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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쉬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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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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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유독 그것만 보면 꼴리는 거, 그래서 집착하게 되는 게 페티시즘이다. 보통 “나는 무엇에 ‘페티시’가 있다”고 얘기한다. 나는 남자의 갈라진 턱에 페티시가 있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아무리 나이 들고 악역을 맡아도 시선을 못 뗀다. 내 파트너의 페티시는 예쁘고 통통한 여자아이인 줄 알았다. 그런 애들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으니까. 그가 반사회적 성향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단정하게 정리된 손과 손톱을 보면 아찔하다고 고백했다. 내가 연노랑 색깔로 손톱 끝만 바르는 프렌지를 했을 때 그가 거의 넋을 놓고 보던 기억이 난다. 사람마다 페티시는 다르다. 상대의 페티시를 내가 충족 못해도 할 수 없다. 교양 있고 상식 있는 성인이라면 현실과 상상을 구별할 줄 아니까. 그럼에도 그가 수박 같은 가슴이나 버들가지 같은 허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본 오사카부립대 종합과학부 교수 모리오카 마사히로 아저씨가 쓴 <남자는 원래 그래?>(리좀 펴냄, 원제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나’의 페티시즘으로 남성 불감증을 고찰해 눈길을 끈다. 사정=오르가슴이 아니고, 사정 뒤 추락하는 듯한 공허감에 빠지며, 그래서 ‘느끼는’ 여자들을 시샘하는데, 제복·미니스커트·미소녀 페티시즘은 남성인 자기 몸을 부정하는 결과이기도 하단다. 또 ‘남자는 몸에 꽉 차 있는 것을 어떻게든 빼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사정 결정론’을 배제하는 그에 따르면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남자는 원래부터 이렇다고 치고, 남자들끼리 멋대로 하자”는 말맞춤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딱한 남자는 ‘느끼지 못하는’ 남자가 아니다. 자기가 뭘 느끼는지보다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쾌락을 지배욕과 혼동해서다. 원 나잇 스탠드 뒤 자기 검증을 위해 조만간 한번 더 관계를 맺으려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는 술에 너무 취해서” “정신이 없어서” 등의 묻지도 않은 이유를 대고, 혹시나 다시 하게 되면 “지난번과는 다르지?” “좋았어?” 집요하게 캐묻는다. 다시 만날 일이 없어도 자기가 ‘못한 남자’로 기억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이런 남자는 쉬운 남자이기도 하다.


스스로 잘난 아저씨들일수록 이런 부류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약간의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는 척한 표정)을 곁들여 노래방에서 “오빠, 날 좀 바라봐∼” 하면서 치마를 무릎 위로 살짝 들춰주고 한두번 귀에 바짝 가사를 날려주면 효과 만빵이다(치마는 절대 허벅지까지 노골적으로 올려선 안 된다. 미니스커트와 테니스 웨어의 차이는 전자는 속이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만 주고, 다른 하나는 대놓고 속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점이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욕망을 너무 쉽게, 뻔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번은 어떤 아저씨를 순전히 놀려먹고자 이렇게 대했는데, “넌 내 여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멘트를 듣고 깊이 반성한 일도 있다. 자기 바지 앞춤을 열어놓고 남을 훈계하는, 그런 딱한 분을 놀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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