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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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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집적도 자랑하는 디지털 저장장치… 홀로그램 디스크·멤스 그리고 종이의 운명

디지털시대에서 빠르고 값싼 저장장치는 모든 기기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PDA, 전화기, 자동차, 카메라, 심지어 에어컨에서도 기억장치의 중요성은 증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디지털카메라에도 64메가바이트의 메모리가 장착되고 있다.

0과 1로만 기록되는 디지털 저장장치는 약 50년 전 IBM연구소에서 처음 개발하였다. 디지털 저장장치 초기에는 철심에 코일을 꼬아서 만든 메모리를 사용했다. 그 크기는 지금의 대형냉장고 정도였지만 그 용량은 대략 수십 킬로바이트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500원짜리 동전 정도 크기의 착탈식 1기가(Giga)바이트 단위의 휴대용 디스크가 소개되었다. 1기가바이트는 대략 브리태니카 전집 전체 용량 정도이다. 어쨌든 50년 전에 비하면 그 집적도는 수십만배나 증가한 셈이며, 바이트당 가격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디지털 저장장치의 가격대비 집적도는 해마다 대략 80∼100% 정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일년만 잘 참으면 같은 값에 2배 용량의 디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가격하락의 원인은 대량생산,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 높은 제조 성공률(yield) 등이다.

메모리에 대한 수요자의 끝없는 욕구


‘컴퓨터 디스크는 아무리 더 증설해도 항상 약간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욕심에 이런저런 프로그램이나 파일(특히 동영상, 음악파일)을 깔면 금방 디스크는 빼곡하게 된다. 그런데 이전의 잡동사니들을 지우자니 뭔가 불안하다. 특히 용감하게 싹싹 지웠다가 PC가 완전히 동작불능의 상태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 들어 멀티미디어가 보편화됨에 따라서 PC에 20기가 정도의 디스크를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메모리에 대한 수요자들의 욕구는 끝이 없다. 그래서 부족한 저장장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기법을 개발했다.

먼저 프로그램이나 파일을 압축해서 저장하는 오래된 방식이 있다. 이 방법은 추가 비용이 들어가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쓸 만한 압축프로그램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단점은 작업 때마다 파일을 감고 풀고 하는 일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한때는 유행했지만 지금은 디스크 값이 상당히 떨어져 별 인기없는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디스크 확장이 쉽지 않은 노트북이나 PDA류의 휴대용 장비에서는 잘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음은 저장장치를 피라미드화하는 것이다. 가장 빈번하게 필요한 자료는 빠른 메모리에 저장하고, 그 정도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대용량, 저속의 장치에 넣어두는 기법이다. 예를 들자면 지갑, 전철표처럼 자주 빠르게 꺼내야 하는 것들은 주머니에 넣고, 그 다음으로 필요한 서류 등은 가방, 그리고 그보다 덜 시급한 자료뭉치는 자동차 뒤 트렁크에, 철 지난 자료는 집안 창고에 묶어 보관하는 방법과 같은 원리이다. 컴퓨터에서는 중요도에 따라서 캐시, 주기억장치, 디스크, CD-ROM, 자기테이프 순으로 저장해두고 있다.

여기까지는 디스크 공간을 늘려 쓰기 위한 전통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지금의 하드디스크 기술로 용량을 확장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자료를 읽기 위해서는 디스크의 회전속도를 올려야 하는데 회전속도가 올라가면 아무래도 에러가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적절한 오류수정 코드를 넣어 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디스크의 실전송률은 떨어진다. 따라서 지금의 기술에서 빠르게 읽는 것과 한번에 많이 읽어내는 것은 서로 배반적이다. 그리고 집에서 작업을 하다가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하려면 아주 복잡한 일을 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작업중인 자료를 디스켓에 몽땅 담아서 가든지, 아니면 개인용 노트북에 넣고 가야만 했다. 아니면 하드디스크를 떼어내서 들고 가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고, 그것이 옮겨간 PC의 다른 보조장치와 문제없이 돌아간다는 보장도 전혀 없어 별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최근에는 기억장치 공간 네트워크(SAN:Storage Area Network)와 네트워크 연결 기억장치(NAS:Network Attached Storage)라는 기법이 나오고 있다. 이 기법은 각각의 기억장치 대신 커다란 공동의 기억장치를 빠른 네트워크로 공유하자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각자 집에서 개인 보일러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강력한 대용량보일러 1대를 구입하여 공동난방을 하는 것이 더 싸고 좋다는 것이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아마 지금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디스크 비용은 20% 내외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실수로 디스크를 통째 날려먹거나, 바이러스, 실수로 지워버린 파일복구 등의 문제가 해결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른 곳에서도 사무실이나 집에서와 같은 환경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CD와 같이 표면에 자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장치의 내부에까지도 홀로그램을 이용해서 기록할 수 있는 볼륨 홀로그래픽 디스크가 개발되고 있다. 홀로그램의 특성을 이용하면 그 내부에까지 층층이 자료를 중첩하여 기록할 수 있고, 초당 1.0기가비트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자료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비싸긴 하지만 이것이 상용화된다면 디지털 저장장치의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맞이할 것이다. 이보다는 더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자기-광학(Magneto-Optic)을 이용한 저장장치 기술이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멤스(MEMS)라고 불리는 극소전자기계장치(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를 이용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기억장치도 있다. 이 장치에서 정보는 가로세로 1cm의 판 위에 아주 미세한 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아주 작은 탐침으로 읽혀진다. 이 탐침의 이동은 집적회로 수준의 아주 작은 톱니바퀴로 조작된다. 따라서 디스크와 같이 회전시킬 장치가 필요가 없어 발열이 거의 없으며 가볍고, 베어링의 회전 등으로 인한 기계적인 오류발생이 없다. 특히 한번 기록한 뒤에 계속 사용해야 하는 비휘발성 자료기록에는 안성맞춤이다. 대략 평방센티당 약 4기가바이트 정도가 기록될 수 있으며, 읽어내는 속도는 기존의 하드디스크에 비해서 약 10배 정도라고 한다. 특히 전력소모가 작아서 일회용 메모리나 초소형 전자장비에 필수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그래도 종이의 심리적 안정감은 지속

그렇다면 이제 종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디지털시대라지만 종이소비는 해마다 15% 정도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직 모든 자료의 94%는 종이로 기록, 보관된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6억개의 종이문서가 만들어진다. 종이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직업은 변호사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전자우편보다는 팩스 등에 더 많은 신뢰를 두고 있다. 그리고 사무자동화,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하여 엄청난 양의 광고지가 이전에 비하여 더 많이 양산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디지털시대라고 해도 종이의 위력과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여전할 것이다. 한때 맹렬한 위세를 떨칠 것 같은 e-book이 시들해진 것은 인간이 종이매체에 대하여 가지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과소 평가했기 때문이다. 전자사무실과 같은 전산화가 강화될수록 종이소비는 오히려 약 1.2배씩 더 증가한다. 왜냐고?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문서를 마구 출력하기 때문이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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