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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드로그바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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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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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속한 아프리카의 변방 코트디부아르에 아슬아슬하게 남은 예선 한 경기
웨일스의 긱스나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처럼 월드컵 때 집에서 쉬지 않기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비운은 되풀이된다. 그라운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셔널리티의 격전장인 월드컵에서 (상대적) 축구 약소국의 걸출한 영웅들은 슬픈 운명을 타고났다. ‘나라를 잘못 만난 탓’(?)에 월드컵 본선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인이 월드컵에 열광할 때 그들은 쓸쓸함에 잠긴다. 2006 월드컵에서도 쓸쓸한 운명을 되씹어야 하는 선수들이 있다. 선배의 비운이 후배에게 대물림되는 운명의 유전도 있다. 웨일스의 라이언 긱스는 대선배 조지 베스트의 운명을 되풀이하고 있고, 코트디부와르의 디디에르 드로그바는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를 닮아가고 있다.

축구 약소국 스타의 슬픈 운명이여

“2006 월드컵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2002 월드컵 즈음, 한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가 축구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주인공은 라이언 긱스. 광고 첫 장면, 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연습장에 들어서는 긱스는 쓸쓸했다. 동료들은 월드컵에 나가고, 긱스만 남았다. 웨일스는 월드컵 예선 탈락. 긱스의 볼터치는 쓸쓸했다. 그리고 긱스의 등 뒤로 “2006 월드컵에서 만나기를 바란다”는 카피가 흘렀다. 그로부터 서너해 뒤, 희망은 희망으로 그쳤다. 웨일스는 2006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이 확정됐다. 유럽 6조 5위. 긱스는 이번에도 집에서 월드컵을 구경해야 한다. 그의 나이 32살, 어쩌면 월드컵과 영영 작별이다.


첼시에서의 골폭풍을 월드컵에서도 볼 수 있을까? 드로그바(가운데)의 코트디부아르에는 마지막 승부가 남아 있다. (사진/ EPA)

라이언 긱스 이전에 조지 베스트가 있었다. 둘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같은 팀에서 같은 11번을 달고 뛰었다. 수비수 서너명은 가뿐히 제치는 매직 드리블도 비슷했다. 이들은 맨유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았다. 베스트가 맨유의 1968년 유럽챔피언스컵(현재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다면, 긱스는 98~99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들은 잉글랜드리그 최고의 선수였지만, 잉글랜드 선수는 아니었다. 베스트는 북아일랜드, 긱스는 웨일스 대표였다. 만약 그들이 잉글랜드 선수였다면,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다면, 그들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잉글랜드의 에릭손 감독은 “대표팀에 포함시키고 싶은 첫 번째 선수”로 긱스를 꼽았다. “긱스는 우리에게 축구의 신이 존재한다는 걸 믿게 만든다”는 헌사도 쏟아졌다. 하지만 최고의 찬사는 카펠로 감독의 말이었다. “조지 베스트처럼 긱스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남미에 펠레가 있었다면, 유럽에는 베스트가 있었다. ‘하얀 펠레’ 베스트는 유럽의 베스트였다.

긱스는 조국을 ‘선택’했다. 긱스는 한때 잉글랜드 유소년팀의 주장이었다. 그는 부모가 이혼을 하자 어머니를 따라 웨일스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잉글랜드인이었다. 월드컵의 영광을 위해 웨일스인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웨일스 사랑은 끔찍하다. 그는 선수생활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웨일스와 맨유에서 데뷔”를 꼽았다. 가장 성취하고 싶은 목표로는 “웨일스 대표로 메이저 챔피언에 오르는 일”을 꿈꾼다. 긱스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긱스는 2006 월드컵 도전이 좌절된 뒤에도 “웨일스의 목표는 2006 월드컵이 아니라 2008 유럽선수권”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나아가 “앞으로 4~5년은 대표선수로 뛸 수 있다”며 열정을 과시했다. 또래의 정상급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조기 은퇴하는 풍토에서 남다른 모습이다.

아프리카의 슬픈 운명도 있다. 첼시의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디디에르 드로그바는 조지 웨아의 전철을 되밟고 있다. 드로그바는 1978년 코트디부와르에서, 웨아는 66년 라이베리아에서 태어났다. 두 나라는 세계 축구의 변방인 아프리카에서도 변방이다. 아직 두 나라는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을 통과한 적이 없다. 코트디부와르의 꿈은 현재형이다. 코트디부와르는 ‘불굴의 사자군단’ 카메룬을 따돌리고 2006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 3조 선두를 달렸다. 드로그바는 골폭풍을 일으키며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코트디부와르는 지난 9월3일 카메룬에게 2대3으로 패하면서 조 선두를 빼앗겼다. 한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승점 1점차. 2001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웨아의 라이베리아는 ‘슈퍼 이글스’ 나이지리아를 따돌리고 기적 같은 조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두고 가나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나이지리아에 선두를 빼앗겼다. 승점 1점차, 남은 1경기. 라이베리아는 시에라리온을 이기고 나이지리아의 경기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가나를 이겼다. 웨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드로그바는 웃을 수 있을까?

긱스의 매직 드리블은 월드컵 그라운드를 갈망한다. 월드컵 본선에 나왔더라면 그의 명성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사진/ EPA)

라이베리아의 흑표범, 귀화를 포기하다

조지 웨아의 별명은 ‘킹 조지’다. 그에게는 ‘왕’이라 불릴 만한 특별한 것이 있었다. 라이베리아의 흑표범은 1995년 세계축구협회(FIFA)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아프리카 아니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축구 제3세계 출신 선수로는 최초이자 최후의 수상이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월드컵의 꿈이었다.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유럽 국가로의 귀화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웨아는 귀화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조국을 선택했다. 웨아는 1994 월드컵부터 라이베리아의 감독 겸 선수로 월드컵 본선에 도전했다. 조국은 내전 중이었고, 경비는 부족했다. 자비를 털어 경비를 대며 열정을 불태웠다. 2002 월드컵 예선이 마지막 승부였다. 그는 실패했지만, 위대했다. 웨아는 99년 아프리카축구협회가 선정한 20세기의 아프리카 선수로 뽑혔다.

슬픈 예감을 뒤집는 멋진 승부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2006 월드컵 유럽예선 2조에서 터키, 그리스 등을 따돌리고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마침내 ‘완벽한 스트라이커’ 셰프첸코를 월드컵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디 2006 월드컵에서 드로그바의 골폭풍이 터지기를. 제발 유로 2008에서 긱스의 드리블을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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