 확인하며) 현재 베를린에 155개, 뮌헨에 155개, 쾰른에 73개의 출판사가 있는데 프랑크푸르트에는 70개의 출판사가 있다. 다른 도시의 출판사는 최근에 많이 생겨났다.

오르한 파묵은 국가정체성 부인과 이미지 훼손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번에 ‘평화의 상’(Peace Prize·도서전 행사 전 독일서적상협회가 수여하는 상)을 오르한 파묵이 받은 것은 그것과 관련이 있는가.

=그에게 평화의 상을 수여한 것은 무엇보다 그가 문학적 성취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화를 위한 정치활동과 말의 자유를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 2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쿠르드인 3만 명과 아르메니아인 100만 명을 학살했지만 그 누구도 그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그것 때문에 기소됐다. 외면하지 말고 다시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벨상이 그에게 가지 못한 것은 정치적 논쟁과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조직위원장은 “책을 읽는 것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성을 도서전에서 계속 견지하겠다는 태도로 보인다. 이러한 말은 어떤 행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가. 이러한 태도 변화에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

=조직위원회는 펜(PEN)클럽과 긴밀한 협조를 계속하고 있다. PEN클럽은 1998년부터 ‘박해받는 작가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나라에서 박해받아서 독일에 도착한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는 정책이다. 2년 동안 그를 후원한다. 현재 엘살바도르의 오라시오 카스테야노스 모야가 독일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가 이 정책의 세 번째 수혜자다. 그 외에도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아직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주위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1980~90년대의 도서전은 진지했지만 그 이후로는 그 색채를 잃어버렸다. 이것을 다시 찾아서 기쁘다는 반응이다.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도서전에 주빈국으로 북한의 참여도 유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한국을 열세 번 방문했다. 두 번 북한을 방문한 것을 포함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관계자들과 만났을 때는 긍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거절당했다. 그 이유를 아직까지도 모른다. 사실 북한 관계자가 갑자기 와서 “어디에 스탠드를 세울까”라고 묻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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