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 내려 발견한 낡은 역사의 그윽한 미학과 자연의 이채로움 ▣ 박원식/여행전문 작가 기차를 타고 가을 산으로 간다. 산중 시골 역에 도착해 거기 파랑처럼 일렁거리는 산천경개 속으로 들어간다. 산들은 지금 묵상에 잠겨 있다. 폭염의 질탕한 애무로 뜨거웠던 지난 여름을 추억하며, 아울러 점점 깊어지는 가을을 명상한다. 산들은 이제 한바탕의 제전을 펼칠 것이다. 산정(山亭)부터 서서히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해 이윽고 온산에 단풍 홍염(紅焰)이 번질 것이다. 기차 여행을 한 적이 언제였던가. 자동차라는 네 바퀴 물건이 지구를 뒤덮기 시작하면서부터 여행 수단으로써의 기차는 그 위세를 황급히 반납하게 되었다. 산중 간이역으로 입장하는 여행 방식은 더욱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말았다. 태평하고 태연한 완행 인생들의 친애할 만한 형제였던 굼벵이 완행열차도 멸종했다. 하지만 완행열차의 견결한 동맹자인 간이역이 아직 잔존한다.

간이역을 통한 산중 여행은 의외의 커다란 만족감을 선물한다. 당신이 민감한 감성을 가진 여행자라면 아주 오래된 역 건물이 연주하는 세월의 선율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후미지고 외진 벽촌에서 시간의 이끼를 뒤집어쓴 채 부질없이 늙어가는 낡은 역사(驛舍)가 강의하는 그윽한 미학을 경청하게 될 것이다. 향수와 우수를 덩달아 느끼게 될 것이다. 간이역이 야기하는 내향적인 울림으로써 간이역으로 가는 여행은 사색과 명상을 야기한다. 서정과 시정(詩情)을 동반하게 된다. 여기에 간이역 여행의 이색과 이채가 있다. 그리고 역사 바깥의 저 사방팔방에는 산들이 대기한다. 싱그럽고 은은한 가을 산이 굽이친다. 투명한 가을 하늘의 푸른 치맛자락이 산마루에 걸쳐 있고, 바람이 불어 숲을 흔든다. 길들은 산 아래로 마중을 나온다. 도시를 탈출한 여행자는 정겨운 산길의 손을 잡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현란한 단풍의 예감에 사로잡힌 가을 산의 그윽한 향기 속으로! ● 중앙선 희방사역 우르릉쾅쾅, 계곡을 흔든 물벼락 소리 단풍 현란한 희방사 계곡. 기차가 이윽고 희방사역(喜方寺驛)에 도착한다. 배낭을 둘러메고 플랫폼으로 내려선다. 서늘한 산중 공기가 살갗을 파고든다. 역 건물 뒤편엔 거대한 산이 치솟아 있다. 소백산(小白山·1394m)이다. 역사는 조용하다. 이 역엔 하루 네 차례 상·하행 기차가 멈추지만, 타고 내리는 이는 겨우 열명 안팎이다. 휴일이면 무리 지은 등산객과 소풍객들이 우르르 밀려들기도 하지만 평일엔 늘 한산하다. 희방사역 일대는 그 옛날 꽤 버글거리던 장소였다. 객주와 마방(馬房)이 설치됐던 교통의 요충이었다. 소백 마루를 넘어가는 죽령 고갯길상의 중간 경유지였다. 역 건물을 뒤로 하고 서쪽 산기슭을 바라보며 죽령 옛길을 오른다. 이 길은 과거의 죽령 고갯길을 복원한 것이다. 고갯길은 거듭 꺾이고 휘어지고 굽이돈다. 죽령 옛길 끝에는 죽령 주막이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