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술 마시고 그려본 적 있어요?”

343
등록 : 2001-01-16 00:00 수정 :

크게 작게

<비빔툰> <시사SF> <만화VS영화>의 작가들, 만화 뒤의 이야기를 털어놓다

홍승우, 조남준, 정훈이. 엽기성을 바탕에 깐 가족만화 <비빔툰>, 좌파적 이데올로기를 진부함 없이 풀어내는 <시사SF>, 톡톡 튀는 발상과 둥글둥글한 캐릭터로 대학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만화VS영화>의 작가들이다. <한겨레>, <한겨레21>, <씨네21>에 나란히 연재하면서 각각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30대 만화가들. 이들이 생각하는 서로의 만화는 어떤 것일까?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에게 궁금했던 점과 숨겨진 이야기. 신년 구상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만화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처음 만나는데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처음부터 오랜 친구를 만난 듯했다.

아, 면도날 같은 냉소주의!

사진/<비빔툰>의 저자 홍승우씨.
조남준 : 혹시 저 기억 안 나세요?


홍승우 : 예? 언제요?

조남준 : 신한만화전에서 만났잖아요. 93년에.

홍승우 : 전혀 몰랐어요. 그때 그분이셨구나.

조남준 : 그때 제1회 신한만화상 수상하고 바로 <내일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렸어요. 만화공부를 처음 시작한 것은 12년 전이고요. 지금까지 <시사SF>는 한 200회 그렸어요.

홍승우 : 제가 만화를 시작한 건 대학교 때 동아리 ‘네모라미’부터였던 것 같아요. 93년 신한만화상 받고 다음해 <빅점프>에 연재했어요. <한겨레>에 연재한 지는 2년 됐어요.

정훈이 : 저는 95년에 영챔프공모전에 당선되고, 바로 한달 만에 <씨네21>에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씨네21>이 창간한 지 얼마 안 될 때였어요.

조남준 : 장편 그려본 적 없죠.

정훈이, 홍승우: 예.

조남준 : 공통점이네요. 셋 다.

홍승우 : 어떤 독자들은 <비빔툰>을 장편으로 받아들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어제 작품하고 오늘 작품이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예전 스토리를 떠나서 다른 걸 해보려고 하면, 예전에는 다운이가 이렇게 행동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행동하느냐, 그러세요. 그러면 작가는 누구랑 대화할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고민하는 거예요. 특히 욕먹을 때는 혼자 배를 꽉 쥐어짜고 화장실에서 고민해요. 하도 고민해서 요새 위염 때문에 큰일났어요.

정훈이 : 저도 홈페이지(www.junghoony.com) 만들고 나서 인터넷에서 의견을 많이 받아요. 칭찬받고 그러면 기분좋지만 욕 한번 들으면 끙끙 앓아요. 논리적으로 문제점을 명확하게 짚어주는 분은 좋은데, 극단의 냉소주의와 함께 별 논리제기 없이 “그게 만화냐?” 하면 혼자 앓는 거죠. 물론 게시판에는 공손하게 답변하지만 속으로는…. (웃음)

조남준 : 저는 시사만화만 그런 메일 받는 줄 알았어요. “그래 너 잘났다”, “니가 세상에서 그렇게 잘났냐”….

홍승우 : 시사만화는 더 그럴 거예요. 생활만화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예전에 “애들이 설사 할 경우에는 지사제를 먹여야 하오”라고 허준을 등장시켜서 그렸는데 독자 이야기를 들으니까 지사제 먹이면 큰일난데요. 그런 메일 받으면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죠. 그래서 다음에 사과하는 만화를 그렸어요.

조남준 : 그건 만화에 대한 관심이 깊은 거네요.

홍승우 : 예. 그런데 아까 이야기한 대로 냉소주의 있죠. 그런 거 한번 들으면 면도칼로 쓱 긋고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그걸 얼마나 작가가 견뎌내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칭찬 한마디 들으면 하루종일 무슨 나쁜 일이 있어도 기분좋아요.

‘펑크’의 원인은 과로가 아니었다?

사진/<정훈이만화>의 저자 정훈이.
조남준 : <한겨레>는 마감에 많이 쫄 것 같아요. 일간지니까.

홍승우 : 그런데 마감 독촉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있다면 정말 제가 늦었을 경우겠죠.

조남준 : 아무래도 제가 마감 시간 제일 안 지키는 것 같아요.

정훈이 : 저는 전에 한번 펑크가 났어요. 그날 술 먹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그런 경험 있으세요? 졸면서 그림 그리는 거요.

조남준 : 있어요. 학교다닐 때처럼 꿈 속에서 원고 다 만들어놓고 아침에 일어나서 여기저기 찾으면 없어요. (웃음)

정훈이 : 글쎄 삐삐는 계속 오지, 졸립지. 그래서 전화해가지고 “원고 지금 갑니다, 30분만, 30분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 그리고 저장버튼 눌렀는데 컴퓨터가 뻗어버린 거예요. 컴퓨터 다시 부팅시키는 동안 잠깐 눈을 붙였는데 일어나보니까 아침이었어요. 호출기에 메시지 열몇개가 와 있었는데 메시지 남기는 사람 직급이 점점 높아져요. 나중엔 편집장이 걱정이 돼서 창원에 있는 제 고향집까지 연락을 했더라구요.

조남준 : 혹시 그 다음주 만화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원고 들고 덜덜 떠는 만화 아니에요? 마감 넘기고 만화가가 전전긍긍하는….

정훈이 : 맞아요. (웃음) 그래서 겁이 나니까 오후에 편집장한테 조용히 가서 “아파갖고 쓰러졌어요” 하고 둘러댔더니 “정훈씨 괜찮아? 괜찮아?” 하더라구요. 그때 제 담당기자가 오은하 기자였는데, 오 기자가 그주에 과로로 쓰러졌어요.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딴 데도 아니고 화장실 앞에서. 그래서 “정훈이와 오은하 기자, 과로로 쓰러지다”라고 한겨레노보에 났어요.

홍승우 : 사실은 숙취인데.

정훈이 : 오보였죠. (웃음)

조남준 : 마감 끝나고 헛구역질하진 않아요?

홍승우 : 저 헛구역질해요. 그리고 일찍 보내면 걱정되고 불안한데, 마감이 코앞에 닥쳐서 보내면 다 잊어먹어요.

정훈이 : 제가 원고 보낸 다음에 고민을 안 하는 원인을 밝혀주셨네요. 저는 보내고 나면 다시 고칠 시간이 없거든요. “나는 절대 수정을 안 한다.” 생각했는데, 이유가 그거였구나. (웃음)

조남준 : 자기검열은 없으세요? 매체에서 간섭한다든가… 예를 들면 저는 씨네에서 영화 패러디를 하기 때문에 <한겨레21>에서는 그걸 피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급적이면 영화이야기는 피하려고 하죠.

정훈이: 저하고 반대 입장이네요. 저는 한겨레에 속한 잡지라서 그런지 이데올로기 적인 것, 시사적인 것을 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스스로 갖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데 가면 제가 시사만화가인 줄 알아요.

세 만화에서 여자가 잘 안나오는 이유

사진/<시사SF>의 저자 조남준씨.
조남준 : 저 같은 경우는 제가 그리는 게 시대에 뒤떨어지진 않았나 수시로 생각해요. 그런게 자기검열이 될 수는 있겠죠. 대중은 많이 바뀌었는데 그걸 못 따라가는 건 아닌가 하고요. <한겨레>도 그런 것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한겨레>라는 이름만 가지고도 빛이 나는 시기가 있었지만, 세상은 그보다 더 빨리 변하고 있으니까요.

홍승우 : 신문사에서 검열하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독자들이 더 보수적인 것 같아요. 저는 신문이라서 그런지 더 그래요. 애기 고추라도 만화에 나오면 당장 이메일이 와요. 한번은 “아기 생긴 다음에 부부관계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을 그렸는데 독자가 “초등학생 자녀가 매일아침 신문을 가져오면서 <비빔툰>을 본다. 그런데 이 만화가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이메일이 왔어요.

정훈이 : 저는 독자층이 성인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것으로는 별로 항의 안 와요. 2등신 캐릭터가 벗어봤자 에로틱하겠어요? (웃음)

홍승우 : 그러고보니 옛날에 조남준씨가 그린 만화 중에서 ‘검열’이라는 만화가 있었잖아요. 만화가가 남자 성기, 여자 성기 그리려고 하는데 손이 떨리는 거요. 그 만화 마지막이 절묘했어요. 마지막에 만화가의 머리에 철창이 씌워져 있잖아요. 조남준씨 만화는 마지막을 봐야 아 이거구나 하는 만화예요.

조남준 : 음… 그 만화의 만화가가 그런 것처럼 저한테도 그런 억압이 좀 있어요. 특히 어려서부터 여자 가슴을 불룩하게 그리면 “야한 만화 그린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주로 남자를 그렸어요. 아직도 여자를 잘 못 그려요. 그것도 공통점이네요. 세 만화에서 다 여자가 얼마 안 나오잖아요.

홍승우 : 예. 저도 여자 그리기가 힘들었어요.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물론이고 머리카락 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전혀 감이 안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생활미는 저로서는 정말 성공한 캐릭터예요.

조남준 : <비빔툰> 보면 애가 있는 저는 “내 얘기다” 싶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집안일을 도와주세요?

홍승우 :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집안일을 도와줬다고는 말 못해요. 처음에는 방문 잠그고 제 일만 했죠. 그런데 생활만화를 그리다보니까 양심에 찔리더라구요. “내가 왜 이런 만화를 그리고 있나” 싶어서요. 그래서 지금은 같이 해요. 조남준씨는요?

조남준 : <비빔툰>이 생활을 바꿨군요. 저는 아내하고 출퇴근 시간이 완전히 다르니까 밥을 각자 챙겨먹어요. 아내가 밑반찬 다 만들어놓긴 하지만 제 주식은 라면이거든요.

정훈이 : 저도 5년 동안 라면 먹고 살다가 최근에 끊었어요. 그런데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때가 있어요. 마감 마치고 냉동 갈비랑 맥주 사와서 혼자 지지고 볶고 만든 다음에 한입 먹는데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신년목표, ‘대갈치기’ 안한다

홍승우 : 결혼해도 그런 일 많은데. (웃음) 조남준씨 만화는 마지막 한컷이 중요한 만화인데 정훈이씨 만화는 한컷 한컷 과정이 재미있는 만화 같아요. 특히 대사가 절묘하고요. 그런데 좀더 노력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배경도 신경써주셨으면 하고….(웃음)

정훈이 : 찔리는데요.

조남준 : 제 얘기를 듣는 거 같네요. 그런 걸 대갈치기(인물로 칸을 메우는 것)라고 하죠. (웃음) 올해는 무슨 일들을 할 생각인가요?

정훈이 : 저는 이제 웹 애니메이션쪽을 해보고 싶어서요. 그동안 한 가지를 붙들고 있었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 회사를 하나 차렸어요. 도나스 미디어라고 1월2일에 시작했어요. 그거 해야죠.

홍승우 : 개인적으로는 어떤 만화가로 자리잡고 싶으세요? 저는 <비빔툰>을 그리지만요, <비빔툰>이 저의 전부는 아니에요. 완전 명랑만화도 해보고 싶고, 컬트만화도 해보고 싶고. <한겨레>라는 매체를 만나면서 제자리를 가족만화로 잡기는 했지만요.

정훈이 : 저는 <씨네21>에 연재하는 장르가 적성에 맞아요. 앞으로도 그냥 남기남 같은 못난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지금 준비하는 작업으로는 <스타트렉>에 대한 오마주로 직장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배경은 스타트렉인데 선장이 부장님이고, 옷은 딱 달라붙는 우주복을 입히고, 인물들은 평범한 사람들로 하고요.

홍승우 : 저는 미겔란소의 <섬> 같은 만화를 한권 그리는 것이에요. 만화책이 만화코너에 꽂혀 있을 수도 있지만 예술 코너에 꽂혀 있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가 됐든지 그런 작업을 하긴 해야겠죠. ‘네모라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리는 데 석달도 걸리고 넉달도 걸리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조남준씨 신년목표는 뭐예요?

조남준 : 일단 이제까지 연재된 걸 모아서 책을 내야죠. 무엇보다도 대갈치기를 하지 말자. 배경에 충실하자. 기본에 충실하자. 그게 제 신년목표예요. (웃음)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