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는 내 운명>과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낙차’의 에너지를 길어올린다…자신을 ‘투기’하며 평범함을 확장시켜온 <해피엔드>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여로
▣ 강유정/영화평론가
그에 대한 첫 응시의 기억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떤 과자 광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불완전한 기억이긴 하지만 단언컨대 그는 당시 브라운관에 클로즈업되기에는 평범하다 못해 촌스러운 모델이었다. 선명한 쌍꺼풀에 오똑한 코, 시원한 입술을 가진 여자들만의 독점적 사유지였던 브라운관의 세계에서 그의 등장은 난데없음에 가까웠다. 그 난데없음의 주인공, 그가 바로 전도연이다.
<외출>의 손예진이 못했던 전폭적 투신
고(CF) 모델에서 시작해 점점 드라마와 영화 전 영역에 걸쳐 범주를 확장해온 배우다. 그리고 이제 그는 탤런트가 아니라 영화배우로 먼저 호명된다. 아홉편이라는 만만치 않은 영화적 경력으로 호소하는 배우 전도연,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탁월한 매력을 지닌 배우로 격상된 전도연. 이제 전도연의 이름 앞에 붙은 ‘배우’라는 지칭은 그의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먼 옛날 광고 속의 그보다 현재의 전도연은 훨씬 더 아름다워진 것일까? 도리도리, 대답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그는 빼어나게 수려하다기보다 수수하며 눈이 시리게 유혹적이라기보다 평범하다. 고백하자면 그의 매력은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없는 불가해한 것이라는 데서 더 증폭된다. 이제 막 아홉 번째 장편영화 <너는 내 운명>을 스크린에 건 중견 배우, 전도연. 과연 전도연이 지닌 배우로서의 생명력과 매력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전도연은 몇 안 되는 훌륭한 배우 중 하나다. 즉, 그는 배우의 포즈를 잡고 배우 흉내를 내는 가짜 연기자가 아니라 연기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투기하는 진짜 배우다. 이를테면, 영화 <해피엔드>에서 보여준 전도연의 모습은 가히 전폭적인 투신에 가깝다. 노출의 수위가 아니라 윤리적 지평의 수준에서 전도연은 기대와 예측을 모두 초월한다. 전도연이 연기한 최보라는 일부일처제의 근엄함과 경계를 대담하게 일탈하는, 상징으로서의 여성형이었다. 무능한 만큼 위축된 남편과 달리 생생하게 전경화된 아내 최보라라는 캐릭터. 그것은 오로지 최보라가 되기 위해 육체적 외피를 헌사한 배우 전도연을 통해 개화할 수 있었다. 만일 전도연이 격렬한 정사 장면에서 망설였다면 그리고 외간 남자를 만나기 위해 아이의 우유에 수면제를 타는 갈등의 묘사에 조금이라도 서툴렀다면 영화 <해피엔드>는 지금의 질감과 완전히 다른 영화로 기록됐을 것이다.
<해피엔드>의 예시를 통해 말하고 싶은 배우 전도연의 장점은 바로 배역을 위해 자신을 기회비용으로 내세우는 과단성이다. 이는 영화 <외출>에서 보여준 손예진의 자세와 비교할 때 더 적실해진다. 물론 <외출>에서 손예진은 섬세한 심리묘사에서 기대 이상의 면모를 보여준다. 문제는 필연적으로 거쳐갈 수밖에 없었던 정사 장면에서 애매한 노출 수위를 선택함으로써 그 장면의 의미를 노출 수위 자체로 축소시키고 말았다는 데 있다. 손예진은 한겹의 옷을 지켜냄으로써 오로지 여배우의 노출 정도에만 관심을 집중케 하는 희한한 부작용을 유발하고 만다. 정사신의 의미는 날아가고 오로지 남은 한겹에만 시선이 축적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전도연은 영화의 맥락에서 노출의 메타포와 지향점을 보여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비단 노출에 국한되는 문제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의 풍금>에서 전도연은 17살의 ‘윤홍연’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지닌 세련된 외장을 전적으로 희생한다. 짧은 단발머리, 검은 얼굴 속에 전도연은 자신이 지닌 촌스러움과 순진함만을 한껏 개방한다. 이는 1인2역을 통해 그가 가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확신으로 입증케 해준 <인어공주>에서도 발견된다. 여기서 전도연은 그 자신이 아닌 어머니 역을 맡은 고두심에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를 지우는 데 성공한다.
전략적 선택, 대통령의 딸이 되다
눈에 띄지 않는 나약한 로맨티스트 수현(<접속>), 누아르풍의 냉정하고 폭력적인 수진(<피도 눈물도 없이>), 삼십 가까이 지켜온 정절을 한순간 무너뜨린 숙부인(<스캔들>), 시골 다방, 섬 사창가를 전전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바이러스(HIV) 감염인 은하(<너는 내 운명>)에 이르기까지 전도연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에 데뷔 시절 치명적 결함으로 비쳐졌던 평범함은 수많은 가능성을 매개할 필연적 조건으로 전도된다. 전도연은 어떤 배역에도 기대만큼의 반응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이제, 전도연의 출연 여부가 작품 수준에 대한 선택 기준으로 인지될 정도다.
그렇다면 결국 전도연은 스크린 속 배역만을 염두에 둔 채 오로지 순정을 불태우는 맹목적인 여배우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도연은 의지적인 만큼 전략적인 엔터테이너다. 최근 새롭게 시작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맡은 윤재희 역은 전도연의 전략적 면모를 잘 보여준다. 드라마 속에서 윤재희는 대통령의 딸이자 외교관이다. 가장 최근에 연기했던 드라마 배역이 <별을 쏘다>의 가난하지만 전투적인 연예인 매니저, ‘소라’였음을 기억할 때 선택은 더 이채롭게 받아들여진다. 눈치챘다시피 <프라하의 연인>의 윤재희는 통속적이며 상투적인 캐릭터 그 자체다.
통속적·상투적인 드라마 시장에서 전도연의 역할은 전도연이 지닌 매력의 근간과도 상통한다. 전도연의 매력은 통속적인 것과 희유한 예술성 사이의 편차에서 발생하는 조화로운 불협화음에서 비롯된다. 전도연은 완전히 영화에만 귀의하지도, 전적으로 드라마에만 의존하지도 않는다. 전도연은 상업성과 예술성, 상투적 진부함과 참신함 그 경계에서 발생하는 낙차에서 에너지를 발견한다. 아마도 전도연은 브라운관 속 탤런트의 이미지가 유포될 즈음이면 다른 영화를 통해 배우로 돌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의 매력,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간섭하고 제어하는 전략적 입지와 투신, 거기에서 비롯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고(CF) 모델에서 시작해 점점 드라마와 영화 전 영역에 걸쳐 범주를 확장해온 배우다. 그리고 이제 그는 탤런트가 아니라 영화배우로 먼저 호명된다. 아홉편이라는 만만치 않은 영화적 경력으로 호소하는 배우 전도연,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탁월한 매력을 지닌 배우로 격상된 전도연. 이제 전도연의 이름 앞에 붙은 ‘배우’라는 지칭은 그의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먼 옛날 광고 속의 그보다 현재의 전도연은 훨씬 더 아름다워진 것일까? 도리도리, 대답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그는 빼어나게 수려하다기보다 수수하며 눈이 시리게 유혹적이라기보다 평범하다. 고백하자면 그의 매력은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 없는 불가해한 것이라는 데서 더 증폭된다. 이제 막 아홉 번째 장편영화 <너는 내 운명>을 스크린에 건 중견 배우, 전도연. 과연 전도연이 지닌 배우로서의 생명력과 매력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선, 전도연은 몇 안 되는 훌륭한 배우 중 하나다. 즉, 그는 배우의 포즈를 잡고 배우 흉내를 내는 가짜 연기자가 아니라 연기하는 대상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투기하는 진짜 배우다. 이를테면, 영화 <해피엔드>에서 보여준 전도연의 모습은 가히 전폭적인 투신에 가깝다. 노출의 수위가 아니라 윤리적 지평의 수준에서 전도연은 기대와 예측을 모두 초월한다. 전도연이 연기한 최보라는 일부일처제의 근엄함과 경계를 대담하게 일탈하는, 상징으로서의 여성형이었다. 무능한 만큼 위축된 남편과 달리 생생하게 전경화된 아내 최보라라는 캐릭터. 그것은 오로지 최보라가 되기 위해 육체적 외피를 헌사한 배우 전도연을 통해 개화할 수 있었다. 만일 전도연이 격렬한 정사 장면에서 망설였다면 그리고 외간 남자를 만나기 위해 아이의 우유에 수면제를 타는 갈등의 묘사에 조금이라도 서툴렀다면 영화 <해피엔드>는 지금의 질감과 완전히 다른 영화로 기록됐을 것이다.

배우 전도연은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장르적 줄타기와 작품마다의 다른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배우경력을 쌓아왔다. <프라하의 연인>(왼쪽), <너는 내 운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