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페널티킥 놓쳐 카메룬의 월드컵 본선 진출 무산시킨 피에르 워메에게 온 신변 위협…목숨 건 팬들의 광기에 베컴·바조 같은 세계 최고의 오른발도 실축 공포에 시달려
“팬들은 나를 죽일 수 있다.”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 피에르 워메가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과장이 아니다. 실제 그는 신변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워메의 죄는 페널티킥 실축. 그의 실축으로 카메룬은 2006 독일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했다. 카메룬은 홈에서 이집트와 마지막 승부를 벌였다. 이기면 본선 진출, 비기면 탈락. 추가 시간에 운명의 장난이 시작됐다. 95분, 1대1 상황에서 카메룬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워메가 키커로 나섰지만, 실축으로 끝났다. 같은 조의 코트디부아르는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승점 1점 차로 카메룬을 따돌렸다. 그리하여 코트디부아르는 본선행, 카메룬은 예선 탈락. 불행히도 워메가 실축한 곳은 카메룬이었다. 성난 관중의 난동은 당연지사. 선수들은 출입구를 가로막은 팬들이 무서워 2시간 동안 라커룸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워메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이탈리아로 ‘도망갔다’(그는 이탈리아 인터밀란 소속이다). 하지만 카메룬에 있는 그의 집과 차는 공격당했고, 가족과 친지는 불안에 떨었다.
에스코바르의 죽음과 마피아 카메룬 대표팀 동료, 에토(FC 바르셀로나)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에토는 스페인에서 “내가 페널티킥을 차러 갔는데 워메가 다가와서 자기가 골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워메는 즉각 반박했다. “나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시 어느 누구도 페널티킥을 차기를 원하지 않았다. 에토도,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덧붙였다. “나는 실축하게 된다면 치명적일 것임을 알았다. …(실축한 뒤에) 관중들은 나를 죽이려 했고,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당시처럼 죽음을 두려워해본 적이 없다.” 워메는 운명의 장난에 걸려들었지만, 행운의 여신의 미소를 맛본 적도 있다. 그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결승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카메룬의 우승에 주역이 됐다. 그의 용기는 그 달콤한 추억 때문이었을까? 히딩크 감독은 “용기 있는 자만이 페널티킥 득점이란 미인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2 월드컵 미국 전에서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에 나온 말이었다. 멋진 말이다. 다만, 페널티킥을 실축하면 죽음이라는 페널티(벌·Penalty)를 받을 수도 있다. 영웅이 역적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팬들은 그를 죽였다.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 죄명은 자책골. 그는 1994년 월드컵 조별 예선 미국전에서 자책골을 넣었다. 콜롬비아는 1대2로 지면서 2패로 예선 탈락했다. 에스코바르는 열흘 뒤, 클럽에서 나오다가 12발의 총알을 맞고 숨졌다. 축구팬을 자처하는 살해범들은 에스코바르에게 총을 쏘면서 “골” “골”을 외쳤다고 한다. 마침 에스코바르의 후문이 들려왔다. 지난 10월7일, 에스코바르의 살해범이 11년 만에 석방됐다. 살해범은 4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1년만 살고 나온 것이다. 에스코바르를 죽인 배후가 축구 마피아라는 의심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하는 조처였다. 콜롬비아의 탈락으로 축구 도박에서 거액의 판돈을 잃은 마피아가 에스코바르를 살해했다는 설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콜롬비아(혹은 남미)에서는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축구한다. 지난 3년 동안 콜롬비아에서만 2명의 프로 선수가 살해당했다. 이처럼 축구의 역사는 희생양의 역사였다. 우리 팀의 승리를 믿는 팬들은 우리 팀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희생양을 찾는다. 콜롬비아, 카메룬의 팬들도 탈락의 꿈조차 꾸지 않았다. 콜롬비아는 펠레가 월드컵 우승후보 1순위로 꼽을 만큼 강팀이었고, 카메룬은 월드컵 8강 신화를 이룬 불굴의 사자군단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강팀 선수일수록 몸조심해야 한다.
한국팀도 페널티킥 실축으로 분루를 삼킨 적이 있다. 1970년 월드컵 예선, 한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출전권을 다투었다. 69년 10월 오스트레일리아전에서 임국찬 선수가 페널티킥에 실패해 본선 티켓을 놓쳤다. 0대1 패배. 만약 한국이 승리했다면,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재경기를 통해 본선행 티켓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한번의 실수는 평생의 업적을 망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는 단 한번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판타지 스타에서 비운의 스타로 바뀌었다. 바조는 드리블, 슛팅, 패스의 삼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판타지 스타였다. 93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로 뽑히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이탈리아는 94년 월드컵 결승전에 올랐다. 하지만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바조는 마지막 킥을 실축했다. 우승은 브라질의 것. 영웅은 졸지에 역적으로 추락했다. 실패의 여파 때문이었을까? 바조는 마지막 월드컵 무대에 설 기회인 2002 월드컵 출전을 간절히 원했지만, 감독은 끝끝내 그를 외면했다.
한국도 69년 임국찬의 악몽
잉글랜드의 페널티킥을 전담해온 베컴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똥볼’을 날렸다. 유로 2004 8강 포르투갈전 페널티킥 찬스에서 하늘 높이 올라가는 홈런을 차 4강 진출 기회를 날려버렸다. 베컴에게 유로 2004 본선 조별 예선 프랑스전, 2002 월드컵 예선 터키전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피구도 10월 초 리히텐슈타인과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베컴과 피구는 최근 “국가대표 경기에서 더 이상 페널티킥을 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오른발들도 페널티킥 망령에 시달린다. 빌 생클리 리버풀 전 감독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태도에 실망을 감출 수 없다. 축구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축구를 생사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팬들에 의해, 축구 선수들의 생사가 위협당하고 있다. 축구의 역사는 ‘광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추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코트디부아르를 독일월드컵에서 볼 수 있게 됐지만, 카메룬의 불굴의 사자들을 볼 수 없게 됐다. 디디에르 드로그바를 보는 대신에 사무엘 에토를 볼 수 없다.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다.
에스코바르의 죽음과 마피아 카메룬 대표팀 동료, 에토(FC 바르셀로나)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에토는 스페인에서 “내가 페널티킥을 차러 갔는데 워메가 다가와서 자기가 골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워메는 즉각 반박했다. “나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시 어느 누구도 페널티킥을 차기를 원하지 않았다. 에토도,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덧붙였다. “나는 실축하게 된다면 치명적일 것임을 알았다. …(실축한 뒤에) 관중들은 나를 죽이려 했고,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당시처럼 죽음을 두려워해본 적이 없다.” 워메는 운명의 장난에 걸려들었지만, 행운의 여신의 미소를 맛본 적도 있다. 그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결승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카메룬의 우승에 주역이 됐다. 그의 용기는 그 달콤한 추억 때문이었을까? 히딩크 감독은 “용기 있는 자만이 페널티킥 득점이란 미인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2 월드컵 미국 전에서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에 나온 말이었다. 멋진 말이다. 다만, 페널티킥을 실축하면 죽음이라는 페널티(벌·Penalty)를 받을 수도 있다. 영웅이 역적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2002년 피구의 눈물은 축구팬을 울렸따. 2005년 송의 눈물이 아프리카를 적셨다. 월드컵 예선 탈락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카메룬의 로베르고 송. (사진/ EPA)

마지막 페널티킥을 실축한 워메는 카메룬 축구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소속 클럽에서 뛰고 있는 워메(오른쪽). (사진/ EP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